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발생한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는 초연결 사회가 갖는 취약성을 뚜렷이 각인시켰다. 동시에 수많은 노드(마디)로 촘촘히 연결된 현대사회의 급소가 어디인지를 만천하에 알려주었다. 남북이 적대적으로 대립중인 상황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모골이 송연해지는 일이었다. 한 건의 화재가 전국 단위의 연결망을 일거에 무력화시키며 광속으로 움직이는 현대사회 전반의 작동을 수일에 걸쳐 멈추게 또는 더디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대개의 대형 참사가 그렇듯 이번 일 또한 설마가 낳은 사건이었다. 그 중심에 카카오가 자리하고 있었다. 카카오 경영진은 사건 발생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데이터센터가 통째로 셧다운되는 사태에 대비한 적이 없었다고 실토했다. 회사 대표는 “데이터센터 전체가 셧다운되지 않는다고 상정하고 대응해온 것은 판단오류였다”고 말했다.

기가 막힐 만큼 어이없는 발언이었다. 이는 잘 나가는 경우만 상정한 채 사업을 꾸려왔다는 것과 다름없는 말이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란 잘못된 전제 하에 자동차를 과속으로 모는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크든 작든 각종 피해를 입은 서비스 소비자 입장에서 보자면 미필적 고의의 혐의까지 느끼게 해주는 발언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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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경영진의 실토는 이번 사건의 본질과 연결돼 있다. 이번 사고가 언젠가 나타날 수 있는, 누군가가 작심하고 달려들면 힘 안들이고 일으킬 수 있는 예고된 참사였다는 의미다. 결국 사고의 근본 원인은 돈벌이에만 몰두해온 경영행태였다. 트래픽 안정성 확보 등 매출 증대와 관련된 일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보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일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했던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도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 기간통신사업자라 규정해도 무방한 카카오의 데이터센터를 자율이란 편리한 명분에 묻어둔 채 사실상 방치해온 것 또한 명백한 잘못이었다. 정부와 정치권이 안전을 담보할 제도를 완비했다면 이번과 같은 대형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터이니 하는 말이다.

특히 정부는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행정편의를 위해 카카오의 통신망을 적극 활용해왔다. 중앙 및 지방 정부들은 세금이나 범칙금 부과, 건강검진 안내 등에 카카오톡을 활용하고 있다. 공기업인 한국가스공사는 도시가스 연결 신청이나 청구서 발행 안내, 자가검침 등의 업무를 카카오톡을 활용해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들만 보더라도 카카오 통신망 붕괴가 국가의 기능까지 일거에 마비시킬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통신망에 대한 관리·감독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외면해왔으니 그 책임이 비할 데 없이 크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사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확실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핵심은 데이터센터의 완전한 이원화다. 리스크 대비 투자의 효용성이 더 크다는 전문적 판단이 내려진다면 이원화 이상의 다원화를 꾀하는 것도 고려해볼 일이다. 우리 사회의 정보기술(IT) 의존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높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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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정치권도 뒤늦게나마 관련법령 개정을 통한 제도 정비에 나서려 하고 있다. 카카오나 네이버 같은 부가통신사업자의 데이터센터를 국가재난관리 시설로 지정하고, 운영 실태를 꼼꼼히 점검하기 위해 방송통신발전기본법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을 개정하려는 것이 움직임의 주된 내용이다.

카카오 등 부가통신사업자들의 독과점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독과점에 의한 시장 왜곡 문제를 지적한 것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독과점이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정부가 사업별 특성을 무시한 채 독과점 규제를 앞세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 여지가 있어 보인다. 자칫하다간 과잉입법으로 플랫폼 사업의 성장을 억제하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타다금지법 사례를 통해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일 수도 있다(교각살우)는 교훈을 얻은 바 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당장 시급히 확보해야 할 일은 사회적 통신망에 대한 안전이다.

그 다음으로 서둘러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통신망 장애에 온통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주목받지 못했지만 우리 일상에 깊숙이 파고든 배터리(2차 전지)에 대한 안전 관리가 그것이다. 이번에 데이터센터 셧다운을 촉발한 것도 배터리 화재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배터리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함께 일깨워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우리 생활에서는 전동킥보드와 전기자동차, 배터리 뭉치라 할 에너지 저장장치(ESS) 등이 새로운 필수품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전기차 보급 증대와 함께 전기차 충전기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의 필수시설이 되어 버렸다. 화재 위험이 높은 배터리가 우리 생활 곳곳에 파고들게 된 것이다. 판교 화재는 배터리 및 관련시설에 대한 관리 체계의 전면 재점검을 동시에 촉구하고 있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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