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첫 번째 예산안 수립의 기본방침이 제시됐다.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 결과 브리핑을 통해서였다. 여당 정책위의장이 기자 브리핑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내년도 예산안 수립의 기본방침은 대대적인 지출 구조조정을 통한 건전재정 확립이었다. 예산안의 콘셉트는 ‘국민의 삶과 다음 세대를 위한 예산’으로 정리됐다.

새 정부는 취임 이래 줄곧 건전재정 추구 의지를 드러내왔다. 내년도 예산안은 그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해줄 중요한 판단 자료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예산안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짜일지에 대해 많은 이들이 관심을 쏟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의 브리핑 내용을 종합하면 큰 틀에서는 일단 방향 설정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총지출 규모를 줄이면서도 그 범위 안에서 지출 항목을 조정해 사회적 약자와 청년, 민생경제 회복에 최대한 많은 재원을 투입한다는 게 브리핑의 대강이었다.

우리에게 건전재정 확립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정부 5년 간 재정이 방만하게 운용된 탓에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국가신인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받기에 이르렀다. 지난 정부에서만 국가채무가 약 400조원 늘어나 1000조원을 넘기게 된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국가채무가 급증하는 바람에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를 넘나드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마저도 새 정부가 초과세수 일부를 국채상환에 쓰기로 함에 따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국가채무 비율이 36%였던 것에 비하면 그 증가 속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해주는 수치들이다.

국가채무 비율이 워낙 빠르게 치솟다 보니 수치가 주는 긴장감까지 풀어지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오랜 동안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40%선이 무너진 이후 비율 상승 속도가 급증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 결과 재정준칙을 논하며 제시하는 억제 기준선이 60%선으로 대폭 올라가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그 정도나마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한다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 정도 기준에서라도 입법을 통해 비율 관리가 엄격히 규율된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성일종 의장이 밝힌 대로 국가채무를 마구 늘려가며 재정을 앞당겨 쓰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저당 잡는 행위나 다름없다. 지금 우리가 국채를 발행해 확보하는 재정은 채무 상환의 메커니즘을 감안할 때 대체로 한 세대 뒤의 후손들에게 빚으로 떠넘겨지게 돼 있다. 그런 만큼 적자국채 남발은 국가의 영속성과 후대를 생각한다면 최대한 삼가야 할 일이다.

정부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재정 운용을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첫 걸음이 긴축 예산안 편성이다. 여당이 정치적 이해 탓에 이런저런 주문을 내놓고 있지만 보다 냉철한 기준으로 국정철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예산안을 수립해야 한다.

가장 크게 경계해야 할 것은 포퓰리즘이다. 성 의장이 밝힌 여당의 예산안 관련 주문 내용 중 상당 부분에서도 포퓰리즘 요소들이 엿보이는 게 사실이다. 예를 들어 1인당 300만원으로 윤곽을 잡은 청년 도약지원금 등이 그에 해당한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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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도약준비금 지급은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후보의 공약에도 들어가 있었다. 이재명 후보의 청년기본소득, 심상정 후보의 국가일자리보장제 등에 맞대응하는 차원에서 마련된 공약이었다. 세 개 공약 모두 다분히 포퓰리즘 요소가 깃든 것들이었다.

특히 당장 아쉬운 이들에게 현금을 쥐어주는 것은 수혜 당사자와 종류가 무엇이든 결코 좋은 공약이라 할 수 없다. 그렇게 해서 이전소득을 늘려주면 정권이 인기를 얻고 소득 관련 국가통계도 일시 개선되는 효과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현금성 지원의 부작용은 이전 정권이 실업급여 수혜 대상과 지급 하한을 크게 늘리고 높인 뒤 재취업률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그 같은 현상은 재취업을 하는 것보다 잠시 일한 다음 장기간 쉬면서 실업수당을 받는 것이 더 이롭다고 생각하는 환경이 조성된 탓이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는 요즘 들어 퇴직 후 일자리가 생겨도 한동안 쉬겠다는 이들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잠시 취업했다가 장기간 쉬는 일을 반복하며 여러 차례 실업급여 혜택을 누리는 이들도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 모두가 포퓰리즘이 곁들여져 탄생한, 과도한 현금성 지원의 부작용을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포퓰리즘은 국가에 해를 끼치면서 정권을 위한 도구로만 기능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지닌다. 정부 예산에 포퓰리즘이 개입되면 정권이 단기 이득을 누릴 수 있지만 국가재정은 서서히 건강을 잃어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린 그동안 포퓰리즘에 찌든 예산안을 반복해서 경험해왔다. 그러던 차에 새 정부가 모처럼 총지출 규모를 줄인 예산안을 편성한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예산안이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보여줄 확실한 징표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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