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위해 규제지역 지정 내용을 다시 한 번 손질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세 번에 걸쳐 규제지역 해제가 단계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번 조치로 서울과 과천·성남(분당·수정)·하남·광명 등 수도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전역이 부동산 규제지역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됐다.

정부가 10일 발표한 규제지역 추가 해제 조치는 부동산 시장이 급속히 얼어붙으면서 각종 부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는 판단에서 마련됐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함으로써 우리 경제 전반에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란 우려가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규제가 해제된 곳에서는 재건축과 재개발 조합원 지위 양도나 과세, 대출, 청약 등과 관련해 가해졌던 제약이 사라지거나 완화되는 등의 혜택를 누릴 수 있다. 이를테면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곳이라면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최대 70%까지 늘어나고, 다주택자도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받을 수 있다. 조정대상지역 바로 윗단계 규제 대상인 투기과열지구에서 해제된 곳이라면 15억원 초과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도 가능해진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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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와 별개로 이날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내 15억원 초과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주담대를 허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서울 강남처럼 최고 단계의 규제를 받는 지역에서도 15억원으로 설정됐던 주담대 허용 기준이 사라지게 됐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부동산 시장에서 거래절벽과 함께 깡통전세가 속출하고, 공시가격이 실거래가를 넘어서는 등의 이상 현상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됐다. 이런 기현상들은 모두 집값의 빠른 하락과 관련돼 있다. 거래절벽은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물건 구입을 미루듯 집값 속락기에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깡통전세 등장과 공시가·실거래가 역전 또한 급격한 집값 하락과 무관치 않은 현상이다.

집값 급락이 가져올 부작용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주택을 담보로 많은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들의 부실여신이 갑자기 증가한다는 점이다. 이는 금융안정을 해쳐 결국 국가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동산 버블 붕괴는 가계의 자산을 일거에 축소시켜 소비심리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더구나 지금처럼 고물가·고금리가 지속되는 시기엔 처분가능한 소득까지 줄어듦에 따라 소비가 꽁꽁 얼어붙는 부작용이 보다 쉽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전개돼온 상황을 살펴보면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의문을 지우기 어려워진다. 앞서 말한 기현상들이 오히려 증가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당장 우려되는 점은 부동산 시장 경착륙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있는 버블 붕괴가 현실화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같은 조짐은 부동산 관련 각종 지표를 통해 확인된다. 그중 하나가 한국부동산원이 조사해 집계하는 매매수급지수의 흐름이다. 1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번 주 서울 아파트의 매매수급지수는 70.7에 머물렀다. 지난주(72.9)보다 하락했다는 것 외에 그 수준 자체가 매우 낮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수치를 통해 서울 아파트에 대한 매수심리가 심히 얼어붙어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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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0을 범위로 하는 매매수급지수는 100을 기준선으로 삼아 그 이상이면 수요 우위, 그 이하이면 공급 우위 시장이 형성돼 있음을 보여준다. 즉, 0에 가까워질수록 공급 우위의 정도가 심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급만 있고 수요가 전혀 없는 상황이라면 이 지수는 0으로 집계된다. 따라서 0에 가까워질수록 매수심리가 약화돼 있음을 의미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서울 아파트 시장에서의 공급우위 현상은 지난해 11월 셋째주부터 시작돼 52주째 이어져왔다. 서울에서도 은평·마포·서대문구를 아우르는 서북권과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으로 통칭되는 동북권에서는 이 지수가 각각 66.4와 66.5를 기록할 만큼 낮았다. 해당 지역들이 서울에서도 매수심리가 가장 위축돼 있는 곳들이라는 뜻이다.

이들 지표는 서울의 아파트 값이 앞으로 더 떨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우려되는 점은 하락 자체가 아니라 우리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하락이다. 소위 부동산시장 경착륙의 현실화가 문제라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특히 우려되는 것이 ‘영끌’ 매수에 나섰던 이들이 고금리 기류 속에 이자 부담 증가를 견디지 못하고 주택을 투매하는 일이다. 그 같은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더 끌어올릴수록 커지기 마련이다.

제반 정황을 고려하면 정부의 이번 규제지역 추가 해제는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직 부동산 시장 경착륙 위험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여전히 시장동향을 면밀히 살피며 추가 대응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당장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앞서 언급한 서울 ‘노·도·강’이나 서북권 지역 등에 대한 규제지역 추가 해제 또는 완화 조치가 아닌가 싶다. 이들 지역은 단기간 안에 투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등으로 묶여 재건축 및 과세 등에서 각종 불이익을 받고 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들 지역이 ‘영끌족’들의 부동산 투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취약지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정부가 세심하게 관심을 가져주길 촉구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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