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긴축 기조가 예상 외로 강경하다는 사실이 뚜렷이 확인된데 따른 변화다. 한은이 특히 주목한 것은 미국의 향후 기준금리 정점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다. 한은 내 분위기 변화는 22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연준이 기준금리를 또 한 번 0.75%포인트 인상한데서 비롯됐다.

한은의 입장 변화를 유도한 진짜 요인은 이번의 금리 인상 자체가 아니라 향후 예상되는 연준의 금리인상 경로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어디까지 올릴지에 대한 시장의 기대치가 이전보다 높아진 점이 분위기 변화를 자극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22일 오전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이 나온 직후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가 결정할) 0.25%포인트 인상의 전제조건이 많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이 총재는 “0.25%포인트 인상 기조가 지금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이같이 답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을 결정한 뒤 올해 남은 두 차례의 금통위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가 0.25%포인트씩 올라갈 가능성을 시사했었다. 이 총재는 또 ‘물가와 성장 등의 전망경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이란 전제를 붙이긴 했지만 “당분간 0.25%포인트씩 인상하겠다는 것이 한은의 기조”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의 단계적·소폭 기준금리 인상 시사는 수차례에 걸쳐 이어졌다.

그랬던 이 총재가 이날은 전제조건이 바뀌었다고 밝힘으로써 향후 한은의 긴축 기조가 보다 강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로써 당장 다음달 12일로 예정된 한은 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0.50%포인트 인상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총재는 자신이 제시한 포워드 가이던스(사전예고 지침)에 변화가 오게 된 배경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미국 기준금리 목표점이) 4%에서 안정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는 다음 번 금통위 회의까지 시일이 남아 있는 만큼 전제조건의 추가 변화 등을 면밀히 검토해가며 기준금리 인상폭과 시기 등을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다음 달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이 가능하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면서도 섣부른 예단을 경계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현재 한은이 가장 크게 고민하는 부분은 거침없는 달러화 강세 흐름일 것으로 분석된다. 이날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발표하자 국내 금융시장이 출렁이면서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저항선이었던 1400선을 단숨에 넘어섰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이날 ‘한미 기준금리차 변화가 환율에 미칠 영향’ 보고서를 공개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1434원까지 올라갈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경연의 이 같은 분석은 한은이 올해 중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또는 0.50%포인트씩 올리더라도 양국 간 기준금리 격차가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데 기반을 두었다.

이날 현재 시장에서는 올해 말 연준의 기준금리가 상단 기준 4.50%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새로운 기대가 형성됐다. 지금보다 1.25%포인트 높아진 수준이다. 이는 한은이 올해 남은 두 차례 금통위 회의에서 현행 2.50%인 기준금리를 연이어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한들 도달할 수 없는 높이다.

한은으로서는 최소한의 환율 방어를 위해서라도 연준과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추려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 셈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문제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마냥 끌어올릴 수만은 없다는 데 있다. 한은은 지난달 금통위 회의까지 연이어 네 차례나 기준금리 인상행진을 펼쳐왔다. 그 중 한 번은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이었다.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1800조를 헤아리는 가계부채의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내수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은 등의 분석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만 올라도 가계의 연간 이자부담은 3조원 남짓 늘어나게 된다.

한편 미국 연준은 이날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키로 결정했다. 이른 바 자이언트 스텝을 세 번 연속 밟은 셈이다. 이에 따라 연준의 기준금리는 3.00~3.25%로 높아졌다. 상단 기준으로 한국보다 기준금리가 0.75%포인트나 높아지게 된 것이다. 미국의 상단 금리 3.25%는 2008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날 결정된 금리 인상폭은 시장의 예상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시장이 더 큰 관심을 둔 부분은 완화될 기미를 전혀 드러내지 않은 연준의 긴축 의지였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와 FOMC의 견해로는 가야 할 길이 멀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점도표를 거론하면서 연준 위원들이 전망하는 올해 기준금리 중간값이 이날 결정된 기준금리 수준보다 1.25%포인트 높다는 점을 덧붙이기도 했다.

이날 연준이 공개한 점도표는 올해 말 연준의 기준금리를 4.4%로 예상하고 있었다. 점도표는 연준 위원 각자가 예상하는, 또는 적절하다고 느끼는 향후의 기준금리를 시점별로 표시해 보여주는 점 그래프다. 이번에 공개된 점도표상의 올해 말 기준금리 중간값(4.4%)은 3개월 전 점도표에 나타났던 것보다 1.00%포인트나 상승했다. 연준 내 기류가 그만큼 매파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시장에서는 연준이 올해 11월과 12월 FOMC 회의에서 빅 스텝과 자이언트 스텝을 번갈아 취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점도표 경로대로 진행되려면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1.25%포인트 정도는 더 올라가야 한다는 점이 그 같은 전망의 배경이다.

연준의 강경 기조 강화는 미국의 소비자물가가 좀처럼 꺾이지 않는 현실에서 비롯됐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 달 8.3%를 기록, 전달보다 0.2%포인트 내려갔다. 하지만 시장의 기대치보다는 크게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곧 연준이 기대인플레이션율을 낮추기 위해 강성 메시지를 발신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날도 파월 의장은 “물가상승률이 2%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고 확신하기 전엔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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