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윤석열 대통령이 연일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약자복지’다. 틈만 나면 이 단어를 입에 올리고 있다. 약자복지를 윤석열 정부의 복지철학으로 확립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통령실도 열심히 추임새를 넣고 있다. 내년도 복지분야 예산에서 중앙정부 가용재원의 90% 이상을 약자복지에 투입하겠다는 등 홍보에 열심이다. 급기야 ‘약자복지 글로벌 버전’이란 추임새까지 등장했다. 윤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한국의 국제사회 책임론을 강조하자 그 말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대통령실 관계자가 사용한 표현이었다. ‘꿈보다 해몽’이라 할 만한 설명이었다.

‘글로벌 버전’은 나가도 너무 나간 표현이었다. 약자복지의 브랜드 파워는 국내에서도 미약하다. 실체가 모호해 국정철학이라기보다 일반론으로 인식되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의제 설정의 발원이 윤 대통령 자신인지 사회수석실인지 알 수 없지만 약자복지는 어느 날부터인가 윤 대통령이 자주 입에 올리기 시작했고, 최근엔 그 빈도가 부쩍 높아졌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엇이 준비돼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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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에서 약자란 말이 자주 회자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했다. 이 내용은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에도 기술돼 있다. 사회분야 국정과제엔 ‘한 사람의 국민도 홀로 뒤처지지 않도록 약자와 동행하는 사회’를 추구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사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약자복지는 선별복지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들 개념은 정작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엄선해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복지 효과를 얻자는 공통의 취지를 담고 있다. 평등의 가치를 보다 중시하는 진보 진영의 보편복지와 차별화되는 개념이다.

약자복지는 보수 진영이 오래 전부터 고수해온 복지의 기본철학이라 할 수 있다. 보수 원로인 이재오 전 의원은 5년여 전 늘푸른한국당 공동대표로 활동하던 당시 약자복지를 국가운영의 기본정책 중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당시 그는 개헌을 통해 ‘약자복지’를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에 포함시키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약자복지는 보수 성향의 윤석열 정부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개념이다. 전부터 표방해온 대로 작은 정부를 추구하며 재정건전성을 높이려면 저출산·고령화 등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복지예산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무너져가는 중산층 회복에 쏟아부을 여력도 확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자면 약자복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현 정부가 나름의 약자복지 실천 방안을 고민한 흔적도 엿보인다. 윤석열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소득 지원에 집중하고, 돌봄·요양·건강·교육 등 범사회적 서비스복지는 민관협업 등을 통해 서비스 제공기관을 다원화한다는 내용이 정리돼 있다. 세부실천 방안 중 하나로는 노령 약자들에게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린다는 것 등이 제시됐다. 다만, 여기엔 전제가 붙어있다. 국민연금 개혁과 병행해 제한된 인원을 대상으로 차근차근 추진한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이 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기초연금 40만원 지급방안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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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복지는 잘만 다듬고 체계화시키면 윤석열 정부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로 개발될 여지를 안고 있다. 보수의 복지철학을 뭉뚱그려 담아내기에 이보다 적절한 이름도 없을 것 같다. 쉬우면서도 메시지가 분명한 네이밍 덕분에 정책에 대한 소구력도 덩달아 강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약자복지는 전문적 검토나 부처 간 심도 있는 협의 등을 통해 정리된 정책으로서의 개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그렇게 개발할 의지가 있는지도 불분명하다. 한 가지 분명해 보이는 건 정치적 선전을 위한 구호로서의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현 단계에선 그렇게 비쳐진다. 정부 인사들이 대립적 개념으로 ‘정치복지’를 앞세우는 것을 보면 그런 인상은 더욱 강해진다. ‘정치복지’란 말엔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의 복지철학에 포퓰리즘이 깃들어 있음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배어 있다.

성취동기마저 사라져버리게 하는 퍼주기 복지가 많은 폐해를 낳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굳이 먼 과거의 역사를 들먹일 것도 없다. 미국 민주당 정부가 감염병 팬데믹 기간 동안 해고 노동자에 대한 현금 지원에 치중한 나머지 취업 기피현상과 구인난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 현실이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전 정부가 실업급여의 하한을 대폭 높이고 수혜기간을 늘리는 바람에 일부 업종에서 그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실이 그런 만큼 윤석열 정부 인사들이 ‘정치복지’를 들먹이는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약자복지를 상대 진영의 인기영합적 복지정책을 비판하는 정치구호로만 쓰려 하는 행태가 아쉬울 따름이다. 굳이 정치구호로 동원하지 않더라도 약자복지는 그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레 비교우위와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는 복지철학이다. 단순한 철학을 넘어 그것을 바탕 삼아 지향점과 이행 방안을 다듬어 정책으로 구체화할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 직속이든 총리 직속이든 그 흔한 위원회 하나쯤 만들어 범정부적 논의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총예산 대비 복지관련 예산 비중이 날로 커져 이제 40%선을 넘본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또 위원회냐’라고 비난만 할 일은 아닌 듯 싶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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