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우상향 흐름이 재연됐다. 큰 틀에서 보면 고점에 도달한 듯한 물가가 수평이동하는 모습이 장기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진작부터 제기돼온 물가 정점론이 맞다고 할 수도, 틀렸다고도 할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2일 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이 5.7%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통계청이 작성한 ‘2022년 10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9.2(기준연도 2020년=100)로 집계됐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올해 1월 3.6% 상승한 이후 매달 상승률을 조금씩 키우며 3.7%→4.1%→4.8%→5.4%의 흐름을 이어갔다. 지난 6월엔 6%대(6.0%)로 올라서더니 7월엔 6.3%로 한 번 더 상승폭을 키웠다. 월별 상승률은 그 다음 달부터 5.7%→5.6%로 미미하게 낮아지는 듯하더니 10월 들어 5.7%를 기록함으로써 다시 우상향 흐름을 나타냈다. 상승률 흐름의 방향이 3개월 만에 또 바뀐 셈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품목성질별 분류상 가장 큰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전기·가스·수도였다. 이 부문의 상승률 23.1%는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세부적으로는 도시가스 요금이 36.1% 올랐고 전기료와 지역난방비가 각각 18.1%, 34.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공업제품은 6.3%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부 품목별로는 석유류가 10.7%, 가공식품이 9.5%의 상승률을 보였다. 석유류는 지난 6월 39.6% 상승한 뒤 7월 35.1%, 8월 19.7%, 9월 16.6% 등의 상승률 둔화 흐름을 나타냈다. 지난달 휘발유는 올 들어 처음 하락하며 -2.0%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경유(23.1%)는 여전히 높은 상승 기조를 유지했다.

공업제품의 물가 상승률에 대한 기여도는 2.20%포인트였다.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였지만 6월의 3.24%포인트, 전달의 2.32%포인트에 비해서는 낮아진 수치였다.

공업제품, 전기·가스·수도 등과 함께 상품의 또 다른 구성요소 중 하나인 농축수산물 물가는 5.2% 상승했다. 전달의 상승률은 6.2%였다. 이 중 농산물은 전달(8.7%)보다 낮은 7.3%의 상승률을 보였다. 하지만 농산물 중에서도 채소류만큼은 21.6%의 높은 상승률을 유지했다. 10월 채소류 상승을 주도한 것은 무(118.1%)와 배추(72.3%) 등이었다. 토마토(29.5%)와 양파(25.4%)도 높은 상승률을 이어갔다. 수입 쇠고기와 돼지고기 값은 각각 6.3%, 3.3% 올랐다. 축산물 전체 상승률은 1.8%로 집계됐다.

농축수산물의 물가 상승률 기여도는 0.46%포인트를 기록했다. 기여도 면에서 공업제품이나 전기·가스·수도(0.77%포인트)보다 작은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서비스 물가는 4.2% 상승했다. 개인서비스(6.4%), 그 중에서도 외식 물가(8.9%)가 서비스 물가 상승을 주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식 물가 상승률은 치킨(10.3%), 생선회(9.2%) 등을 중심으로 전달(9.0%)에 이어 여전히 높은 수준을 지속했다. 외식 외 개인서비스 물가는 4.6%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서비스 물가의 전체 상승률 기여도는 2.23%포인트인 것으로 집계됐다. 공업제품보다 물가 상승률 기여도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는 일제히 상승폭을 키웠다. 전통적 근원물가 지표인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가 4.8% 상승했고, 또 하나의 근원물가 지표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도 4.2% 상승률을 보였다. 두 지수의 전달 상승률은 각각 4.5%, 4.1%였다.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제시하는 기준 품목을 대상으로 조사해 산출하는 근원물가지수다.

체감물가로 대변되는 생활물가지수는 전월과 같은 6.5%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번 발표 내용은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과연 고점을 찍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다. 수치상 7월에 6.3%로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지만, 하향세가 매우 완만한데다 지난달엔 미미하게나마 그 흐름마저 바뀐 것이 정점론에 의문을 품게 했다.

회의론을 키우는 가장 큰 요인은 근원물가 추이다. 10월 근원물가 상승폭이 9월보다 오히려 커졌다는 것은 기조적 물가의 상승세가 최소한 꺾이지는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경직성이 강해 한 번 오르면 떨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공업제품(6.3%)이나 개인서비스 물가(6.4%), 특히 외식 물가(8.9%)의 상승폭이 비교적 크다는 점도 정점론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여기에 더해 체감물가인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이 아직 6%대에 머물러 있는 점도 정점론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계청 관계자는 7월 정점론이 맞아떨어질 가능성을 거론했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대로 재상승하진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을 들어 7월 정점론이 유효할 수 있다는 취지를 밝혔다. 정부는 10월 이후 물가가 안정될 것이란 입장을 유지해왔다.

지금처럼 고물가가 지속되면 한국은행이 이달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정례회의에서 다시 한 번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밟을 가능성도 덩달아 커지게 된다. 하루 전 한국은행이 공개한 10월 금통위 의사록에는 당시 회의에서 두 명의 위원이 빅스텝에 반대하는 소수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 배경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였다.

금통위 내 기류는 이번에 발표된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의해 다시 한 번 바뀔지 모른다. 물가 흐름만 놓고 보자면 소수의견이 더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은은 오는 24일 올해 마지막 금통위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 조정 여부를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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