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소비자물가가 꺾이지 않고 있다. 상승세가 주춤해지긴 했지만 고공행진을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언제부터 유의미하게 내림세가 시작될지도 지금으로서는 짐작할 수 없다. 물가에 영향을 미칠 대내외 변수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탓이다. 당국에서도 지금의 고물가 현상이 한동안 더 지속될 가능성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물가 관리 총책임자인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가 늦어도 10월이면 정점을 찍을 것이라 전망해왔다. 하지만 정점 이후에도 물가 하락세는 완만하게 장기간에 걸쳐 진행될 것이란 전망도 함께 제시했었다.

그런 전망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마냥 커지기만 하던 물가 상승률이 7월 이후 크게 등락하지 않은 채 비슷한 수준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5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8.93(2020년=100)을 기록했다. 작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5.6%였다.

[사진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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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월별 물가 상승률은 두 달째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7월 6.3%까지 올라간 뒤 8월엔 5.7%로 둔화됐고, 9월 들어 한 번 더 내려간 것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감소 추이가 수평에 가까울 정도로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6% 전후의 물가 상승률 흐름은 외환위기가 닥쳤던 1998년 11월(6.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물가동향의 세부 내용도 긍정적이라 할 수 없다. 소비자들의 물가고를 반영하는 생활물가지수가 6.5%나 올랐다는 점이 그중 하나다. 이 지수는 전월(6.8%)보다 낮은 상승률을 보였지만 소비자물가지수보다는 0.9%포인트나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가 4.5%로 전달(4.4%)보다 상승률을 키웠다는 점도 달갑잖은 내용이다. 이는 물가의 기조적 흐름이 아직도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말해준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지난 6월과 7월에 각각 4.4%, 4.5%를 기록했었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자료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가 상승률을 지속적으로 키우고 있는 점도 신경쓰이는 대목이다. 이 지수의 9월 상승률 또한 전달(4.0%)보다 높은 4.1%를 기록했다. 이 지수는 6월 3.9%, 7월 3.9%의 상승률을 보인 이후 미미하게나마 그 폭을 키워가고 있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맞춰 309개 품목만을 대상으로 집계한 기조물가지수다.

국내 물가는 당분간 5~6% 정도의 상승률을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 전망이다. 물가 흐름의 방향은 상·하 모두를 향해 열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소비자물가지수만 놓고 보자면 소비자물가는 지난 7월에 정점을 찍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후엔 완만하나마 상승률이 감소하고 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하지만 통계 당국 관계자는 이에 대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정점이 지났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답하면서도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의 감산 결정과 10월 전기·가스요금 인상, 환율 등 상방 요인이 있다”고 덧붙였다. 추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 집계치(6.3%) 이상으로 높아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음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다. 어 심의관은 특히 유가 흐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가 흐름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면 지금 수준에서 물가 상승률이 등락하지 않을까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물가 상승률이 더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열린 물가상황 점검회의에서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당분간 소비자물가가 5~6%대의 높은 상승률을 보일 것이란 전망을 제시했다. 그는 근원물가가 외식 등 개인서비스 품목을 중심으로 오름세를 확대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여전히 상방 위험이 잠재돼 있다고 분석했다. 그가 지목한 상방 위험 요소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전개 양상, 글로벌 긴축기조 강화, 고환율, 산유국 동향 등이었다.

한편 9월중 소비자물가는 석유류와 농산물을 필두로 개인서비스 요금과 전기·가스료가 일제히 오르면서 상승폭을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석유류는 16.6% 상승률을 기록했다. 지난 6월의 39.6%에 비하면 상승률이 감소했지만 여전히 두자릿수를 이어갔다. 석유류 중에서도 경유의 상승률(28.4%)이 특히 두드러져보였다. 반면 휘발유 상승폭은 5.2%로 크게 둔화됐다.

농산물 가격도 채소류(22.1%)를 중심으로 상승폭을 키운 나머지 8.7%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농산물 가격 상승을 주도한 것은 배추(95.0%)와 무(91.0%), 파(34.6%), 풋고추(47.3%) 등이었다. 축산물과 수산물은 각각 3.2%, 4.5% 상승률을 보였다.

개인서비스는 6.4% 올라 전달(6.1%)보다 상승폭을 키웠다. 이는 1998년 4월의 6.6% 상승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기·가스·수도료는 14.6%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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