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임금피크라는 이름 아래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근로자의 임금을 깎는 기계적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 임금피크제의 효력에 대해 대법원이 모종의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6일 나온 대법원 판결을 두고 경영계에서는 볼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에 포함돼 울며 겨자 먹기로 소득 감소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근로자들이 사방에서 들고일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어서이다. 임금피크제의 엄격한 기준 적용이 청년층 신규고용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란 주장도 경영계로부터 나오고 있다.

반면 노동단체들은 대체로 이번 결정을 반색하고 있는 것 같다. 임금피크제가 경영자의 부당한 노동 착취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점이 그 이유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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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법 결정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한동안 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노사 갈등의 새로운 불씨 하나가 보태졌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정한 파이를 두고 고령 노동자들과 취업 목전의 청년층 간 갈등이 노골화될 수도 있다. 중·장년층의 희망퇴직이 감소해 청년들에게 돌아갈 일자리가 더욱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안정적인 직장을 지닌 정규직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이익을 누리게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역시 귀족 노동자들의 기득권 보호 강화라는 이유로 귀담아 들을 구석이 있는 비판이다. 이래저래 청년 취업준비생들의 불만을 자극할 수 있는 요인들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불완전한 임금 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임금피크제는 사업장마다 자의적으로 의미가 해석되고, 그에 따라 무원칙하게 운용되어온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제도의 개념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지 않은 현실이 그 배경이었다.

현재 고령자고용법(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사업주와 노동조합 모두에게 ‘60세 이상’ 정년 규정에 따라 정년을 연장할 땐 임금체계를 개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법에는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명기돼있다. 하지만 적용 기준과 구체적 시행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사업장 각각의 몫으로 남아 있다. 법규를 통해 세부 내용을 일일이 규정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온당하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사업장마다 기준과 방식이 달라졌고, 어떤 곳에서는 고령자에 대한 부당한 임금 삭감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도 나타났었다. 이번 판결은 그 같은 잘못된 관행에 철퇴를 가하는 효과를 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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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이번에 임금피크제를 적용할 합리적인 이유로 처우를 달리해야 할 필요성, 방법과 차별 정도의 적정성 등을 들었다. 법원은 또 판결문을 통해 경영상의 어려움과 업무량의 변화나 성과의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닌데 과도하게 임금을 깎는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를 밝혔다.

판결문 내용을 종합하면 원고 A씨는 만 55세가 됐다는 이유로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으로 분류된 뒤에도 이전과 같은 노동 강도로 대등한 가치의 업무를 이행했다. 이로 인해 A씨는 58세에 명예퇴직할 당시까지 임금삭감으로 인해 입은 손실만큼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A씨가 몸담았던 곳은 연구기관으로서 당시 정년이 61세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금피크제는 2013년 근로자들의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기업들에게 정년을 늘리는데 따라 증대될 재무적 부담을 덜어주되 대신 근로자들에게는 보다 오래 일할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 제도 도입의 취지였다. 그러나 A씨의 직장처럼 정년을 늘리는 경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정 연령 기준을 정한 뒤 기계적으로 임금을 삭감하는 사례가 나타나곤 했다.

결정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번 대법원 판결이 임금피크제의 근간을 흔든다는 주장은 억지스러운 데가 있다. 오히려 대법원이 제도의 취지를 재확인함으로써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그릇된 관행을 바로잡을 계기를 제공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의미는 따로 있다고 하겠다. 이번 판결이 우리사회가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사실 임금피크제는 그 취지를 십분 살려 활용한다 할지라도 연공서열이 일반화된 사회에서나 효용성을 갖는 제한적 가치의 제도라 할 수 있다. 연공서열제의 맹점을 보완해주는 제도일 뿐 건전한 고용 시스템 구축을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얘기다.

임금피크제는 우리 사회에 능력주의와 성과주의가 정착된다면 자연스레 용도폐기될 제도다. 그렇게 된 사회야말로 경제적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임금피크제 자체가 필요 없는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런 사회로 발전해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경직된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그런 사회로 가는 소중한 첫 걸음이 되길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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