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조만간 고점을 찍을 것이란 전망에 조금씩 힘이 실리고 있다. 소비자물가 상승곡선의 경사도가 완만해지며 수평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 그 논거다.

2일 통계청은 ‘소비자물가동향’ 발표를 통해 7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6.3% 상승했다고 밝혔다. 상승률은 전달보다 0.3%포인트 높아졌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작년 10월 3%대로 올라선 뒤 올해 3월 4%대로 더 올랐고, 5월엔 5%대, 6월엔 6%대로 폭을 키워갔다.

하지만 상승곡선의 기울기는 점차 완만해지는 추이를 나타냈다. 이는 올해 3~7월의 전년 동월 대비 월별 상승률 흐름(4.1%→4.8%→5.4%→6.0%→6.3%)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달 대비 상승률 또한 3~5월 0.7%에서 6월 0.6%, 7월 0.5% 등으로 점차 축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상승세가 완만해지면서 정점이 기존 예상보다 다소 앞당겨질 가능성도 조심스레 거론된다. 정부나 통화당국 관계자들의 당초 전망보다 이른 시점에 고점을 찍고 상승률이 감소 추세를 보일 수 있다는 의미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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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유가동향 등을 거론하며 “9월 말이나 10월 정도면 물가 정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었다. 이후 진행된 국회대정부질문에서도 추 부총리는 비슷한 전망을 제시했다. 추 부총리는 야당 의원의 물가전망 질의에 답하면서 “한 두 달이 지나면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덜어질 것”이란 취지를 밝혔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도 이달 1일 국회에 출석해 답변하면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를 넘어 2~3개월 정도 상승세를 이어간 뒤 서서히 안정될 것이란 전망을 제시했다.

두 사람의 발언을 종합하면 9월 또는 10월엔 물가상승률이 고점을 찍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다소 보수적 스탠스를 취할 수밖에 없는 추 부총리나 이 총재보다 적극적으로 고점 임박설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연구실장은 7월 소비자물가지수 발표가 나오자 7월과 8월 중 하나가 고점이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드러냈다. 폭염으로 신선식품 가격이 불안해지는 바람에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높게 나왔지만, 석유류 가격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는 점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기획재정부 김희재 물가정책과장도 “국제유가가 다소 하락했고 유류세 인하 조치 등이 더해지면서 석유류에 의한 물가상승 압력이 둔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선 국회 답변에서 추 부총리 또한 유류세 인하와 비축물량 방출, 육류와 마늘·양파 등의 수입 증가 등을 강조함으로써 물가가 조만간 잡힐 것임을 시사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8월부터 물가 상승세가 약화될 것이란 전망은 통계청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서도 제기됐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7월 물가동향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물가상승을 주도해온 대외 요인들이 다소 완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다음 달 물가상승률이 6% 밑으로 내려가진 않겠지만, 7%대로 올라갈 가능성도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그는 또 작년 8, 9월에 물가상승률이 높았던 점을 지적하면서 다음 달부터는 역기저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교 시점의 물가가 워낙 높았던 탓에 오는 8~9월의 전년 동기 대비 물가상승률이 마냥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였다. 어 심의관은 그 같은 전망을 토대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는 넘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물가상승세의 완만한 흐름은 한국은행의 긴축 기조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지난 4월부터 가속화된 점을 감안하면 그 효과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회의에서 세 번 연속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인상폭도 사상 처음 0.50%포인트로 늘리는 강수를 두었다.

한은은 인플레이션 심리지표인 기대인플레이션율이 7월 들어 역대 최고치인 4.7%를 나타내자 지속적으로 금리인상 메시지를 발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국회 발언을 통해서도 물가오름세가 꺾일 때까지 긴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기준금리 인상은 가계의 대출금 이자 상환 부담을 늘려 소비여력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소비 위축은 소비자물가 상승세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작용을 할 수 있다.

‘7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나타난 소비자물가 상승률 6.3%는 외환위기가 진행 중이던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두 달 연속 6%대 상승률이 나타나기는 1998년 10월(7.2%)과 11월(6.8%)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8.74(2020년 = 100)로 집계됐다.

7월 물가를 주도적으로 끌어올린 품목은 공업제품(8.9%)과 개인서비스(6.0%)였다. 두 품목의 기여도는 각각 3.11%포인트와 1.85%포인트였다. 이들 두 품목만 배제한다면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대 초반에 머물렀을 것임을 보여주는 내용이다.

공업제품 중에서도 특히 상승률이 높았던 것은 석유류(35.1%)였다. 석유류 상승세는 전달(39.6%)보다는 다소 꺾였다. 가공식품도 8.2%의 상승률을 나타냈는데 그 중에서도 빵값(12.6%)의 상승률이 두드러졌다. 개인서비스 상승률이 6%대로 올라선 것은 1998년 4월(6.6%)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의 억제정책으로 인해 공공서비스 상승률은 0.8%로 비교적 낮게 기록됐다.

보조지표들인 생활물가지수와 신선식품지수, 근원물가지수,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각각 7.9%, 13.0%, 4.5%, 3.9%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7월 생활물가지수는 1998년 11월(10.4%) 이후 23년여 만에 가장 높게 집계됐다. 이는 오늘날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물가고로 인해 느끼는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용어 설명>

*생활물가지수: 전체 458개 품목 중 구입 빈도가 높고 지출 비중이 큰 144개 품목을 대상으로 따로 집계한 물가지수.

*신선식품지수: 생선과 해산물, (가공되지 않은) 신선채소, 신선과일 등처럼 계절 및 기상조건에 따라 가격변동이 심한 55개 품목을 대상으로 따로 집계한 물가지수.

*근원물가지수: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로 불리기도 함. 계절적 요인이나 일시적 충격에 의한 물가 변동성을 배제함으로써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준다. 전체 458개 품목 중 농산물과 석유류 관련 품목을 제외한 401개 품목을 대상으로 집계된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결정시 주로 참고하는 물가지수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맞춰 식료품 및 에너지 관련 품목을 뺀 309개 품목을 대상으로 작성되는 물가지수. 이 지수 또한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가늠하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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