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한국과 미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가 역전돼도 정말 괜찮은 걸까. 미국의 기준금리가 우리보다 높아져도 외국인들이 달러화를 대거 해외로 빼돌리는 엑소더스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을 수 있을까. 이는 우리 경제계를 지배해온 해묵은 근심거리였다. 그런 우려 탓에 한·미 간 금리 역전은 사실상 금기시돼왔다.

하지만 최근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이에 대해 새로운 답을 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요지는 한·미 간 금리 역전을 어느 정도 용인해도 무방하다는 것이었다.

현재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줄지어 빠져나가면서 다수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고 있다. 대개의 투자 전문가들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행진을 그 이유로 꼽는다. 요즈음 세계 각국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주도 하에 긴축 쪽으로 통화정책 방향을 틀고 있다. 그 결과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주식의 인기는 날로 하락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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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의 부진은 향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쇄적으로 올릴 것이라는 전망과 연결돼 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임기를 시작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빅 스텝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투자자들을 긴장시켰다.

이 총재는 지난 16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조찬 회동을 가진 직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빅 스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빅 스텝 가능성은 물가가 지금보다 더 급등하고 경기가 과열될 경우로 한정된다는 점을 덧붙임으로써 달리 해석할 여지를 남겨두었다.

이 총재는 또 미국과의 금리 차이만을 염두에 두고 금리정책을 운용하지는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와 미국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성장과 물가 흐름 등을 보아가며 상황에 맞게 대응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도 기준금리를 단번에 0.5%포인트 올릴 수 있지만 미국의 기준금리 추이를 적극 고려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때마침 KDI도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한국의 정책 대응’이란 보고서를 내고 미국과의 금리 동조화에서 탈피해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KDI는 설사 미국의 기준금리가 우리보다 높은 상황이 닥치더라도 다수가 우려해온 대로 급격한 자본 유출이 일어날 가능성은 작은 반면 기타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취지를 밝혔다.

우리의 대외건전성이 이전과 달리 크게 향상됐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국가 신용등급이 장기간 최상위권을 유지함에 따라 국가 부도 위험성이 극히 낮다는 점이 그 같은 판단의 배경을 이룬 것으로 분석된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일시적 대외여건 변화로 인한 무역적자와 고환율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수출 자체는 여전히 호조를 보이고 있고, 튼실한 외환 보유고 덕분에 과거와 같은 환란을 겪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KDI의 이번 보고서는 이런 현실을 반영해 우리가 독자적으로 통화정책을 펴나갈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보고서 발표자인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우리가 미국과 별개로 독립적 통화정책을 운용할 경우 일시적인 물가 상승이 나타날 수 있지만 중기적으로는 물가안정 효과가 더 크게 부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정 실장은 미국이 수요와 무관하게 기대인플레이션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또는 통화당국의 성향 등에 따라 금리를 올릴 때 우리가 그들을 따라가면 경기 둔화가 그대로 파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이 수요 증가가 없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림으로써 경기가 하강할 경우를 상정한 뒤 우리의 대응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때 한국이 금리 동조화 정책을 쓰면 국내총생산(GDP)이 0.13% 감소하지만 독립적 통화정책을 쓰면 오히려 GDP가 0.01% 증가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독립적 통화정책이 가져다줄 긍정적 효과는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 정 실장에 따르면 이 경우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쓰면 미국과의 금리 동조화 정책을 택할 때보다 소비가 매 시점 0.04% 증가하는 효과를 누리게 된다고 부연했다.

정 실장은 이창용 한은 총재의 빅 스텝 가능성 언급에 대해 “한국 경제 내부 상황 때문이지 미국 따라 금리를 올리겠다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이해했다”고 말했다.

미국 기준금리가 우리보다 높아질 경우 급격한 외국인 자본 이탈 현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정 실장은 최근의 사례를 토대로 분석할 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밝혔다. 그는 2000년대 이후 한·미 간 금리 격차로 인해 대규모 자본유출이 발생한 적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같이 강조했다. 예를 들면 1999년 6월~2001년 2월, 2005년 8월~2007년 8월, 2018년 3월~2020년 2월 기간 중 한·미 간 금리 역전이 있었지만 대규모 자본 유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1.50%)과 미국(0.75~1.00%)의 기준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으로 0.50%포인트에 불과하다. 미국은 향후 두어 차례 빅 스텝으로 기준금리를 올리겠다고 사실상 예고했다. 따라서 두 나라 간 기준금리 역전이 곧 나타날 가능성이 커져 있는 상태다. 연준이 두 번 연속 빅 스텝을 취할 경우 미국의 기준금리 상단은 2%대로 올라선다. 이는 한국은행이 7월과 8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0.25%포인트씩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려야만 겨우 대등한 수준을 유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은이 8월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지는 미지수다. 한은이 이달 26일로 예정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올리고 7. 8월에도 인상을 거듭한다면 우리 기준금리는 4회 연속 인상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한은으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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