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요즘 외환시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적 현상은 달러 강세와 엔화 약세 두 가지다. 미국 달러 강세와 일본 엔화의 상대적 약세는 자연스러운 조합이지만 요즘 상황은 그 이상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주요국 회폐 중 달러가 유독 강세를 보이는 반면 엔화는 가장 큰 폭의 가치 하락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 달러화는 근 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가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달러화가 20일(이하 현지시간) 현재까지 15거래일 연속 상승한 결과 2020년 5월 이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보도했다.

달러화 가치는 코로나19 대유행이 본격화된 2020년 3월부터 매집 붐을 타고 급격히 올라갔다. 그 결과 그해 5월 달러가치를 나타내는 지수인 달러인덱스(DXY)는 단숨에 100을 돌파했다. 장 마감 기준으로 DXY는 이달 12일 100.315를 기록하며 2020년 5월 15일(100.434) 이후 처음으로 100을 다시 넘어섰다. DXY는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가 작성하는 지수로 1973년 3월을 기준점(100)으로 삼아 산출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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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 역시 비슷한 흐름을 탔다.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은 2020년 5월 25일 1244.2원을 기록한 이후 1년 10개월만인 지난 3월 처음으로 1240원을 돌파했다. 21일 낮 현재 원/달러 환율은 1230원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다.

올해 들어 달러화 가치는 엔화 대비 10% 이상, 유로화 대비 5% 이상 상승했다. 이로써 달러화 가치는 달러 투자 붐이 일었던 코로나19 대유행 초기 수준을 회복하게 됐다.

달러화 강세의 직접적 이유는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행진이다. 지난 3월 연준은 2년 간 이어온 제로금리(0.00~0.25%) 시대를 마감하면서 기준금리를 0.25~0.50%로 인상한 바 있다. 이를 시작점으로 삼아 연준은 향후 기준금리 인상 행보를 재촉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수의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다음 달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이상 인상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행진은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 결과 올해 말엔 미국의 기준금리가 중립금리(2%대 중반) 수준에 도달할 것이란 견해도 적잖이 제기되고 있다. 연준이 5월부터 양적긴축에 돌입할 것이란 전망도 만만찮다. 기준금리 인상과 양적긴축이 병행되면 달러화 가치는 더욱 상승할 여지를 갖게 된다.

연준의 긴축 강화의 이면에는 치솟는 물가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 3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8.5%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다른 주요국들보다 빠를 것이란 믿음도 달러 강세를 자극하는 요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 중엔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신뢰가 달러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반대로 유로존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으로 경기 회복에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점도 달러화 가치를 끌어올리는 작용을 하고 있다. 유럽 경제, 나아가 세계 경제에 대한 부정적 전망 확산은 안전자산인 달러화에 대한 선호도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달러화 선호도 증대는 미국 경제 회복에 대한 신뢰가 형성돼 있는 가운데 달러를 대신할 마땅한 위험회피 수단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고 봐야 한다.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 증대는 최근 들어 국내외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이는 현상과도 연결돼 있다.

달러와 달리 엔화 가치는 최근 들어 두드러지게 하락세를 타고 있다. 20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29.38엔을 기록하며 2002년 4월 이후 20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이후 12% 상승했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올해 들어서만 8% 넘게 하락하는 등 주요국 통화 중 가장 빠른 하락세를 나타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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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약세의 주원인으로는 일본의 무역수지 악화와 미국과 일본의 기준금리 차이 확대가 꼽힌다. 최근 발표된 일본의 2021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 무역수지는 5조3749억엔(약 51조8893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7년만의 최대 적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본은 세계적 흐름과 달리 완화적 통화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완화적 기조를 이어갈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일본은 현재 기준금리를 -0.1% 수준에 묶어두고 있다. 침체된 경기를 자극하기 위함인 듯 보인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달 금융정책 결정회의를 마친 뒤 “엔저가 경제와 물가를 모두 밀어올려 일본경제에 플러스로 작용한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지금의 금융완화 기조를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중앙은행 총재가 드러내놓고 앞으로도 엔저를 용인하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이런 흐름을 타고 엔/달러 환율은 당분간 더 올라갈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반론이 있긴 하지만 일각에선 엔/달러 환율이 130엔을 돌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파이브스타 애셋의 매니지먼트 애널리스트인 이와시게 다쓰히로씨는 엔/달러 환율이 내년 3월까지 150엔에 이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공영방송인 NHK는 국채 매입(양적완화) 조치를 거론하면서 일본은행이 금융완화 정책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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