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대내외 악재들로 경제 환경이 열악해진 와중에도 주요 기업 경영진은 저마다 올해 상반기 중 ‘억!’ 소리 나는 보수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감탄사에 빗대 표현하다 보니 ‘억’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수십억대 보수가 예사였다. 상반기 중에만 이미 수백억대 보수를 챙긴 경영자들도 있었다. 이는 기업들이 반기보고서를 속속 공시하면서 드러난 사실들이다.

기업들의 최근 공시 내용을 뜯어보면 이들 경영진이 받은 올해 상반기 보수의 대종을 이룬 것은 상여나 특별공로금 등이었다. 스톡옵션 행사로 거액의 차익을 남긴 것도 그들의 보수를 키우는데 일조했다.

반면 이들 대부분이 받은 급여는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주 메뉴보다 사이드 메뉴가 더 풍성하고 화려하게 제공됐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월급은 그야말로 허울일 뿐 실제 보수는 그 몇 배 또는 몇 십 배에 달하는 게 보통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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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같은 현상이 올해에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기업 경영진이 거액의 보수를 받는 것 자체를 무작정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환란 이후 최악이라는 지금의 경제 환경에서 이들 경영진이 자신들을 위한 내부 잔치를 요란하게 벌이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는 외부인들의 심정은 씁쓸할 수밖에 없다.

거북한 감정은 해당 기업들에 ‘영끌’을 통해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사람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코로나19 여파로 생사의 기로에 선 자영업자 등 소상공인들만이 느끼는 감정이라 할 수도 없다. 열심히 일하지만 고물가·고금리 등 경제 환경 악화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다수의 서민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거액 보수의 대표적 사례를 들자면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을 빼놓을 수 없다. 신 회장은 대기업 총수 중에서도 가장 많은 보수를 챙긴 것으로 확인됐다. 신 회장은 올해 상반기 동안 롯데지주와 6개 계열사로부터 도합 102억85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액수 자체도 크지만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전년 동기 대비 증가폭이다. 신 회장의 상반기 보수 총액은 작년 동기에 비해 23억원 이상 늘었다. 인상률로 치면 30%에 육박한다. 그가 롯데지주로부터 상반기 중 받은 보수는 이미 지난해 전체를 통틀어 받은 액수(35억170만원)를 넘어섰다.

신 회장의 보수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무보수 경영과 대조를 이뤘다. 사법 리스크의 여파라고는 하지만 이 부회장의 제로 보수와 뚜렷이 대조되는 경영진은 또 있었다. IT업계 대표 주자 격인 카카오의 조수용·여민수 전 공동대표가 그들이다. 두 사람은 올해 상반기 중 각각 361억4700만원, 332억1700만원의 보수를 손에 쥐었다. 이들 두 사람은 전문경영인 중 국내 최고를 다퉜다. 이들이 받은 보수의 대부분을 차지한 것은 스톡옵션 행사에 따른 차익이었다. 조 전 대표는 337억5000만원, 여 전 대표는 318억2400만원을 스톡옵션 행사로 챙겼다.

[사진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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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의 반기 보수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 중 하나는 SK다.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은 올해 상반기 중 96억2900만원의 보수를 챙겼다. 스톡옵션 행사가 보수 수준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박 부회장이 스톡옵션 행사로 얻은 차익은 84억2600만원에 달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부회장도 87억5900만원의 거액을 상반기 보수로 취득했다. 그가 SK하이닉스에서 받은 상여금만 해도 44억7500만원이나 됐다. 올해 3월 SK하이닉스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이석희 사장은 급여와 상여, 퇴직금을 합쳐 84억2400만원을 상반기 동안 수령했다.

이들이 받은 상반기 보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17억5000만원)의 보수를 크게 능가했다. 다만 최 회장의 급여는 공시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번에 공개되지 않았다. 최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SK하이닉스에서는 상여금을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전자에서는 대표이사 출신인 김기남 종합기술원장(회장)이 경영진 중 가장 많은 보수(32억6400만원)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급여가 8억6200만원이었고, 상여는 그보다 훨씬 많은 23억3500만원에 달했다. 나머지는 복리후생 차원에서 지급된 것들이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71억여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구본준 LX그룹 회장은 나란히 54억여원,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53억여원,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49억여원, 이부진 호텔신라 회장은 24억여원을 각각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올해 상반기 보수는 32억5000만원이었다.

포스코의 경우 경영진 급여의 인상률이 비교적 높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의 상반기 보수는 18억8000만원이었다. 지난해 동기 대비 증가율은 91.1%였다. 전중선 포스코홀딩스 사장은 10억9400만원을 받았는데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100% 이상이었다. 9억4500만원의 보수를 받은 김학동 포스코 부회장의 보수 증가율도 59.9%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보수 증가를 이끈 것은 상여금이었다. 포스코는 이에 대해 장기 인센티브를 몰아서 받은 덕분이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금융업계에서는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급여(4억2440만원)와 상여(46억6477만원)를 포함해 50억 이상의 보수를 챙겨 금융업계 1위에 등극했다.

서민경제를 포함, 국가경제 전반을 타격한 고유가 현상을 업고 호황을 누린 정유업계의 경우 회사 전체의 평균 보수가 상반기 지급분만으로도 1억원 내외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석유기업들을 상대로 일고 있는 ‘횡재세’ 부과 요구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국내 정유사들의 상반기 평균 보수는 8000만원을 넘어섰다. 반년치 보수가 웬만한 대기업의 평균 연봉에 맞먹게 된 것이다. 에쓰오일의 경우 상반기 평균보수가 이미 1억원을 넘긴 것으로 밝혀졌다. 에쓰오일의 올해 상반기 평균 급여는 1억77만원이었다.

사실 새로울 것도 없는 주요 기업 경영진의 거액 보수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이 기업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주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비상한 시기에 그 수준이나 증가율이 지나치게 높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은 새로 들어선 정부. 그것도 ‘기업 프렌들리’란 평을 듣는 보수 정부가 시장개입 논란을 무릅써가며 경영계에 임금 인상 자제를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다. 대기업의 과도한 임금 인상이 심각한 고물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자제 권고 이유다.

정부의 권고가 아니더라도 지금은 기업들 스스로 자제하고 삼가는 미덕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다수의 민생고를 외면한 채 벌어지는 경영진의 과도한 자축 파티는 그 자체로도 문제이지만, 임·직원과 노동조합 등의 임금 인상 욕구를 자극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행태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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