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소비자물가가 예상을 뛰어넘으며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내로라하는 전문 기관들의 전망치를 연이어 돌파하고 있어서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인플레이션이 워낙 심각해지다 보니 관련 기관들은 수정 전망치를 내놓기 바쁜 지경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곳이 물가관리 주무 기관인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6일만 해도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4.5%로 제시했었다. 그러나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 21일엔 사실상 ‘4.7% 이상’이라는 수정 전망치를 내놓았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물가 급등기였던 2008년 당시의 4.7%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올해 물가 상승률을 두고 한은이 제시한 전망치들은 불과 수개월 동안 급등하는 양상을 보였다.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전망치가 자주 바뀌고, 그 상승세도 가팔라지다 보니 올해 물가 상승률이 어디까지 올라갈지를 가늠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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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한은이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0%였다. 이 전망치는 올해 2월 들어 3.1%로 수정됐다. 그러나 이 수치 역시 3개월 만인 지난달 4.5%로 또 한 번 크게 바뀌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4.7% 이상’이라는 전망치를 새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달 18일 제시한 전망치(4.2%)와도 큰 차이를 보이는 수준이다.

한은의 이번 수정 전망은 이달 21일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 발표와 함께 제시됐다. 보고서는 “향후 물가 흐름은 국제유가 상승세 확대 등 최근의 여건 변화를 고려할 때 지난 5월 전망경로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은의 물가 전망 재조정은 최근 들어 물가상승의 원인이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를 두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공급과 수요 양 측면 모두에서 상승압력을 받기 시작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의미다.

한은은 이를 토대로 소비자물가가 당분간 5%를 크게 웃도는 흐름을 보일 것이라 전망했다. 구체적으로는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유류와 가공식품·외식물가 오름폭 확대로 5월(5.4%) 수준을 넘어서고, 하반기에는 원유와 곡물 등을 중심으로 해외 공급요인의 영향 탓에 오름폭이 상반기보다 확대될 것이라는 것이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세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제적 공급망 차질이 빚어진데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제유가와 곡물가 등이 품귀현상을 보인 것과 깊이 연결돼 있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봉쇄 조치도 공급망 교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진정과 함께 소비 회복 조짐이 보이자 물가는 한 번 더 상승압박을 받게 됐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공급 측면에서 압박이 발생한 마당에 보복소비가 일면서 수요 측 압박 요인이 가세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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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은 지금의 고물가 현상이 이전의 그것과는 다를 양상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을 예로 들면, 과거 물가 급등기에는 중국의 제조업 활황, 부동산·인프라 투자확대 등에 따른 원자재 수요 증가가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의 고물가 상황은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사태, 중국 봉쇄 등에 의한 공급망 차질은 물론 친환경 규제 등에 따른 생산시설 투자 부진과 관련돼 있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환경 규제에 따른 투자 및 생산 부진의 예로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 부진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의 경우 미국의 셰일오일은 국제유가 급등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왔다. 대체로 국제 유가가 60달러 선을 넘어서면 미국의 셰일 오일 생산업자들은 생산을 본격화했다. 생산원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탓에 셰일오일은 국제유가가 그 이상일 때 비로소 가격경쟁력을 지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긴축 강도를 높여가는 바람에 원/달러 환율이 올라가고 있는 점도 국내 물가 오름세를 자극하고 있다. 환율 상승이 수입물가를 높이는 것이 기본 원인이다. 원화값이 떨어지면 국내 수입업자들은 과거와 동일한 물량을 수입하더라도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원/달러 환율은 23일 현재 1300원을 넘나드는 수준에 이르렀다.

원화 가치 하락은 우리의 무역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전 같으면 고환율이 수출 증대에 크게 기여했지만 지금은 일본에 더해 중국까지 고환율 정책을 취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이로써 고환율이 가져다주는 긍정적 효과는 상쇄된데 반해 부정적 효과만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무역수지는 상반기가 끝나지도 않은 지금 이미 150억 달러 이상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무역수지는 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우려된다.

물가 상황은 당분간 악화일로를 달릴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거론한 대로 국내에서 일상 회복과 함께 소비가 회복되면서 수요 측면에서도 물가 상승 압력이 증대되고 있는 점이 그 원인이다.

지난 22일 한은이 발표한 지난달의 생산자물가지수는 이 같은 물가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한은에 따르면 5월 생산자물가지수는 4월(118.59)보다 0.5% 높은 119.24(2015년=100)를 기록했다. 오름세는 5개월째 이어졌다. 전년 동기 대비 기준으로 치면 상승률은 9.2%에 이른다.

생산자물가는 반 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일반적 견해다. 5월 생산자물가 현황은 국내 소비자물가가 적어도 반 년 정도는 지금의 기조를 이어갈 것임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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