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표 ‘공정과 상식’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된 듯하다. ‘공정과 상식’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면서 앞세운 대표 구호다. 그 구호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에게는 치명적인 일이다.

신뢰 훼손의 가장 큰 원인은 인사다. 이를 새삼스레 확인시켜주는 것이 최근 한국갤럽이 발표한 대통령 지지율 관련 여론조사 결과다. 한국갤럽이 공개한 7월 넷째 주(26~28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평가 비율은 28%에 그쳤다. 부정평가 비율은 62%로 집계됐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전국 성인 1000명 대상 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피 내용 참고).

부정평가 이유(자유응답) 중 첫 번째를 차지한 것은 ‘인사’였다. ‘인사’를 부정평가 이유로 든 응답자 비율은 21%에 달했다. ‘경험·자질 부족/무능함’(8%) 등에 이어 ‘소통 미흡’(6%), ‘경찰국 신설’(4%), ‘여당 내부 갈등/문자 노출’(3%)을 부정평가 이유로 지목한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이런 조사 결과는 윤석열 정부의 인사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음을 말해준다. 장관 후보자들의 각종 결함과 ‘사적 채용’ 논란이 그 배경을 이룬 것으로 분석된다. 나아가 인사에 비판적인 여론을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거스르려 한 윤 대통령의 독선적 행태가 지지율 하락을 또 한 번 재촉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그의 대표 가치가 지지율 하락의 제1 원인으로 지목됐다는 점은 관전자에겐 아이로니컬한 일이고, 당사자에겐 무척이나 당혹스럽고 민망스러운 일일 것이다.

연이은 인사 논란을 감안할지라도 취임 석 달도 안 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20%대로 하락한 것은 ‘사건’이라 할 만하다. 과거 이명박 대통령처럼 야당의 공작적 이슈 부풀리기 공격에 말려든 것도 아니고, 노태우 대통령처럼 정통성 시비에 휘말린 일도 없는 그가 이처럼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는 것은 일반적이라 할 수 없다.

주변의 우려와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출근길 약식회견을 감행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적지 않은 이들로부터 ‘소통 미흡’ 지적을 받은 것은 더욱 이채롭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만도 한 일이다. 이채롭기로 치면 ‘경찰국 신설’이 대통령 지지율을 일정 부분 갉아먹고 있는 점도 ‘소통 미흡’ 못지않다고 하겠다.

특히 경찰국 이슈를 둘러싼 여론의 반응은 윤 대통령에겐 꽤나 답답하고 억울한 일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실 권한을 줄여가면서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방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고 느낄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설은 박수를 받을지언정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대통령 보좌기능이 있을 뿐 정책 결정 및 집행 권한이 없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편법적으로 수행해오던 업무를 경찰청 소속 기관인 행정안전부가 담당하는 것은 비정상의 정상화에 해당한다.

내놓고 ‘경찰독립’을 주장할 명분이 없는 한 경찰국 신설에 반발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만약 누군가가 경찰독립을 주장한다면 그건 군부독립 주장 못지않게 터무니없는 일이 될 것이다. 경찰은 수사 말고도 예방적·후행적으로 일선치안을 담당하고 있고, 그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기를 소지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경찰의 직무는 방범 외에 교통·경비·정보 등의 분야까지 아우르고 있다. 이런 점들만 놓고 보더라도 경찰을 검찰과 수평적으로 비교하려는 것은 애시당초 잘못된 일이다.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모든 문명국들에서 당연시되는 일이다. 그 주체가 어디인지에 다소 차이가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독립에 관한 한 경찰이 주장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그 대상은 철저히 수사권에 국한돼야 한다. 따라서 논쟁 또는 반발을 하더라도 ‘경찰국 신설’이 아니라 수사권 독립에 초점을 맞추는 게 국가와 사회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정부 또한 경찰의 수사권 독립, 정치적 독립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경찰국 신설에 대한 홍보도 좋지만 이 부분에서 성의를 보이는 것이 제도 개선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율은 안 해도 될 일, 지지율 관리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피했어야 할 일을 굳이 강행한 것과도 어느 정도 관련돼 있다. 출근길 약식회견이나 민정수석실 폐지에 따른 ‘경찰국 신설’, 보다 근원적으로는 청와대 개방 등등이 그런 행동에 해당한다.

윤석열 정부가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 개혁 등 각종 개혁 작업들도 대통령의 국정수행 평가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나아가 노동시장 개혁이나 연금 개혁, 건보체계 개편 등 인기는 없지만 반드시 해야 할 과제를 추후 본격화하면 지지율은 또 한 번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지율만을 의식해 개혁을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모순된 측면이 있지만 지지율이 받쳐주지 않으면 개혁 추진이 더 어려워질 수 있으니 여론관리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핵심은 신뢰다. 신뢰를 바탕으로 정책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받을 때라야 개혁 과제들의 완수도 가능해진다. 가장 먼저 신뢰 회복이 이뤄져야 할 분야는 인사다. 인사가 윤석열 정부 지지율 관리의 아킬레스건임이 확인된 이상 이 부분에서부터 공정과 상식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펼쳐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직 수행 경험을 담은 ‘노무현의 리더십 이야기’를 통해 “인사의 생명은 공정이 아니라 공정에 대한 신뢰”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인사권자 자신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들이 인사가 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비록 대통령 취임 이후엔 코드인사 시비에 휘말렸지만, 노 전 대통령은 해수부 장관 시절에만큼은 그런 철칙 하에 부내(部內) 인사를 실시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자체로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이다. 책 속의 해수부를 지금의 윤석열 정부로 치환하면, 윤 대통령 자신이 아니라 국민들이 공정하다고 믿을 수 있는 인사가 필요하다는 말이 될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 인사가 공정하고 상식적이라 판단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판단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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