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물가가 10월 이후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던 정부의 진단에 의문부호가 붙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물가가 아직 고점을 찍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목소리가 새삼스레 나타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고강도 긴축이 물가 안정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제기된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미국이 ‘킹달러’ 기류 속에서도 여전히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미국 외 국가들은 달러 대비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입물가 동반상승→자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의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러나 그런 연결고리 무관한 미국에서도 물가는 줄기차게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지난 여름 등장했던 물가 정점론에 대한 기대마저 거의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지난 7월 월가를 중심으로 물가 정점론이 제기됐었다. 정점에 대한 기대는 미 정부와 연준이 물가가 너무 높다며 인플레이션 잡기에 전념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와중에 나왔다. 당시의 기대감은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한 것과 관련이 있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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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전면에 나서 물가 정점론에 대한 기대를 키워왔다. 추 부총리는 10월 이후엔 물가가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견해를 밝힘으로써 정점론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도 지난 8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직후 당분간 그 정도 금리 인상폭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내비쳤었다. “당분간 0.25%포인트씩 인상한다는 것이 한은의 기조”라는 발언까지 했다.

당시만 해도 한은은 고물가보다 경기침체 가능성을 더 크게 우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결정 이후 한은이 밝힌 금리 결정 이유였다. 한은은 당시 금리 인상 결정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경기하방 위험성을 강조했다. 물가 상승을 다소 용인하더라도 경기침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게 시급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한은은 당시 ‘베이비 스텝’ 결정 배경을 설명하면서 경기 하방 위험의 증대를 거론했다.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당시 한은은 물가가 관리 가능한 범위 안에 있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 다음 달인 9월 연준이 세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는 등 초강수를 두자 한은도 입장을 수정했다. “전제 조건이 바뀌었다”는 것이 입장 변화의 이유였다. 물론 이창용 총재도 8월 금통위 회의 직후 기준금리 인상폭 최소화 의지를 드러내면서 ‘물가와 성장 등의 전망경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이란 전제를 붙였었다.

이 총재의 입장 변화를 입증하듯 한은은 이달 12일 열린 금통위 회의에서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결정했다. 결정적 이유는 예상 외로 끈질기게 전개되는 고물가였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고물가는 연준의 초긴축을 거쳐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꽤나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부정적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18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와 로이터 등 외신들에 따르면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이날 행한 연설에서 미국의 근원물가가 잡히지 않으면 연준의 기준금리 상단이 4.75%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외신 보도의 초점은 기준금리에 맞춰져 있었지만 그 같은 주장의 배경이 미국의 심상치 않은 물가 흐름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발언이 미국에서 고물가 진정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최근 발표된 미국의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8.2%였다. 8월 상승률보다는 0.1%포인트 낮아졌지만 유의미한 하락 흐름과는 거리가 멀었고, 시장의 기대에도 부합하지 못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근원CPI 상승률이 전달보다 오히려 커지며 1982년 8월 이후 최대 폭인 6.6%를 기록했다는 점이었다. 이는 미국 물가의 기조적 흐름이 우상향으로 이어지고 있을 가능성을 말해주었다.

연준이 보다 중시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도 9월에 상승세를 이어갔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시장의 컨센서스는 전달(4.9%)보다 상승한 5.1%에 맞춰져 있다.

물가가 안 잡히기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부나 한은 모두 물가가 이 정도로 끈질기게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 들어서는 물가 흐름이 평평한 고점 형태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고점을 형성할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그 첫째 이유로 거론되는 것이 국제유가의 재상승 흐름이다. 한동안 이어졌던 국제유가 하락세는 정부의 ‘10월 이후 안정론’의 전제조건으로 제시됐었다. 그러나 국제유가는 지난달 말을 지나면서 배럴당 80달러대에서 90달러대로 다시 올라섰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OPEC플러스’가 감산 결정을 내린 것이 분수령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는 올해 안에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것이란 전망이 시장을 지배하게 됐다.

가스요금 인상과 함께 연쇄적 파급 효과가 큰 전기요금이 이달부터 크게 오르는 것도 물가를 자극할 것이 확실시된다. 여기에 더해 낙농가들은 정부와의 협상이 원만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원유(原乳) 가격 인상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원유 가격은 수요·공급 원칙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생산비 연동제’ 등 구조적 문제를 안은 채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원유가격이 오르면 우리가 일상에서 마시는 우유는 물론 과자와 빵, 케이크 등 각종 가공식품 가격도 함께 상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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