정부가 올해분 1주택자 보유세에 대한 감경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핵심은 과세표준(과표)의 주요 변수인 공시가격을 올해 것이 아니라 지난해 산정치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공시가격의 전국 평균 상승률이 2년 연속 20% 가까이씩 오르자 부랴부랴 대증(對症)처방에 나선 격이다.

정부는 이 조치가 효력을 발하려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최종 결정권을 국회로 떠넘겼다. 부동산 정책 실패를 자인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을 피하면서 들끓는 분노를 잠재우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행태라 할 수 있다. 책임 전가 의도는 정부 스스로 시행령 개정만으로 과표를 얼마든지 손질할 수 있는데도 그 방법을 굳이 피하려 한 데서 읽혀진다.

1회성 조치를 관철시키기 위해 국회의 법 개정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은 누가 봐도 정상적인 수순이라 할 수 없다. 이런 식이라면 공시가격이 크게 오를 때마다 법률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 결과 현 정부 들어 이리저리 뜯어고치는 바람에 이미 누더기 소리를 듣는 부동산 관련 법률들은 일관성과 합리성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그런 법률은 권위와 신뢰를 잃게 되고 종국엔 시민들의 준법의식을 훼손하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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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전에 닥친 6·1지방선거를 의식해 다급하게 만들어진 땜질식 처방이란 의심을 살 여지도 있어 보인다. 수혜 대상에서 종부세 납부 대상자를 사실상 배제한 채 재산세에 초점을 맞춰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이 그 배경이다. 정부는 이번 방안을 마련하면서 종부세 과표 산정시 적용되는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손대지 않기로 했다. 올해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지난해보다 5%포인트 오른 100%다. 이는 올해부터 기준 초과 공시가격의 100%를 과표로 삼아 종부세를 부과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조치가 나오게 된 근본 원인은 문재인 정부의 엉터리 부동산 정책이다. 전문가들의 줄기찬 조언과 시장원리를 묵살한 채 징벌적 과세를 통한 수요 억제만으로 부동산 시장 안정을 꾀하려 하다 보니 임대차 시장까지 불안정해지고 관련 세제마저 엉망이 돼버렸다. 그 후유증이 너무 커져 민심이 이반한 가운데 또 한 번의 전국 단위 선거가 다가오자 다급하게 만들어 내놓은 것이 이번 보유세 부담 완화 조치라 할 수 있다.

이번 방안이 지닌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급조한 대책이다 보니 허술한 구석도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선 공시가격을 올리면서 세금은 그대로 두겠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이는 과세 행정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며 또 한 번 정부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정부로서는 과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산정이 지금까지 엉터리로 진행돼 왔음을 자인하는 꼴이라 비판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내년과 그 이후의 과세 행정에 대한 로드맵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년부터는 그 해의 공시가격을 기준 삼아 보유세를 매기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매년 기준연도를 따로 정해 그때그때 땜질식 처방을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땜질식 대증치료를 위한 처방이다 보니 이 조치가 갖는 효과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치유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이번 조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부동산 보유세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함께 올라간 거래세는 논외로 치더라도 현재의 부동산 보유세에는 징벌적 성격이 강하게 배어 있다.

평생을 땀 흘려 일한 결과 국민주택 규모의 아파트 한 채를 서울 인기 지역에 보유했다고 해서 매년 수 천만 원의 보유세를 내야 하는 현실은 상식과 거리가 멀다. 더구나 연금생활을 하는 60세 이상 고령자라면 평생 노동의 대가로 마련한 내 집 또는 수 십 년 동안 살아온 내 집을 포기하는 것 외엔 답이 없는 실정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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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장 안정화를 위해 차별적 과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국민주택 규모의 주택 두 채를 지녔다고 해서 사정 따져보지도 않고 1년에 억 단위의 보유세를 물게 한다면 이는 정상국가의 과세행정이라 할 수 없다.

‘너 한 번 당해봐’ 하는 식의 형벌적 과세는 편가르기와 상대편 진영에 대한 증오의 산물이라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부동산 과세 체계는 내 편이 아니면 국민도 아니라는 식의 발상이 없고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답은 땜질식의 한시적 처방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한정된 부동산이 투기 수단으로 쓰이는 것을 제재하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다만, 그 제재는 사유재산권과 거주이전의 자유 또는 자본주의의 기본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할 것이다. 특히 국민을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고가 주택 소유자와 저가 주택 소유자로 나누어 한 쪽의 지지를 기반으로 다른 한 쪽을 죄인 다루듯 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될 일이다.

과세는 국민들의 담세 능력을 감안해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따라서 당장 시급한 과제는 지난 5년 동안 심하게 훼손된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란 과세 행정의 기본원칙을 복원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많이 벌면 많이 버는 대로, 적게 벌면 적게 버는 대로 세금을 내도록 하는 상식적인 과세 행정이 조속히 자리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당면 과제라 할 수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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