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사상 처음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끌어올리는 ‘빅 스텝’을 단행했다. ‘빅 스텝’이 초유의 일인지를 두고 일부 논란이 일었지만, 우리가 중앙은행 기준금리 체계를 도입한 이후 0.50%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것은 분명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고물가와 고환율 등으로 국내 경제상황이 유례없이 비상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더구나 지금은 경기 침체 우려가 팽배해 있는 시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경기와 상극인 고강도 긴축카드를 꺼내든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요는 한은의 이번 결정에 담긴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한은의 이번 결정은 바야흐로 국내에서도 고금리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특히 ‘빅 스텝’은 고금리 시대가 다급하게, 활짝 열렸음을 강조하기 위한 강력한 메시지였다고 볼 수 있다. 새로 펼쳐진 고금리 시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경제 상황이 다양한 대내외 변수에 의해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어서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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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3일 정례 통화정책 회의를 주재한 직후 가진 브리핑에서 앞으로도 기준금리를 꾸준히 올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연말 무렵엔 최고 3%까지 기준금리가 올라갈 것이란 전망에 대해 “합리적”이란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렇다 할 상황 변화가 없는 한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한은으로서는 충격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지만, 금리는 이미 빠른 상승 흐름을 탔다고 보는 게 옳다. 흐름의 속도가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선 이달 중 미국 중앙은행이 시장의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면 달갑지 않은 한·미 간 금리역전이 현실화된다. 우리 경제의 기초가 튼실해 당장은 괜찮다 해도 역전의 폭이 더 벌어지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그 속도를 따라가야 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이번에 기준금리를 1.00%포인트 올릴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자이언트 스텝’을 넘어 ‘울트라 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울트라 스텝’ 전망은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9.1%를 기록한 것과 관련돼 있다. 이 같은 수치는 전문가들의 전망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어서 시장에 새로운 충격을 안겨주었다. 서방선진 7개국(G7) 중 하나인 캐나다의 중앙은행이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한 번에 1.00%포인트 올린 것도 연준의 긴축 보폭이 더 커지도록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추세라면 한은 이창용 총재의 기준금리 전망에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외국인 자본 유출은 차치하고 자칫하다간 발등의 불이 돼버린 원/달러 환율의 상승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우리 경제의 위험요소인 가계부채의 뇌관이 더욱 예민해진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규모는 선진국 그룹 중 최상위권에 속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가계부채 규모는 1분기 말 기준 1859조4000억원이다. 가계부채의 위험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은 104.5%로 집계됐다. 가계부채가 우리나라의 전체 경제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중채무액이 600조원을 넘어섰다는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키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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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데는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악재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집값이 급등하자 우리 사회에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영끌’ 붐이 일었다.

기업들이 짊어진 부채도 가계부채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와중에 금융권에서 돈을 끌어다 쓴 기업이 많아진 탓이다. 기업과 가계의 빚을 합치면 그 총량은 GDP의 219.4%로 훌쩍 늘어난다.

기업부채 중에서도 특히 우려되는 것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들이 짊어진 부채다. 이들 사업자는 부동산 매입을 위해 ‘영끌’에 나섰던 30대 이하 중심의 가계와 함께 취약차주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 중에 다중채무자이면서 소득과 신용도가 낮은 차주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포함돼 있다는 뜻이다.

관건은 고금리 시대를 맞아 상대적으로 더 큰 고통을 느낄 취약차주들에게 적용할 맞춤형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는 것이다. 이들의 부채 상환 부담을 덜어줄 방안을 적극 마련하는데 금융안정화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도 이 점을 인식한 가운데 차주별 상황에 따른 채무 재조정, 낮은 금리상품으로의 대출 대환, 상환 유예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 만큼 기업과 가계 스스로도 고금리 시대 도래를 현실로 인식하고 새로운 환경에 대비하려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해 최대한 빚을 청산하고, 그게 여의치 않다면 고통을 견디며 더 이상 빚을 늘리지 않도록 하는 게 최선이다. 이를테면 금리 상승세가 장기간 이어지고, 3%를 넘어 4%대 또는 5%대에 이르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한 가운데 경제활동에 임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금리 인상 결정 이후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가정은 언제든 변할 수 있음을 상기시킨 뒤 “물가가 얼마나 올라갈지 불확실성이 커졌다”며 “이런 위험을 염두에 두고 (경제주체 각자가) 의사결정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준금리 결정 내용보다 더 유념해 들어야 할 말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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