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천정부지로 치솟던 원/달러 환율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파르게 내려가고 있다. 하락 속도가 빠름에도 불구하고 추가 하락에 대한 기대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같은 분위기는 달러화 가치를 반영한 지표인 달러 인덱스 흐름을 통해 감지된다.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 가치를 종합해 산출된 지표인 달러 인덱스는 9일 오전 외환시장 개장 무렵 109.5를 기록했다. 하루 전 같은 시간대에 비해 0.6% 하락한 수준이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 8일 모처럼 1400원 밑으로 내려간 채 거래를 마쳤다. 당일 서울 환시에서 기록된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6.3원 하락한 1384.9원이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아래로 내려가기는 지난 9월 21일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었다.

올해 초만 해도 1100원대에 머물러 있던 원/달러 환율은 11월 초까지 숨 가쁘게 올라 1400선을 돌파했다. 상승 기세가 워낙 강해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환율이 1500원대에 이르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하지만 원/달러 환율은 지난 8일을 기점으로 확연히 꺾이는 흐름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락 흐름은 9일에도 지속돼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8.9원 낮은 달러당 1376.0원에 출발했다. 하락세는 개장 이후에도 지속돼 1360원대를 맴돌았다.

원/달러 환율이 이처럼 급작스럽게 내려간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제시하는 원인은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것이란 예견이었다. 중간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는 일이 많았던 만큼 이번 선거에서는 공화당이 선전을 펼쳐 상·하 양원을 장악할 것이라는 게 미국 언론들의 대체적 전망이었다.

그 같은 전망은 미국 의회에서 여소야대가 형성되면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지출에 제약이 가해지고, 결국 미국 내 인플레이션이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연관돼 있다. 나아가 인플레 약화는 물가 잡기에 혈안이 돼 있는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긴축 기조를 누그러뜨리는데 기여할 것이란 기대도 그 연장선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분석은 보수 성향의 공화당이 재정지출에 대해 보다 엄격한 스탠스를 취해왔다는 점과도 무관치 않다. 따라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한 상황에서는 민주당이 양껏 재정을 집행하는 일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재정지출 감소 전망과 별개로 최근 들어 미국에서는 물가 상승세가 다소 누그러질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10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 전망치는 전년 동기 대비 7.9%다. 이 전망이 맞다면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지난 2월(7.9%) 이후 처음으로 다시 7%대로 내려가게 된다. 전달 상승률(8.2%)에 비해 하락폭이 크다고 할 수 없지만 심리적 영향으로 인해 기대인플레이션율을 낮추는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발표되는 미국의 10월 CPI 물가지수 상승률이 시장의 예상치보다도 낮아진다면 원/달러 환율은 한 번 더 하락하는(원화 강세) 흐름을 나타낼 수 있다.

원/달러 환율 하락세의 배경에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요소는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대한 기대감 증대다. 아직 중국 보건당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완화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각국 전문가들은 중국이 조만간 ‘제로 코로나’ 정책 강도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성장 둔화 등 중국 경제가 위기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이 그런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중국의 리오프닝에 대한 기대 확산은 위험 자산에 대한 선호도를 높여주는 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그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달러화에 대한 투기성 투자가 줄어들면서 원/달러 환율이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지난 8일의 경우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인이 주식을 2800억원 가까이 순매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원/달러 환율 하락에 기여했다.

지금의 환율 안정 흐름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한 가지 걸림돌은 수입업체들의 달러 매수 강화다. 그간 고환율 탓에 큰 손실을 입었던 수입업자들이 원/달러 환율 하락이 진행되는 지금을 호기로 삼아 달러화 매수에 적극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지금의 환율 흐름이 고착화된다면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한국은행의 부담도 다소나마 줄어들 수 있으리라 예견된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 수입물가가 동반 하락하고 그 여파로 국내 소비자물가도 안정되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국내 채권시장에서는 벌써부터 긴축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조성되고 있다. 최근의 채권 금리 하락 흐름은 분위기 변화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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