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미국 물가 정점론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소비자물가가 정점을 통과했다는 뚜렷한 신호가 감지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물가 내림세는 당분간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동시에 제기된다. 상승세는 꺾였지만 지금 수준의 고물가 흐름이 당분간 평행선을 이룰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국제유가 등 기존 변수가 악화되면 물가가 다시 상승세로 전환할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물가동향은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에 직접 반영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지닌다.

10일 밤(한국시간) 미국 노동부는 7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1년 전보다 8.5%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0%였다. 이에 자본시장은 즉각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7월 상승률은 시장 전망치를 밑도는 것이었다. 시장은 특히 오름세로 일관해온 상승률이 전달보다 낮아졌다는 점에 주목했다. 1년 전 대비 7월 상승률이 전달의 9.1%보다 0.6%포인트나 감소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둔 것이다.

[사진 =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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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CPI 상승률이 더 높아지지 않은 점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7월 근원CPI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5.9%였다. 6월 상승률과 동일하다. 전월 대비 근원CPI는 0.3%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6월 근원CPI의 전월 대비 상승률은 0.7%였다. 종합하면 7월 근원CPI 상승률은 전년 대비로는 동일했고, 전달 대비로는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근원CPI는 에너지와 식품 등처럼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채 집계되기 때문에 물가의 추세적 흐름을 보여주는 자료로 활용된다. 연준이 가중치를 두고 살펴볼 수밖에 없는 물가지표다.

근원CPI 상승세 둔화는 국제유가가 최근 들어 안정세로 돌아선 것과 연관돼 있다. 지난달 미국의 에너지물가는 전달보다 4.6% 하락했다. 이중에서도 휘발유 가격은 7.7%나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7월 물가지표는 시장의 전망치보다도 크게 낮은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증시의 경우 기대 이상의 호재를 만났다고 할 수 있다. 앞서 블룸버그통신이 전문가 의견을 취합해 제시한 상승률 전망치는 전년 동기 대비 8.7%, 전월 대비로는 0.2%였다. 두 개 지표 모두에서 실제 발표된 수치가 0.2%포인트씩 낮았던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제시한 전년 동기 대비 7월 CPI 상승률 전망치 역시 8.7%였다.

상승률이 둔화됐지만 미국의 7월 물가지표는 국제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식료품 가격과 주거비 등이 증가하는 바람에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여러 품목 중에서도 식료품 가격은 전달보다 1.1%나 오르며 물가 흐름의 개선을 방해했다. 식료품 가격은 전월 대비로 7개월 연속 0.9% 이상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7월 식료품 가격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로는 10.9%에 달했다. 1979년 5월 이후 43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주거비용도 전월 대비 0.5%, 전년 동기 대비 5.7% 상승률을 나타냈다. 미국은 전·월세 외에 자가(自家)주거비까지 CPI지수에 반영해 물가통계를 작성한다. 자가주거비는 자가 거주자들이 자기 집을 임대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기회비용을 말한다. 즉, 자기 집을 임대했다고 가정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수익만큼을 비용으로 지불했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 우리 통계청은 자가주거비 관련 지수를 보조지표로 따로 집계하고 있을 뿐 소비자물가지수에 직접 반영하지는 않고 있다. 따라서 최근 수년 사이 크게 늘어난 집주인들의 보유세 부담 증가 등은 물가지수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의 물가 상승률이 실제와는 달리 미국보다 낮다는 착시현상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확연히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자 시장에서는 연준이 9월 통화정책 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폭을 다소 축소할지 모른다는 기대가 나타났다. 금리 인상폭에 대한 대체적 전망치가 당초의 0.75%포인트에서 0.50%포인트로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연준의 통화정책 추이를 관측하는 대표적 도구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FedWatch)’의 관측값 변화가 그 같은 분위기를 대변해주었다. 미국의 7월 CPI 발표 직후 공개된 페드워치 자료에 의하면 연준의 9월 기준금리 인상폭에 대한 확률은 0.50%포인트 56.5%. 0.75%포인트 43.5%였다. 기존 확률값은 0.50%포인트가 32%, 0.75%포인트가 68%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월 CPI 발표 직후 백악관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반색하는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완화될 수 있다는 징후를 보고 있다”고 말한 뒤 “지난달 인플레이션은 제로”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는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발언이란 해석이 나왔다.

국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 물가 상승세가 정점을 지났다는 신호가 발신됐지만 인플레가 꺾였다고 속단하기엔 이르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권희진 KB증권 연구원은 “아직 (미국) 물가 하락을 자신하기에는 이르다”며 “물가상승률이 당분간 8%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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