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가 7일 0시부터 총파업을 시작했다. 화물연대는 이날 오전 10시 부산·인천·경남 등 전국에 산재한 12개 지역본부별로 파업 출정식을 개최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출정식에 화물연대 전체 조합원(2만2000여명) 중 8200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했다. 집회 진행 과정에서 경찰과의 충돌 등 큰 불상사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예고된 파업인 만큼 어느 정도 대비가 이뤄졌다지만, 출정식 이후 전국 곳곳에서 부분적 혼란이 일고 있다. 다만, 물류센터와 대형마트 간 물품 운송을 담당하는 화물차 기사들의 파업참여 비중이 높지 않아 아직 일반인들의 대형마트 이용엔 큰 차질이 빚어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 시설도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기 의왕 유통기지 등의 일부 시멘트공장이나 현대제철 포항공장 등에서는 이미 물품 출하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업 시작으로 수도권 시멘트 공급을 맡고 있는 의왕 유통기지와 충북 단양·제천, 강원 영월 등의 시멘트 공장에서도 파업 참여자들의 방해로 시멘트 출하가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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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연대의 총파업 돌입은 당사자 간 협상이 난항을 보임에 따라 일찌감치 예고된 것이었다. 화물연대와 국토교통부는 지난 2일 주요 쟁점들을 놓고 1차 교섭을 벌였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화물연대는 지난 5일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 사항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표하면서 7일부터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천명했다.

화물연대의 요구 사항은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 △안전운임제 전차종·전품목으로 확대 △유가 급등 대책 마련 △지입제 폐지 △노동기본권 보장 등으로 요약된다.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한 것은 안전운임제 유지 여부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 기사들의 적정임금을 보장함으로써 과로와 과적·과속 운전 등을 방지해 안전을 도모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2018년 국회가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할 때 처음 도입됐다. 이후 안전운임보다 낮은 임금을 제공하는 화주에게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게 됐다.

안전운임 수준은 안전운임위원회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운임 산정은 안전운송원가에 인건비와 유류비, 부품비, 적정이윤 등을 더해 이뤄진다. 따라서 안전운임은 화물 노동자들에게 적용되는 일종의 최저임금처럼 인식돼왔다. 당연히 이 제도는 화물 기사들로부터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 제도는 처음부터 한시적으로 운용하기로 돼 있었던 만큼 분쟁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2022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하는 3년 일몰제 방식을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적용 대상도 제한적이다. 특수자동차로 운송하는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만이 수혜 대상이었다.

시한이 다가오자 화물연대는 일몰제 폐지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제도 적용 대상도 전 차종과 전 품목으로 확대해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국제적 공급망 혼란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한껏 상승한 국제유가도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유지에 대한 요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됐다. 화물연대는 유류비가 급격히 상승해 화물 노동자들이 월 200만원 이상의 소득감소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류비가 올랐지만 운송료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안전운임제마저 연말 이후 없어지면 더 이상 견디기 힘들다는 게 화물연대 측의 주장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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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화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화주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무역협회는 최근 열린 토론회에서 안전운임제로 인해 육상 운임이 30~40%가량 상승하면서 해상과 항공, 육상 운송 모두에서 고운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이어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비 인상 등으로 수출기업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해와 주장이 엇갈리자 국토부는 지난달 30일 안전운임제 성과평가 토론회를 개최한 데 이어 이달중 안전운임 문제를 다루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정부는 위원회를 통해 안전운임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며 화물연대의 이번 총파업은 명분을 갖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화물연대의 총파업 행위에 법적으로 대응할 뜻을 밝히고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 정당한 투쟁은 보장하지만 다른 화물차량 운행 방해 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안전운임제 존폐 문제에 대해 적극 대화에 나설 의지가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파업 여파 최소화를 위한 방안 마련에도 골몰하고 있다. 국토부 차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수송대책본부를 구성해 비상수송대책 마련에 나서는 한편 주요 물류 거점에는 군 위탁차량을 투입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일선 화물기사들에게 집단행동에 동조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화물연대의 이번 총파업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전국 단위 파업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법과 원칙을 유달리 강조하는 새 정부가 파업 대응 과정에서 어떤 자세를 보일지가 특히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만약 새 정부가 그간의 파업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벌어져온 불법 행위들을 ‘법대로’ 엄단하려 한다면 마찰음은 전에 없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 경우 단기적이나마 극심한 사회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새 정부는 불법적인 교통 및 운송 방해 등의 행위에 대해 운전면허 정지 또는 취소 등의 조치를 취할 뜻을 밝히고 있다. 업무개시 명령 불응시엔 화물운송 자격을 취소하는 등 무관용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치고 있다.

중요한 점은 화물연대와 정부 중 어느 쪽이 명분과 국민적 지지를 더 많이 확보하느냐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양측 모두에게 대국민 설득 및 홍보전이 사태 해결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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