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국내 주요 금융그룹들이 올 들어 역대급 실적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그룹들로서는 기뻐할 일이겠지만 이를 바라보는 금융소비자들은 입맛이 씁쓸해질 수밖에 없다. 금융사들의 기록적 호실적이 고금리로 인한 금융소비자들의 고통을 딛고 달성됐다는 게 그 이유다.

최근 공개된 국내 4대 금융지주들의 올해 1~3분기 누적 실적은 일제히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톱4인 KB금융과 신한·하나·우리가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거둬들인 누적 당기순이익은 도합 13조8544억원에 달했다. 금융그룹 각각의 실적은 물론 4개 그룹 합계실적도 사상 최대치였다. 이들 금융사들의 호실적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4대 그룹의 올해 연간 실적치가 17조원 내외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3분기까지 가장 많은 실적을 올린 곳은 신한금융이었다. 그 액수는 4조3154억원이었다. 그 뒤를 이어 KB금융이 4조279억원, 하나금융이 2조8494억원, 우리금융이 2조6617억원의 실적을 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에서도 신한과 우리 두 곳은 3분기까지의 누적만으로 이미 지난해의 연간 실적을 뛰어넘을 만큼 큰 성과를 냈다. 작년 신한과 우리의 연간 순이익은 각각 4조193억원, 2조5879억원이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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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들의 실적 개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행보였다. 한은은 지난해 8월 장기간 이어져온 0%대 금리 시대에 종언을 고한 뒤 줄기차게 기준금리를 올려왔다. 그 결과 이달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00%로 상승했다. 금리 상승세는 내년 상반기까지 지속될 수도 있다.

한은 기준금리 인상은 시장금리 전반에 영향을 미치면서 은행들의 대출이자 결정 기준인 코픽스금리의 상승을 유도하기 마련이다. 코픽스는 시중은행들이 자금조달 비용 등을 감안해 대출 이자에 적용할 용도로 산출되는 지수다. 각 은행은 코픽스금리를 기준삼아 고객의 신용도 등을 고려해 가산금리를 계산한 뒤 대출 이자를 결정한다.

결국 은행들은 한국은행 자금 차입 비용과 함께 자금조달 비용의 일부를 이루는 예금 이자 이상으로 대출 이자를 결정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을 과도하게 키워 손쉽게 이익을 얻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는 점이다. 소위 이자 장사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경향은 금융지주들의 올해 실적 내용을 통해서도 분명히 확인된다. 예를 들어 4대 금융그룹의 3분기 이익을 이자이익-비(非)이자이익으로 구분하면 신한 2조7160억-1조5946억, KB 2조8974억-1조2713억, 하나 2조2947억-1조1219억, 우리 2조2450억-8998억원 등이다. 전체 이익에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신한 63.0%, KB 69.5%, 하나 67.2%, 우리 71.4% 등이었다.

우리금융의 경우 올해 3분기 중 이자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7.1%나 늘어났다. 그 덕분에 1~3분기 전체 이자이익 비율이 4대 금융그룹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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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세부 내용은 국내 금융기관들이 예나 지금이나 이자 장사에 주로 의존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국내 주요 금융기관들이 금리가 빠르게 인상되는 과정에서 예금금리는 더디게 조금씩만 올리면서 대출금리는 더 빨리 더 많이 올리는 방식으로 이자 장사에 치중했다는 의미다.

이런 비판에 대해 금융기관들은 본업인 이자 장사를 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따지려 할 지 모른다. 예대마진을 통해 이익을 내는 행위는 금융기관의 본업 중 중요한 일부인 게 맞다. 하지만 이자 장사는 금융기관 운영에 있어서 가장 초보적인 방법에 속한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비중을 최대한 줄여 금융소비자들과 상생하면서 국가경제의 혈맥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이 위기시 정부 지원을 받곤 하는 중추 금융기관다운 행태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지금은 빠른 금리 인상의 여파로 가계부채 리스크가 어느 때보다 커져 있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의 뇌관이 그만큼 예민해져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당연히 은행 채무를 짊어진 가계의 고통지수도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판국에 주요 금융기관들이 거의 전적으로 이자 장사에 기대어 역대급 이익을 냈다는 것은 그리 개운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금융기관들로서도 드러내놓고 좋아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

과도한 이자 장사는 금융사들의 선진 금융기법 개발을 더디게 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없다. 손쉬운 이자 장사에 안주하게 되면 국내 금융기관들은 역외금융 개척이나 자금조달 비용의 효율적 관리, 비은행 영업 이익 증대, 각종 리스크 점검 등 금융선진화 기법의 개발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기 쉬워진다.

물론 금융사들이 부동산 시장 경착륙과 채권시장 불안정 등 각종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부실 여신이 발생할 위험에 대비하려면 이럴 때 최대한 실탄을 확보해두어야 한다고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란 얘기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건 아니란 생각을 지우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실적 내용에 나타나 있듯이 이자 장사 행태가 도를 넘었다고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환란 당시에 버금갈 정도로 어렵다는 시기다. 당연히 금융사들도 사회와 함께 고통을 분담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때다. 적어도 이럴 땐 금융 소비자들의 고통을 이용해 배를 불린다는 평만은 듣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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