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이 12일 또 한 차례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 결정을 내렸다. 독성 강한 빅스텝 카드가 석 달 만에 다시 선택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00%로 급격히 올라갔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은이 이 같은 결정은 내린 배경엔 꺾이지 않는 국내물가와 미국의 초강도 긴축이 자리하고 있다.

장기간의 고물가는 한은으로서는 발등의 불이라 할 만큼 다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지난 7월 6.3%의 상승률을 보이며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점이 뾰족한 봉우리가 아니라 밋밋한 형태를 이루며 서서히 낮아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정부도 10월 이후엔 물가가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지만, 더 이상 상승률을 키우지 않을 뿐 물가 자체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지금의 고물가 현상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발표한 의결문을 통해 “국내 물가가 상당 기간 5~6%대의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은이 제시한 올해와 내년의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각각 5.2%와 3.7%였다. 이것만 놓고 보더라도 고물가 해소가 장기간에 걸쳐 더디게 이뤄질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한은은 물가의 상방 압력이 여전히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환율 상승과 산유국들의 감산 등이 눈앞의 리스크로 꼽혔다.

이번 결정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한은 기준금리는 미국보다 상단 기준으로 0.25%포인트 낮은 상태에 머물게 됐다. 격차가 0.50%포인트만큼 좁혀진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 당분간의 일이 될 것이 확실시된다. 다음달 3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통화정책 논의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치면서 기준금리를 최소한 0.50%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연준이 다음달 FOMC 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미 세 번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취했다는 점에서 연준이 시장에 숨고르기 할 여유를 줄 것이란 기대도 있지만 연준의 분위기는 강경한 편이다.

지난달 공개된 점도표는 올해 말 연준의 기준금리 목표치가 4.25~4.50%(중간값 4.4%)임을 보여주었다. 목표치(연준 전망치)를 현실화시키려면 연준으로서는 오는 11, 12월 열릴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도합 1.25%포인트 올려야 한다. 남은 두 번의 회의에서 한 번은 빅스텝, 나머지 한 번은 자이언트 스텝을 취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전망은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을 재촉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 점이 다음 달 금통위 회의(24일)에서 한은이 또 빅스텝을 밟을지 모른다는 전망을 낳고 있는 이유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한국은행도 이날 금통위 의결문을 통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거론했다. 의결문은 “경기가 둔화되고 있지만 물가가 목표수준을 크게 상회하는 높은 오름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제한 뒤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의결문은 이어 “이 과정에서 향후 금리 인상의 폭과 속도는 높은 인플레이션의 지속 정도, 성장 흐름, 주요국의 통화정책 변화, 자본 유출입을 비롯한 금융안정 상황,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은의 강경한 기조는 최근 천장이 뚫린 듯 치솟고 있는 원/달러 환율과도 깊이 연계돼 있다. 환율이 마구 치솟으면 수입물가가 올라가고 그 여파가 고스란히 국내 소비자물가로 이어진다는 점이 그 이유다.

널뛰는 환율을 관리하려면 우리가 미국보다 기준금리를 더 높게 유지해야 하는데 그게 여의치 않다는데 한은의 고민이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따라가기 힘든 속도로 올라가고 있는 탓에 지금으로서는 금리 역전 폭을 최소화하는 게 한은의 현실적 목표가 돼버렸다.

문제는 역전 폭을 좁히려 들 경우에도 만만찮은 부작용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한은이 다음 달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에 보조를 맞추려 올해 마지막 금통위에서 또 다시 기준금리를 크게 올린다면 여러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 경기 침체 위험이 더 커지고 서민들의 가계부채 이자 부담이 덩달아 급등한다는 게 직접적인 문제로 거론된다. 한은 추산에 의하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만 올라도 부채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액은 3조원가량 늘어난다.

자영업자 대출을 포함하는 기업대출의 뇌관이 한층 민감해진다는 점도 문제다. 자영업자는 물론 기업들마저도 이자 부담이 늘어 한계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기준금리 인상 결정이 내려진 이날 소상공인연합회는 논평을 내고 “치솟는 금리는 한계에 직면한 소상공인을 부실로 내몰 우려가 크다”고 호소했다.

한은의 이날 결정으로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는 잠시 0.00~0.25%포인트로 좁혀졌다. 그러나 미국이 다음 달 초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리면 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으로 1.00%포인트까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외신들은 연준이 다음 달 FOMC 회의에서 빅스텝 또는 그 이상의 보폭을 취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이 심화되면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의 자금이 높은 수익률을 쫓아 미국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유출 속도가 빠르거나 규모가 클 경우 한은은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달러 사재기를 지원하는 역효과만 내면서 외환보유 금고마저 비게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결국 정답은 하나,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은도 가계 및 기업들의 부채 폭탄과 경기 위축의 위험성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기준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연준이 다음 달 초에도 자이언트 스텝을 취한다면 한은은 그날로부터 3주 뒤 열릴 금통위 회의에서 다시 한 번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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