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한국이 디폴트(채무 불이행)로 파산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라는 주장이 인터넷을 떠돌며 화제를 낳고 있다. 비록 외신을 인용한 ‘카더라’식 주장이지만 충분히 관심을 끌만한 내용이었다. 사실 한국의 파산 가능설은 우리 경제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라도 지닌 사람에겐 상상을 불허하는 주장이다. 따라서 문제의 주장은 충격적이라기보다 생뚱맞다는 느낌을 주는 구석이 더 많았다.

이 주장의 씨앗이 된 것은 지난 14일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가 TBS 라디오 프로그램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한 발언이었다. 당시 최 교수는 달러 강세로 개도국 또는 신흥국들의 파산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블룸버그가 파산 가능성이 높은 나라로 50개국을 꼽았는데 거기에 한국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 발언이 일파만파 번지자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추임새를 넣듯 19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 발 더 나아간 나름의 ‘해석’을 제시했다. “블룸버그는 한국을 채무 불이행이 가능한 국가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 지표가 외신보도를 뒷받침하고 있다”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곁들이며 내놓은 해석이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하지만 두 사람의 주장은 입맛대로 해석에 의한 것일 뿐 사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치적 성향 또는 의도가 반영된 탓인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의 주장은 블룸버그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는 지난 7일자 기사 ‘신흥시장을 향해 다가오는 역사적 디폴트 사태’의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블룸버그는 파산 가능성이 있는 50개국을 선정하지도, 한국을 채무 불이행 가능국으로 지목하지도 않았다.

해당 기사는 처음부터 엘살바도르와 가나, 튀니지, 파키스탄, 이집트 등을 거론하면서 달러화 강세로 신흥국들의 디폴트 위험성이 커지고 있음을 경고했다. 한국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다. 다만, 기사에 물린 도표를 통해 국가채무 취약성 순위대로 50개 신흥국을 나열했다. 도표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50개 신흥국 중 취약성 47위를 나타냈다. 선두권에는 앞서 언급된 나라들이, 최하위권에는 한국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가 차례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 도표는 쿠웨이트와 사우디, UAE, 한국이 조사 대상국 중 가장 위험도가 낮은 국가들임을 말해주고 있다.

기사 내용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연합뉴스가 팩트체크를 통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블룸버그는 이 기사를 작성하는데 있어서 애당초 디폴트 위험이 있는 50개국을 선정한 적이 없었다. 단지 국제무대에서 눈길을 끌고 있는 신흥국 50개를 대상으로 삼은 뒤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자료를 기반 삼아 그들 국가에 대한 국채 취약성 순위를 매겼을 뿐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결론은 한국이 안정도 순위 4위권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추미애 전 장관 등의 주장은 정치적 노림수 유무를 떠나 신흥국의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과도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국제경제 무대에서 한국은 여전히 신흥국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본디 신흥국과 혼용되는 개도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회원국들을 분류할 때 쓰는 개념이었다. WTO 분류상 개도국인지 여부는 각자의 선언에 의해 결정된다. 스스로 개도국이라 선언하면 WTO는 그들 국가에 개도국 지위와 함께 교역상 각종 혜택을 누리도록 해준다. 단, 특정 국가가 실제로는 선진국이면서 개도국이 누리는 혜택을 취할 목적으로 개도국 선언을 할 경우 다른 회원국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그간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개도국 지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그와 관련된 불만을 노골화한 대표적 인물이었다. 이에 우리나라도 결국 2019년 10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한국은 명실공히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고, 실제로 그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사실 한국은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하기 이전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일찌감치 선진국 대접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경제 무대에서는 아직도 한국을 신흥국 또는 신흥시장(Emerging Market)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남아 있다. 블룸버그의 이번 보도도 그런 인식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지닌 데다 최근 들어 달러화 강세 탓에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외환보유고 세계 6위권(6월 말 기준 4382억8000만 달러-한국은행 집계)에 랭크된 한국을 두고 디폴트 위기를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가능성 제로라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사실상 가짜뉴스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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