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갑자기 달라졌다. 정권 교체 이후 처음 발표된 통계청의 월간 고용동향에 대해 전에 없이 냉정한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홍남기 직전 경제부총리 휘하의 기재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기재부 장관을 겸직해온 홍 부총리는 문제투성이의 고용통계에 비판적 입장을 밝히기는커녕 매번 분식된 통계자료를 인용하며 고용상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화자찬성 주장은 매달 중순경 월별 통계자료가 발표될 때마다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가세하는 일도 있었다.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127만개의 일자리가 늘었다는 고용지표가 발표된 지난달 13일 문 당시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 경제팀뿐 아니라 우리 기업이 이룬 실적”이라고 자랑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청년 일자리를 포함해 고용률은 역대 최고, 실업률은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동시에 홍 부총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5년간의 노력이 쌓여 최근 고용률이 1999년 6월 통계작성 이후 최고 수준’이라는 글 내용을 소개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북 치고 장구 치듯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성과가 컸다는 자랑을 장단 맞춰 늘어놓은 셈이다. 안정된 일자리가 부족해 청년층 다수가 먹고 마시는 유의 자영업으로 몰려드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모습들이었다.

실제로 지난 몇 년 동안 발표된 통계청의 일부 자료들은 숱한 비판에 시달려왔다. 정부의 실적을 억지로 돋보이게 하기 위해 통계를 ‘마사지’한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다. 지출 관련 가계동향조사 및 경제활동 인구조사 등에서는 통계청이 시계열(관측값을 시간 순으로 정리)을 단절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이전과의 비교를 불가능하게 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시계열 단절은 표본체계나 조사방법을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이뤄진다. 이 경우 이전 연도 같은 기간의 자료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시계열 단절은 저조한 실적을 감추기 위한 통계 분식 또는 통계 마사지를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를 안고 있다.

월별 고용동향 자료의 경우 특히 통계 마사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직접일자리를 양산하는 것이었다. 재정 투입으로 만든 공원지키기, 휴지줍기, 새똥닦기 등등이 그것이었다. 불요불급한 단기 알바성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만든 뒤 여기에 고령자들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취업자 수를 늘려왔다는 게 논란의 핵심이었다. 이는 해당월의 조사 주간 동안 ‘수입을 얻을 목적’으로 ‘1시간 이상’만 일을 하면 취업자로 분류하는 기존의 통계방식을 악용하기 위함이었다는 의심을 받아왔다.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부합하는 이 방식이 잘못됐다기보다 이를 악용하는 게 문제라 할 수 있다. 지속가능하지도 않은 직접일자리를 이용해 통계를 분식하는 것은 재정의 비효율적 운용을 초래함으로써 결국 국가경제에 해를 끼치게 된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코드 인사 시비 속에 통계청장이 바뀌고, 통계 분식 논란이 일상화되다 보니 통계청 고용동향 자료는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11일 발표된 4월 고용동향에서 취업자 증가폭이 86만 이상으로 집계됐지만 이를 주도한 것은 공공부문 일자리에 투입된 60세 이상 고령층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지난 몇 년 간 이런 상황이 반복된 탓에 통계청의 고용동향 자료가 아무리 좋게 나와도 언론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 일쑤였다. 4월 고용 증가폭만 해도 인구 3억이 넘는 미국의 같은 달 고용 증가폭(비농업부문 기준 42만8000명)의 두 배 이상이었다. 하지만 언론들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수치만 그럴듯할 뿐 실속이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전과 달리 새 정부 기재부의 반응도 긍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4월 고용동향 분석’이라는 보도참고 자료를 배포하면서 수치는 화려하지만 내용이 고무적이지 않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요지는 △공공부문 취업자 증가 영향이 상당했고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여전하며 △(정부가 만든 일자리가 주류인) 공공행정·보건복지 취업자가 32만명(전체 증가분의 37%) 증가했으며 △60세 이상이 노인일자리 확대 등으로 전체 취업자 증가세를 주도했고 △(사회의 주축인) 40대 고용률은 위기 이전 수준을 밑돈다는 것 등이었다.

기재부는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재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만큼 민간 고용 제고에 정책역량을 집중하고 산업구조 변화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노동 유연성을 제고하고 노동시장 구조개혁 노력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올바른 분석이자 바른 처방이라 할 수 있다. 기재부의 비판적 분석은 긍정적·희망적이라 할 수 있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통계 분석만이 정확한 처방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 그 논거다. 말은 쉽지만 여기엔 용기가 필요하다. 통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접근은 자칫 실정(失政) 논란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어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 있는 정부라면 실상을 정확히 알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망국병인 포퓰리즘과 결별하면서 국가 백년대계를 세워가는 단순하고도 확실한 길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공세와 지지율 하락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럴 때마다 진정성 있는 대(對)국민 설득을 통해 어려움을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통계 마사지는 당장의 인기를 얻는데 도움이 되지만 국가의 미래를 망치는 독이다. 특히 위정자에게는 달콤한 독이 되기 쉽다. 새 정부는 여러 면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숙명을 안고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숙명을 받아들여 업적을 치장하기보다 내실화를 다지는데 힘쓰는 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강조하는 공정과 상식의 회복 노력에도 부합하는 일일 것이다. 새 정부의 건투를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