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이 긴축 고삐를 더욱 강하게 조이기 시작했다. 두 달 연속,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한은은 앞으로도 잰 걸음으로 긴축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해 안에 최고 3.00%까지 올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올해 말까지 열릴 네 차례의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에서 매번 금리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정황이다.

한은은 26일 금통위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의 연 1.50%에서 1.75%로 인상했다. 이날 회의는 이창용 한은 총재가 취임 후 처음으로 주재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관심을 끌었다. 이 총재는 앞서 ‘빅 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올림) 단행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는 관례대로 0.25%포인트 인상 결정이 내려졌다.

한은 기준금리는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0.25%포인트씩 다섯 차례에 걸쳐 상승행진을 해왔다. 불과 반년 만에 기준금리가 1.25%포인트나 올라간 셈이다. 금통위가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린 것도 이채롭다. 두 달 연속 기준금리가 올라간 것은 2007년 7, 8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들 일련의 행위는 한은이 판단하건대 긴축 강화 필요성이 그만큼 절실해졌음을 말해준다.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번 일로 빅 스텝 가능성이 소멸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번을 건너뛴 대신 한 차례 정도에 그칠 빅 스텝의 가능성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분석일 수 있다.

한은의 이번 조치는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고물가 현상에서 비롯됐다. 경기 침체와 취약 차주들의 대출이자 부담 증가 등의 부작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 우리 경제가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됐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초입에 들어섰을지 모른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이 한은의 ‘인플레 파이터’ 본능을 자극했다고 볼 수 있다.

금통위는 이날 발표한 통화정책방향 의결문에서 “소비자물가는 당분간 5%대의 높은 오름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올해 상승률로는 2월 전망치(3.1%)를 상회하는 4%대 중반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금통위는 또 “물가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당분간 물가에 보다 중점을 두고 통화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로 4.5%를 제시했다.

그러면서도 한은은 우리 경제가 회복세를 지속해가고 있다는 시각을 유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성장률 수정 전망치를 2.7%로 제시했다. 기존 전망치보다 0.3%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놓은 수정 전망치(2.8%)와 비슷한 수준이다.

금통위는 이날 우리 경제가 회복세를 이어갈 것이란 인식을 드러냈다. 금리 인상 배경을 설명하면서 대내외 불확실성 요인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히면서 내놓은 진단이었다. 이런 시각은 물가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더 올릴 여지가 있다는 금통위의 판단을 뒷받침해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인플레 억제를 위한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국내 물가는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 장애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해진 것이 원인이었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4.8%나 뛰어 2008년 10월(4.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임을 드러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기대인플레이션율이 5월중 3.3%를 나타낸 것도 신경이 쓰이는 대목이다. 이 수치는 향후 1년 동안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평균 3.3% 정도에 이를 것이라는 일반의 전망을 말해준다. 기대인플레는 실제로 인플레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표로 받아들여진다.

소비자물가 선행지표인 생산자물가의 고공행진도 물가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생산자물가는 지난달까지 넉 달 연속 올라 작년 4월 대비 상승률이 9.2%를 기록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데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규제가 풀린 탓에 보복소비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고, 새 정부의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이 집행될 예정으로 있어서 물가는 더욱 상승 압박을 받게 돼 있다.

미국이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고 있는 점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를 자극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연내 두어 차례 빅 스텝’ 가능성을 흘리고 있는 만큼 자칫하다간 한·미 간에 기준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우려를 낳고 있다.

기준금리 급속 인상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부채 뇌관이 더욱 예민해지고, 취약차주들의 대출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질 수 있으며, 전반적으로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우려의 배경이다.

물가 관리에 방점을 찍었다지만 지금의 인플레이션이 공급 측면에 주로 기인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즉, 공급망 병목현상과 원부자재난 등에 의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있음을 고려하면 물가 관리에 있어서 기준금리 인상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다수 전문가들은 한은이 세계적 추세에 맞춰 긴축 행보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한은이 올해 안에 2~4차례에 걸쳐 각각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준금리 이슈를 다룰 올해 금통위 회의는 7. 8. 10. 11월에 차례로 열린다.

박성욱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하반기에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음을 들어 올해 안에 기준금리가 2.25%에 도달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도 한은이 오는 7월과 10월 금통위 회의를 통해 두 차례 더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과 달리 박석길 JP모건 금융시장운용부 본부장은 한은이 올해 7, 8, 10월 회의에서 연이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내 2.50%에 이를 것이란 얘기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여기서 한 술 더 떠 한은 기준금리가 연내에 3.0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남은 네 차례 금통위 회의에서 모두 금리 인상을 단행하되 그 중 한 번은 ‘빅 스텝’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