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한국개발연구원(KDI)의 국내 경기에 대한 진단도 이전보다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조금씩 나빠지는 진단 흐름은 수개월째 이어져오고 있다. 대외 여건의 악화로 국내 경기가 예상보다 부진한 흐름을 타고 있다는 뜻이다.

KDI는 9일 발간한 ‘6월 경제동향’을 통해 “경기 회복세가 약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유는 글로벌 공급망 교란과 유가 및 원자재 가격의 급등이었다. KDI가 경제 분석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경기 회복세 약화’라는 표현을 쓴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KDI 보고서는 지난 2월까지 ‘완만한 경제 회복세 유지’라는 표현을 쓰다가 3월 들어서는 ‘불확실성 확대’라는 진단을 제시했다. 이후 4~5월에는 중국의 봉쇄 강화 등으로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되고 있다’고 표현하더니 이번 달엔 ‘회복세 약화’라는 문구를 포함시켰다. 위험성이 커지다가 이달 들어서는 회복세 약화가 현실화됐다는 의미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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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달에는 경기 하방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하방 위험’이란 표현을 썼는데 이번 달엔 경기 회복세 약화가 실제 지표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아직 경기 국면이 완전히 전환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면 전환을 논하기엔 아직 이르다는 것이었다. 정 실장은 이번 달에 처음으로 경기 회복세 약화를 판단했다고 설명한 뒤 “중국 봉쇄 해제 등의 영향을 기다려 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면 전환까지는 아니지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KDI가 경기 회복세 약화라는 판단을 내린 근거는 수출과 제조업 등 광공업생산 부진, 제조업 생산능력지수 감소, 내수 위축, 높은 물가 상승세 등이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중국 봉쇄의 영향 탓에 증가세가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 수출 감소는 최근 수개월간의 일평균 수출액 증가율 추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비율은 3월 24.0%, 4월 15.3%, 5월 10.7%의 흐름을 보였다. 수출물량지수 증가율 역시 3월 5.9%에서 4월 1.9%로 하락했다.

수출물량지수는 수출액이 아니라 수출물량을 기준 삼아 수출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산출하는 지표다. 수출금액지수를 수출물가지수로 나누어 산출한다. 이 지수는 실제 수출물량의 변화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요즘처럼 국제유가나 원자재 단가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시기에 보다 유용한 판단 자료로 쓰일 수 있다.

4월 광공업생산은 반도체(-3.5%), 자동차(-0.8%), 1차금속(-4.5%), 금속가공(-4.9%), 식료품(-5.4%), 전기장비(-1.5%) 등이 부진을 보이며 계절조정 전월 대비로 3.3% 감소했다. 4월 제조업생산능력지수는 105.0(2015년=100)을 기록, 전월 대비 0.4% 줄어들었다. 이는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 시기였던 2020년 8월(104.6)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제조업생산능력지수는 정상적인 조업환경에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생산량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 지수의 감소는 생산 능력이 그만큼 약화됐음을 말해준다.

경제 성장의 또 다른 핵심 축인 내수도 위축됐다. 그 바람에 4월 생산·소비·투자는 26개월 만에 처음으로 ‘트리플 감소’를 나타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는 나날이 높아져 5월 소비자물가가 5.4%까지 치솟는 현상이 벌어졌다. 고물가 현상은 글로벌 공급망 차질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가세하면서 수입물가가 크게 오른 것과 관련돼 있다.

KDI는 고물가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구매력 저하, 국내·외적인 금리 인상 등이 경기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 우려했다.

성장이 정체되고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8일 발표한 경제전망을 통해 우리나라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3%포인트 낮춘 2.7%로 제시했다. OECD는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4.5%에서 3.0%로 재조정했다.

세계은행(WB)은 지난 7일 발표한 ‘글로벌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경제가 2.9% 성장하는데 그칠 것이라 내다봤다. 새 전망치는 기존보다 1.2%포인트나 낮아진 것이다. WB는 미약한 성장세와 인플레이션 장기화로 인해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이 상당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국내에서도 일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 논란에 대해 한국은행은 일정한 선을 그었다. 한은은 9일 진행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나라가 잠재성장률 이상의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을 들어 스태그플레이션 현실화 가능성은 작다고 진단했다.

박종석 한은 부총재보는 향후 우리 경제가 민간소비 주도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 전망했다. 수출 증가세는 둔화되겠지만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의 완화 등으로 민간소비는 한은의 기존 예상보다 견조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한은은 또 미국의 긴축 강화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외화자금 이탈이 급격히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소비 회복세나 경상수지 상황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그리 나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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