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한국은행을 향해 이달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소폭 인상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사실상 빅스텝(0.50%포인트) 인상 자제를 제언한 것이다.

제언 내용도 비교적 구체적이었다. KDI는 10일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우리 경제가 내년엔 경기 둔화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긴축 속도 조절 필요성을 거론했다. KDI는 “향후 경기 둔화를 고려해 거시정책 긴축의 속도와 강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민간부채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금리를 빠르게 올리면 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통화정책 운용시 반드시 미국과 보조를 맞출 필요가 없다는 취지의 권고도 내놓았다. KDI는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은 국내 물가와 경기 여건을 중심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유로존과 같은 빠른 속도의 금리 인상이 요구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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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달 24일 열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상정한 채 “가능하면 낮은 폭으로 인상해 가면서 물가 상승세를 지켜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리는 추세가 지속되면 경기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며 “천천히 올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시중에서 0.50%포인트 인상설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사실상 0.25%포인트 인상을 권고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현재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3.75~4.00%)과의 기준금리 격차(상단 기준)가 1.00%포인트로 커져 있는 점을 들어 이달 금통위 회의에서 한은이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한은이 지난 7월에 이어 또 한 번 빅스텝을 취할 경우 가계 및 기업의 부채 문제가 심각해지고 민간 소비도 크게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작지 않다.

우리나라의 물가 상황이 미국이나 유럽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점도 속도 조절 권고의 배경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이는 KDI가 통화정책 운용에 있어서 미국 및 유럽과 반드시 보조를 맞출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대 후반을 기록 중인 지금 유로존은 10% 내외, 미국은 8% 내외의 물가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 이유로 미국과 유럽연합(EU) 중앙은행들은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KDI의 이번 제언 내용은 최종금리(터미널 레이트) 수준과는 무관한 듯 보인다. 한은이 어디까지 기준금리를 올릴 지에 대해 언급했다기보다 인상폭을 완만하게 조절해 경제에 주는 충격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를 담았다는 의미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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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의 속도 조절 권고는 우리 경제가 내년에 성장 둔화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KDI의 이번 보고서는 우리 경제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 모두를 종전보다 하향조정했다. 올해 성장률은 2.8%에서 2.7%로 소폭 조정했지만, 내년 성장률은 종전치(2.3%)보다 0.5%포인트나 낮춘 1.8%로 다시 제시했다. 내년의 경제 상황이 특히 녹록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번 수정 전망이 3개월 만에 제시된 점을 감안하면 최근 들어 경제 환경이 그만큼 빠르게 악화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KDI가 제시한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는 자체 추정 잠재성장률(2%)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잠재성장률이란 우리가 지닌 생산요소를 총동원해 무리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우리의 내년도 성장률에 대한 전망은 나날이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기관별 전망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지며 1%대 성장을 점치는 곳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국제통화기금(IMF)은 우리나라의 내년도 성장률을 기존보다 0.1%포인트 낮은 2.0%로 수정 제시한 바 있다.

한국은행도 이달 중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제시한다. 지난 8월 제시된 올해와 내년 성장률은 2.6%와 2.1%였다. 현재 분위기로 보아 올해 전망치는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있지만,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선 또는 그 미만으로 재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의 내년도 성장률에 대해 최근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1.9%를 제시했었다. 하나금융연구소가 ‘2023년 경제·금융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최근 제시한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는 1.8%로 내려가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내년도 성장률이 1.9%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가 2% 미만의 성장률을 마지막으로 기록한 때는 ‘우한 폐렴’이란 이름의 코로나19가 대유행기에 돌입한 2020년(-0.7%)이었다. 당시를 포함해 우리나라가 2%대 성장에도 이르지 못한 해는 2차 오일 쇼크가 한창이던 1980년(-1.6%), 외환위기 와중에 있던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왔던 2009년(0.8%) 등이 전부였다.

내년도 경제를 둔화 국면에 접어들게 할 요소로는 세계적 통화긴축 기류와 중국의 경기침체를 꼽을 수 있다. 이상의 악재들 탓에 IMF는 내년도 세계경제가 평균 2.7% 성장에 그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KDI는 그 같은 판단을 토대로 내년엔 수출 증가세가 둔화되고 국내 민간소비는 3.1%의 낮은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분석했다. 민간소비와 함께 내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인 설비투자와 건설투자 역시 각각 0.7%, 0.2%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대내외 요소 모두에서 성장을 이끌 동력이 약화될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는 뜻이다.

KDI는 내년도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올해(230억 달러)보다 축소된 160억 달러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2%로 전망됐다. 지난 5월 자체 전망치(2.2%)보다 1.0%포인트나 높아진 수준이다. 내년도 물가 상승률에 대해 우리 정부는 3.0%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IMF와 한국은행은 이보다 높은 3.8%, 3.7%를 각각 전망치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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