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이 건설업계에서 퇴출될 위기에 몰렸다. 올해 1월 광주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붕괴사고에 대한 책임을 엄히 묻겠다는 국토교통부의 의지가 워낙 강한 탓이다.

국토부는 관할청인 서울시에 등록말소 조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황상 더 이상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기 위해 현산을 업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것이 국토부의 입장인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현산이 등록말소 처분을 받게 되면 이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시공사인 동아건설산업이 건설업 면허 취소 처분을 받은 이후 업계에서 퇴출되는 첫 번째 사례가 된다. 차량이 오가던 중 다리 중간에서 갑자기 상판이 강물로 떨어져 숱한 인명피해를 낸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워낙 충격적인 사건인지라 외국에까지 널려 알려졌었다.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사진 = 연합뉴스]
광주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 [사진 = 연합뉴스]

현산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훼손한 일차 사건은 지난해 6월 광주에서 발생한 학동4구역 붕괴사고였다. 도로변 건축물 해체 공사 중 건물이 통째로 차도 쪽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건물 앞을 지나가던 버스가 건물 잔해 더미에 깔리는 대형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 사고로 9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총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반 년 뒤 현산이 시공을 맡은 광주 화정동 건설현장에서 또 한 번 대규모 인명 피해를 수반하는 붕괴사고가 터졌다. 이번에는 철거가 아니라 아파트 신축공사를 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아이파크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한 개 동의 39층 바닥에 구조물을 설치한 뒤 콘크리트를 부어넣던 도중 일어났다. 콘크리트 무게를 견디지 못해 아파트 외벽이 무너져 내리면서 23층까지 연쇄적으로 붕괴된 대형 참사였다. 이 일로 건물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노동자 6명이 잔해물에 매몰돼 숨지는 사고를 당했다.

두 사고 모두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 화정동 아파트 붕괴사고의 경우 아래층에서의 바닥 지지가 부실했고 콘크리트 품질에서도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공사와 감리의 감독 및 감리 부실도 여지없이 도마에 올랐다.

이에 국토부는 지난 28일 현산에 대해 법이 정한 가장 엄한 처분을 내려달라고 처분청인 서울시에 요청했다. 국토부가 말하는 가장 엄한 처분은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이다.

하지만 서울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영업정지 1년을 넘어 등록말소가 가능한지 확실히 판단하기 어렵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서울시는 일단 6개월 이내에 결론을 내겠다고 밝히면서도 변호사 등이 참여하는 전담 TF를 구성해 사안을 면밀히 따져보겠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법령상 등록말소가 가능한지를 신중히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서울시의 조심스러운 입장은 법령상 등록말소가 가능한지를 문의하는 문서를 지난주 국토부에 보낸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국토부는 아직 문의에 대한 답신을 보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등록말소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담은 내용의 답을 보내려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엄중한 처분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데 이어 이번엔 보다 구체적 내용을 담아 답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서울시는 건설산업기본법 83조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산법 83조는 국토부 장관이 ‘고의나 과실’ 등으로 부실 시공을 하다 공중의 위험을 초래한 경우 국토부 장관이 건설업자의 건설업 등록을 말소하거나 1년 이내의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동법 84조와 여기에 연계된 시행령 80조 1항의 처분기준은 화정동 사고의 경우 적용 가능한 행정처분이 영업정지 1년으로 돼 있다. 이 조항을 고려하면 등록말소 처분을 내리는 게 합당한지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해당 시행령 조항은 별표를 통해 영업정지 기간과 과징금 금액에 대한 내용만 다루고 있다.

이 조항은 서울시가 검토 필요 입장을 견지하는 직접적 이유가 되고 있다.

서울시가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현산 퇴출 시 아이파크 아파트 거주자나 예비 입주자들의 하자보수 관련 불이익이 없는지도 면밀히 따져봐야 할 일이다. 브랜드 가치 하락에 의한 재산상의 불이익 등 소비자 피해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서울시 입장에선 이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서울시의 최종 결론이 등록말소로 나올 경우 현산은 현재 진행 중인 건설 공사만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신규 수주는 일체 불가능해진다. 결국 아이파크라는 아파트 브랜드는 현재 지어지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늘어나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한편 서울시는 광주 학동참사와 관련해서도 현산에 대한 행정처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시는 이 일에 대한 청문절차를 진행한 뒤 행정처분 수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서울시는 최종 결정에 앞서 하수급업체인 한솔기업에 대한 관할청(영등포구)의 처분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를 토대로 원청사와 하수급업체 각각의 책임 소재와 경중을 보다 정확히 판단하겠다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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