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총재가 바뀜에 따라 통화정책 기류에도 일정한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임 이창용 총재는 임명을 앞두고 열렸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물가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인기가 없더라도’라는 수사까지 동원해가며 기준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냈다.

이를 두고 매파적 행보를 예고했다는 분석이 제기됐지만 당사자는 자신의 경우 어느 쪽도 아니라고 설명한 바 있다.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그는 기자들에게 상황에 따라 매가 되기도 비둘기가 되기도 할 것이라는 취지를 밝혔었다.

하지만 그는 청문회에서 우리의 물가상승 압력 증대와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당분간 매가 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보인다.

물가 안정은 한은의 제1목표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더구나 지금 우리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년래 최고 수준인 4%대에 올라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취임한 한은 총재로서는 소비자물가 상승세의 억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신임 총재. [사진 = 연합뉴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이 총재가 물가상승 심리가 확산되고 있음을 지적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경제주체들의 인식이 물가 오름세를 예상하는 쪽으로 강화돼가고 있는 만큼 미리 금리로 시그널을 주어 기대인플레이션을 최대한 낮추려 노력하겠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향후 금리 인상 결정 때 한 번에 0.50%포인트 이상을 끌어올리는 ‘빅 스텝’을 취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상황에 맞게, 필요하다면 그런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물론 이는 물가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급등하는 비상한 경우를 상정한 발언이라 받아들이는 게 옳을 것이다.

지금의 고물가 현상이 세계적 추세이고, 그 요인이 수요측면이 아닌 공급측면에서 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금리 인상이 물가안정에 별로 기여하지 못할 것이란 의견을 내는 이들도 있다. 이 같은 지적은 섣부른 기준금리 인상이 물가는 잡지 못하고 경기 상승을 억제하는 역효과만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경고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이 총재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으면 물가 상승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 시그널마저 없으면 물가 상승세가 통제 불능의 상태로 접어들 위험성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이미 위험 수준까지 늘어난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 총재는 가계부채 문제와 관련, 금리 시그널을 통해 당사자들이 스스로 부채 관리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지금 막지 못하면 나중에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 말이었다. 그는 또 금리가 올라가면 고통이 따르지만 가계부채 상승률은 꺾이게 된다는 신념을 드러냈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 가계신용 잔액은 1862조1000억원에 달했다. 신용카드 사용액을 제외한 순수 가계대출금만 따져도 1755조8000억원이나 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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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가계부채 문제는 통화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점도 따로 강조했다. 그는 가계부채는 부동산과도 연관돼 있어서 금리정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하면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종합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가 말한 TF의 임무에는 금융 취약계층과 관련한 문제 해결도 포함돼 있었다.

이창용 총재는 취임을 앞두고 물가와 가계부채 외에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기타 주요 요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곧 닥칠지 모르는 미국과 한국의 금리 역전 등 대외 요인 외에 내부 문제인 청년 실업, 노인 빈곤, 소득 불평등, 고령화 등 성장잠재력을 훼손하면서 저성장을 초래할 요인 등이 그것이었다. 2000조원에 육박하는 국가부채의 적정 수준 관리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중장기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성장과 관련해서는 민간주도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취임을 앞두고 나온 이 총재의 발언들을 종합하면, 모든 국내 경제주체들이 인내심을 갖고 경제적 난국을 헤쳐가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것 같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가계와 기업, 정부 모두를 향해 고통 감내를 주문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민간주도 성장을 언급함으로써 관련 부문에서의 정부 역할 축소와 재정지출 자제를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큰 정부를 지향하는 한편 마음껏 당겨쓰면서 고용 등 모든 문제를 재정으로 해결하려 했던 문재인 정부의 안일한 행태를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지금은 경제 주체 모두의, 그 중에서도 특히 정부의 남다른 절제와 인내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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