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스타트 라인에 서려는 윤석열 정부가 벌써부터 공약 후퇴 논란에 휩싸였다. 새 정부 출범 즈음에 으레 있는 일이다. 논란의 중심에는 병사 200만원 월급 지급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등이 자리하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이들 공약의 즉시 이행이 어렵다는 취지를 밝히자 공약 후퇴 또는 파기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지난 3일 인수위가 발표한 새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였다. 여기엔 새 정부가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을 2025년까지 목돈 지급과 그 외 방법을 결합해 이행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취임 즉시 200만원 지급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여가부 폐지 건은 110대 국정과제에서 아예 제외됐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의 공약 이행 의지가 후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병사 200만원 월급 공약과 관련, 인수위는 현재 67만6000원인 병사 월급(병장 기준)을 2025년까지 차근차근 150만원까지 올리고, 이와 병행해 자산형성프로그램에 의한 정부 지원을 최대 55만원으로 인상한다는 세부방안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2025년까지 사실상 병사 월급 200만원 목표가 달성될 수 있다는 게 인수위의 입장인 것 같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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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취임 즉시 이병부터 봉급 200만원 보장’이라는 당초 약속과는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논란을 초래했다. 내용상 인수위의 입장이 후퇴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수위로서는 공약의 온전한 이행을 위해서는 매년 3조원 이상의 추가예산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3조원쯤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의 공약 이행에 재정이 추가로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수위로서는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여가부 폐지 공약은 애당초 새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이행될 수 없다는 한계를 안고 있었다. 공약 이행을 위해서는 정부조직법 개정이 선행돼야 하는데, 여기에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동의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여가부 폐지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것도 관련법 개정 가능성을 더 희박하게 만들었다. 어차피 이 문제는 새 정부의 장기 과제로 남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당선인의 공약을 토대로 이뤄진 110대 국정과제라 해서 온전히 이행된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다. 다만, 최대한 100% 이행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응집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공약 이행에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고, 그런 노력은 110대 국정과제 확정 이후에도 지속돼야 한다. 재정 상황과 국내외 정치 상황 등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 선택과 집중의 대상은 앞으로도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다.

인수위 자체 판단에 의하면 110대 과제를 이행하는 데 드는 돈은 무려 209조원에 이른다. 나랏빚 증가를 최대한 억제하면서 이 같은 재원을 임기 동안 추가로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선택과 집중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의 과정에서 이념과 정파적 이익을 배제한 채 얼마나 진정성을 발휘하느냐 하는 점이다. 정파적 이해관계를 떠나 진정으로 국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를 찾아내고, 거기에 우선순위를 정해 차근차근 이행해나가는 게 순리다.

그 과정에서 때론 집권당에 대한 지지에 악영향을 미칠 과제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크게 늘어난 나랏빚을 관리하기 위해 재정을 건전화하고 지속가능성을 늘리겠다는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의지 실현을 위해서는 재정준칙 강화를 넘어서는 재정건전화법 제정 등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사진 = 연합뉴스]

110대 과제에 포함된 연금개혁도 마찬가지다. 사전에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순탄치 않을 게 불 보듯 뻔한 만큼 이 과제 해결 여부는 정부의 의지에 크게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연금개혁을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도 논의 과정에서 빚어질 반대와 그로 인해 빚어질 지지율 하락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외환 위기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출범했던 국민의정부 못지않게 어려운 상황에서 정권을 이어받게 됐다. 국제적으로는 코로나19 및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세계적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고, 감염병 사태의 후유증 극복을 위해 미국을 중심으로 긴축 강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 탓에 우리는 무역수지 악화라는 비상한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여기에 재정적자까지 커지면서 소위 ‘쌍둥이 적자’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고물가와 고환율로 기업과 가계가 모두 고통을 겪는 가운데 저성장 기조가 현실화하고 있는 게 지금 우리가 처한 경제적 현실이다. 이대로 가다간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것이란 우려까지 대두되고 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가는 저물가와 저성장 등으로 일본인들에게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게 한 디플레이션보다 더 험난한 상황이 닥쳐올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윤석열 정부는 망국병인 포퓰리즘에서 벗어나 스스로 고통을 견뎌내며 다른 경제주체에도 인내를 요구하는 데 앞장설 필요가 있다. 그런 노력 중 하나가 실현 가능성이 낮거나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내세운 공약들을 욕을 먹더라도 하나하나 국민을 설득해가며 걸러내는 일일 것이다.

그런 뒤에 모든 역량을 경제성장과 그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재정지원에 의존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근로소득이 늘면서 소득불균형 문제도 자연스레 해소될 수 있다. 요즘 핫이슈로 떠오른 젠더 갈등도 따지고 보면 그 기저엔 일자리 기회와 소득의 격차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원인의 전부는 아니지만 제한된 일자리가 젠더 갈등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인기도 없을 수 있지만 새 정부만큼은 국가경제의 지속성과 미래 세대의 안위를 보장할 국가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데 소홀함이 없기 바란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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