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신임 금융감독원장 취임을 두고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례 없이 검사 출신 금감원장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불안감이 그 원인이다. 금융계 전반에 사정바람이 휘몰아칠지 모른다는 게 불안감의 실체라 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법대로’를 강조하는 검사 출신 대통령의 단순명료한 인식으로 인해 더욱 뚜렷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사회 전체가 검찰공화국으로 변모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검찰 출신 인사를 중용하려는 대통령의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많은 이들은 검사 출신 인사들이 각계 요로를 장악함으로써 모든 사안을 사법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재단하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금감원장은 금융위원장 제청과 대통령 임명을 거쳐 취임하는 자리다. 15차례 임명이 이뤄지는 동안 이 자리는 경제관료 출신 또는 금융전문가들의 몫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 출신인 이복현 원장이 금감원의 새 수장으로 낙점됐다.

8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는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왼쪽). [사진 = 연합뉴스]
8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는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왼쪽). [사진 = 연합뉴스]

검찰 출신 인사가 이 자리에 낙점되리라 생각한 이는 거의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고, 검사 출신들을 정부 요직에 중용해온 정황을 익히 인지하고 있던 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온 첫 반응들이 ‘금감원장까지도?’였던 것 같다.

비판 여론이 들끓자 윤 대통령은 8일 집무실 출근길에 기자들을 통해 반박 의견을 내놓았다. 신임 금감원장이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서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고 있고, 검찰 재직시 금감원과 호흡을 맞추며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의혹 사건을 다뤘으며,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과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등에 관여했다고 강조했다. 전문성을 충분히 갖춘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근거로 윤 대통령은 이 원장이 금융감독 규제나 시장조사 전문가이기 때문에 금감원장으로 적격이라고 주장했다. 금감원이 규제기관인 만큼 법 집행 경험자가 역량을 발휘하기 적절한 곳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적재를 적소에 배치했는데 뭐가 문제냐는 투였다.

하지만 이날 윤 대통령이 드러낸 인식은 다수 국민들의 우려를 오히려 키우는 작용을 했다. 모든 사안을 사법적 잣대로 바라보려는 시각이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평생 사정기관에 몸담으면서 유·무죄를 따진 뒤 단죄하는데 익숙해진 인물의 가치관이 갖는 한계를 그대로 노출했다는 얘기다.

가장 큰 문제는 사법적 잣대만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현명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이다. 물론 ‘법대로’와 법치를 앞세우는 것은 그 자체로 정의로운 일일 수 있다. 재판에 준하는 사법적 판단과 그에 따른 법 집행 능력은 검사가 지녀야 할 필요충분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정업무 분야로 범위를 좁혔을 때나 유효한 논리다.

검찰공화국 논란은 차치하고 금감원 운영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사법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법치 만능주의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금감원은 그 이상의 판단과 능력을 요하는 복잡다단한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각종 금융기관들에 대한 감독 및 감사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맞지만, 제재 이전에 다양한 방법으로 공정한 금융거래를 유도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함으로써 금융의 순기능을 극대화하는 것이 금감원에 주어진 역할이다. 각계 의견 수렴과 국제공조, 자체 연구 등을 통해 회계 기준에 대한 해석을 내리고 새 금융기법을 개발하는 것도 금감원이 수행해야 할 책무들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사정 기능에 국한해 이야기한다손 치더라도 금감원의 규제 및 제재가 능사일 수는 없다. 사후 제재보다 예방적 감사를 통해 단죄를 최소화하는 것 또한 금감원의 책무라 할 수 있어서이다. 이 점이 검찰과 금감원이 행하는 사정업무의 중요한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이복현 원장 임명에는 자본시장의 불공정 행위 척결에 대한 윤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검사의 시각으로 라임이나 옵티머스 사태 등을 바라보면서 자본시장 정화 의지를 새롭게 다졌고. 그 의지가 대선 공약을 통해서도 나타났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의도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불공정·불법의 척결은 검찰이나 국세청·감사원 등 사정 전문기관의 몫으로 남겨두고, 금감원은 금감원답게 보다 큰 비전에 의해 운영되도록 조치하는 게 더 적절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전임자인 정은보 금감원장도 7일 이임사를 통해 의미심장한 발언들을 남겼다. 후임 인선에 대한 문제제기 의도가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경고의 의미가 담긴 발언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것들이었다. 정 원장은 이날 우리 경제에 ‘퍼펙트 스톰’이 몰려올지 모른다는 우려를 나타내면서 ‘사전적 감독’과 금융계의 리스크 요인 예방을 위한 지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금융환경 변화로 인해 사후적 제재만으로는 금융소비자를 온전히 보호하기 어렵다”고 강조한 뒤 “금융상품 설계와 개발 단계에서부터의 감독과 금융상품 통합모니터링 정교화 등을 통해 금융소비자보호에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사후 제재는 금감원 역할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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