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 전반에 ‘S의 공포’ 분위기가 조금씩 조성되고 있는 것 같다.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키울만한 일련의 신호가 정책 당국에 의해 나타난 것이 그런 판단의 배경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물가만 오르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런 상황에선 정책 당국도 속수무책의 상태에 빠져들 수 있다. 경기 회복과 물가 안정이란 모순된 목표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입장에 놓일 수 있어서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통화당국은 금리를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이런 까닭에 스태그플레이션은 그 자체로 모든 경제주체들에게 ‘S의 공포’로 인식돼 왔다.

아직 스태그플레이션이 정책 당국에 의해 직접 언급된 것은 아니다. 정책 당국이 그런 우려를 섣불리 구체화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시장에 주는 메시지의 관리 또한 정책 당국의 주요 임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최근 들어 경제정책 및 통화정책 당국이 연이어 내놓은 메시지는 심상찮은 의미로 읽혀진다. 취합하자면 그 메시지는 경기 부진과 물가상승세 지속에 대한 우려 두 가지로 요약된다. 스태그플레이션 현실화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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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를 먼저 낸 곳은 한국은행이었다. 한은은 지난 14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1.25%에서 1.50%로 인상했다. 예상 밖의 결과라 할 수는 없지만 금리 동결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이 적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결정은 한은의 긴축 의지를 명확히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기준금리 인상이 석 달 만에 추가로 이뤄졌다는 점, 잔여 위원 6명이 만장일치로 인상안을 지지했다는 점, 금리 인상이 총재 공석 상황에서 의결됐다는 점 등도 주목할 만했다. 이는 금리 인상을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여건이 조성됐음을 암시하는 무언의 메시지들이라 할 수 있다.

금통위 의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주상영 위원은 금리인상 결정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물가상승 압력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만큼 대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주 대행은 특히 물가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국내 경기에 대해서는 “조금씩 회복되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거기에 맞춰 한은이 기준금리를 서서히 조정해 가고 있음을 밝혔다. 거꾸로 해석하면 기준금리 인상이 경제 성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하지만 금통위 결정 다음날 경제정책 당국이 내놓은 진단에는 장기화 국면에 들어선 고물가가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겼다. 그 같은 우려가 불과 수개월 전보다 뚜렷해졌다는 점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기획재정부는 15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4월호’를 퉁해 “우리의 수출·고용 개선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코로나19 변이 확산과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등으로 내수 회복 제약이 우려되고 물가 상승세가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그린북은 국내 요인으로 코로나19를 지목한 뒤 대외요인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했다. 구체적으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이 몰고온 공급망 차질, 인플레이션 압력 가중 속의 중국 주요 도시 봉쇄, 주요국의 통화정책 전환 가속화 가능성 등을 지목했다. 이로 인해 글로벌 회복 흐름의 불확실성이 확대됐다는 것이었다. 지난달에 이어 또 한 번 내수 회복 제약에 대한 우려와 불확실성 확대를 지적하되 악재를 보다 구체화하면서 톤을 강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승한 기재부 경제분석과장은 기준금리 인상으로 자영업자와 가계의 원리금 상환 부담 및 자금조달의 애로가 커지는 점이 가계소비나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과장은 또 중국발 공급망 충격으로 우리 수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봉쇄 장기화로 중국 경기가 둔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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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장은 그러면서도 기준금리 인상이 물가 상승 압력을 둔화시켜 거시경제 안정성을 강화해줄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오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면 해제하는 등 방역조치를 완화해 나감에 따라 소비 여건이 개선되면서 소비 회복세가 나타날 것이란 기대를 나타냈다.

그러나 민간소비는 아직 뚜렷한 개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월 민간소비는 1년 전보다 1.6% 증가하는데 그쳤다. 3월 수출은 전년 같은 달 대비 18.2% 증가했지만 무역수지는 1억4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글로벌 인플레 압력 상승에 의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입액이 덩달아 늘어난 것이 그 이유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국내 제조기업의 31.2%는 올해 영업적자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글로벌 물가상승 압력 강화가 커지는 분위기 속에서 국내 물가는 3월 들어 4.1% 상승률을 기록했다. 반면 성장 전망은 오히려 낮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은 이번에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3.0%)보다 낮은 2% 중후반대로 수정제시했다. 이는 경기 회복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주체들의 인내와 공조다. 특히 공조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가계와 기업은 물론 정부도 허리띠를 졸라매며 고통을 감내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새 정부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대선 공약에 얽매여 섣불리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서두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런 판국에 대규모 추경을 편성한 뒤 재원 마련을 위해 적자국채를 다량 발행한다면 물가는 다시 한 번 폭발적인 상승 압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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