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취임 한 달여 만에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요지는 경제 운용의 주체를 정부에서 민간으로 전환하면서 자유시장경제가 정상작동하도록 시스템을 개편해 저성장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공공·연금·노동시장·교육·서비스산업 등 5대 부문에 대한 구조개혁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초연금의 단계적 인상, 육아휴직 연장, 정년 연장 등을 통해 복지 및 사회안전망 강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현재 월 30만원인 기초연금은 단계적으로 40만원으로 올리고, 육아휴직 기간은 기존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리기로 했다. 고령자 계속 고용을 촉진할 요량으로 60세인 법정 정년을 연장하기 위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한다는 계획도 이번 청사진을 통해 제시했다.

윤석열 정부는 새로운 정책 추진을 위해 자유와 공정, 혁신, 그리고 연대라는 4대 기조를 설정했다. 이 같은 기조 하에 새로운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함으로써 성장과 복지 증진의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한다는 것이 새 정부의 정책목표라 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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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제시한 경제정책 방향에서 가장 크게 변화가 감지되는 부분은 경제운용 주체의 전환이다. 지난 정부가 규제 해소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공무원 수를 늘리고 각종 법규를 강화함으로써 규제를 늘렸던 것과 달리 민간 주도, 기업 중심으로 경제가 시장원리에 의해 작동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새 정부는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소득에 대해 부과하는 법인세의 최고세율을 25%에서 22%로 낮추기로 했다. 4단계로 복잡하게 만들어진 법인세 과표 구간도 단순화시키기로 했다. 법인세 최고세율과 과표 구간을 최소한 문재인 정부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뜻을 밝혔다고 할 수 있다.

국내 법인세 최고세율은 이명박 정부 때 28%에서 22%로 낮아졌고, 문재인 정부 들어 25%로 다시 상향조정됐다. 문재인 정부는 법인세 과표 구간도 3단계에서 4단계로 늘려놓았다. 과표 구간 세분화는 대기업에 대한 과세 강화로 이어졌다. 최고세율 인상도, 과표 구간 세분화도 모두 비슷한 기간 동안 나타났던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일들이었다.

그 결과 우리의 법인세 과세 체계는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 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 3000억원 이하 22%, 3000억원 초과 25%라는 틀을 갖추게 됐다. 이 같은 내용은 법인세법 제55조(세율)에 명시돼 있다.

전세계적으로 기업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요국들은 경쟁적으로 법인세율을 낮추고 단일 세율 또는 2단계 방식의 단순화된 과표구간 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과세 형평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에서다. 이런 기류를 반영, 우리의 경쟁국들인 미국(21%), 일본(23.2%), 영국(19%), 독일(15.8%) 등은 우리보다 낮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채택하고 있다. 반면 우리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21.2%보다도 월등히 높아졌다.

주요국들은 법인세 인하를 통해 해외기업 유치와 외국에 진출한 자국 기업의 리쇼어링(본국 회귀)을 유도하고 있다. 그렇게 돼야만 자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하고 그에 비례해 일자리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정책의 바탕에는 법인세 인하가 고용은 물론 결과적으로 국가의 세수까지 늘려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실제로 법인세 인하가 오히려 세수 증대에 기여한다는 연구결과도 이미 제시된 바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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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는 또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주 52시간제 유연화를 꾀하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원점에서 재추진함으로써 관련 산업의 혁신을 함께 모색하기로 했다. 같은 맥락에서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도 폐지키로 했다. 이 세제는 기업 유보금에 대한 과세 범위를 넓혀 대기업의 조세부담을 늘리는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각종 인·허가권 등 중앙정부의 규제 권한은 지방으로 이양하기로 했다. 지역 실정에 따라 자체적으로 규제를 해제하거나 개선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다수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복잡하게 관련된 덩어리 규제는 통합정비해 원샷 해결이 가능하도록 조치키로 했다.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방안들도 마련됐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의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하향조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과도하게 강화된 부동산 보유세를 완화하는 방안이 그에 해당한다. 1가구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2020년 수준으로 낮추고, 다주택자라 할지라도 불가피한 사유가 인정되는 경우 별도의 페널티를 주지 않는 방안도 마련하게 된다. 이사로 인한 일시적 2주택 보유 등이 그에 해당한다. 생애 첫 주택 구입에 대해서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상한을 지역·주택가격·소득과 무관하게 80%로 완화해주기로 했다.

이번 정책에는 재정건전성 강화 방안도 담겼다. 재정 기조를 ‘확장’에서 ‘건전’으로 전환하고 재정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재정준칙을 법제화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감세 기조와 상충되는 듯 보이지만 재정 건전성 강화는 우리 경제의 기초를 튼튼히 해준다는 점에서 필수과제로 삼아야 할 일이다. 감세가 반드시 세수 감소를 초래하는 게 아니라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감세 정책의 혜택이 주로 대기업에 돌아가도록 기획돼 있다는 점이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나 과표구간 단순화가 대표적 예다. 부동산 보유세 감세 혜택이 중고가 주택 보유자에게는 거의 돌아가지 않도록 정책이 설계돼 있다는 느낌도 지우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자면,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구시대적인 정부 주도 방식의 관치경제 하에서는 기업들의 시의적절한 변화와 과감한 투자 결정 등이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경제정책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필요한 것이 정치권, 그 중에서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다. 정부·기업·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힘 모아 경제 살리기에 나선다 해도 정치권이 호응해주지 않으면 새 정부의 야심찬 경제정책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법인세 체계를 개편하거나 각종 규제를 해제하는 일, 종부세 세율 조정 등 부동산 보유세제의 기본틀을 바꾸는 일, 재정건전화 방안을 법제화하는 일 등등이 모두 그렇다. 하나같이 국회의 입법을 통한 지원이 요구되는 사안들이다. 따질 건 따지되 국회가 정파적 이해관계에 얽혀 새 정부의 경제정책 추진에 훼방을 놓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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