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올해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14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면서 규모도 300억 달러를 넘볼 가능성이 제기된다.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 경제가 위기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라 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무역수지 적자 행진은 당분간 더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금의 무역수지 적자가 수입물가는 크게 올라간 반면 수출물가는 내려간 데 주로 기인한다는 점이 그런 전망의 배경이다. 수입물가 상승은 원자재를 중심으로 하는 공급망 흔란과 고유가 현상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현실과 연결돼 있다. 이와 달리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는 가격 하락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서 수출물가 상승에 대한 기대를 흐리게 하고 있다.

21일 관세청이 공개한 이달 1~20일 수출입현황에 따르면 이 기간 중 수출액(통관기준 잠정치)은 329억5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8.7%나 감소한 액수다. 1~20일 수입은 370억63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수출이 감소한 것과 달리 수입은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6.1% 증가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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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은 늘고 수출은 줄어드는 바람에 해당 기간 무역수지는 41억5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게 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중 무역수지가 218억3700만 달러 흑자를 보였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이달 20일까지의 수출액을 감소시킨 원인으로는 명절 연휴로 인한 조업일수 감소를 우선 꼽을 수 있다. 이 기간 조업일수는 13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일 줄어들었다. 20일까지의 수출액이 줄었지만 일평균 수출액은 전년보다 1.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에 대한 수출이 14.0%나 줄어든 점도 이달 수출 부진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우리의 대중(對中) 수출은 지난달까지 3개월째 감소 흐름을 보여주었다.

품목별로 승용차(-7.5%)와 철강제품(-31.6%), 무선통신기기(-25.9%), 자동차부품(-12.3%), 컴퓨터 주변기기(-25.5%) 등의 수출이 줄어든 것도 해당 기간 수출 실적을 악화시킨 원인으로 분류됐다. 반면 주력인 반도체 수출은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3.4% 증가했다.

수입은 증가율 면에서 15개월 연속 수출을 웃도는 모습을 보였다. 수입 증가율은 이달 전체로도 수출 증가율을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달 1~20일의 일평균 수입액은 전년보다 16.3%나 증가했다. 주요 품목별 수입 증가율은 원유 16.1%, 반도체 11.1%, 가스 106.9%, 석탄 12.8% 등이었다.

20일까지 나타난 이 같은 교역 실적에 따라 9월에도 무역수지는 적자를 보일 가능성이 커졌다. 9월 무역수지 적자가 현실화될 경우 월간 무역수지는 6개월째 적자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무역수지 6개월 연속 적자는 1997년 5월 이후 25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일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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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4월 24억82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한 이래 지난달까지 줄곧 흑자 전환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후의 월별 적자폭은 5월 15억9300만 달러, 6월 25억100만 달러, 7월 50억7700만 달러, 8월 94억8700만 달러 등이었다. 이로써 올해 초부터 이달 20일까지 누적된 무역적자 규모는 292억1300만 달러로 늘어났다.

무역수지 적자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올해 연간 적자액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 제시됐다. 21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공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올해 우리의 연간 무역적자는 281억70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전경련이 이달 6~15일 15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을 상대로 의견을 물어본 데 따른 결과다.

이 전망대로라면 올해 전체 무역적자 누계액은 이달 20일까지의 누적 적자(292억1300만 달러)보다 작아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응답자 중 40%는 올해 무역적자 누계가 300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전망했다고 전경련은 덧붙였다.

전경련은 또 응답자 중 53.3%는 무역수지 적자폭이 지난 달(94억8700만 달러)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았다고 설명했다. 응답자의 86.7%는 오는 11월 안에 월간 무역적자가 최대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응답자들은 하반기에 수출 증가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으로 자동차와 이차전지·석유제품 등을, 수출 감소폭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품목으로는 컴퓨터·반도체·무선통신기기 등을 차례로 지목했다.

무역수지 악화에 대해 정부는 지나친 우려를 경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서 한덕수 총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무역수지보다 경상수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통관 기준으로 작성되는 무역수지가 소유권 이전을 기준으로 집계되는 상품수지나 경상수지에 비해 외화 수지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상품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섰고, 경상수지 흑자폭이 크게 감소하는 모습까지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상품수지는 6월 35억9000만 달러 흑자에서 7월 11억8000만 달러 적자로 바뀌었다. 그 바람에 같은 기간 경상수지 흑자폭이 56억1000만 달러에서 10억9000만 달러로 크게 감소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주재로 관계부처 장관과 업종별 협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수출입동향 점검회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추 부총리는 수출 활력 제고를 위해 물류비와 수출 바우처, 수출 상담회 등의 지원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추 부총리는 “최근 수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는데다 에너지 수입액 급증으로 무역적자가 이어지고 있다”고 밝힌 뒤 “수출 제약 리스크와 에너지 가격 변동성에 대한 면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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