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물가동향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에 사실상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은 물가의 완만한 하락을 말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정점 통과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통계청과 한국은행이 집계해 내놓는 각종 물가 관련 지표들은 소비자들의 물가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정점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물가는 지난 7월 6.3%의 상승률을 기록한 뒤 점차 상승폭을 줄여가고 있다. 8월부터의 상승률은 차례로 5.7%→5.6%→5.7%의 경로를 나타냈다. 이 자료만 놓고 보면 소비자물가가 7월에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하강 속도가 완만하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정점 통과론이 영 틀렸다고는 할 수 없는 경로다.

한국은행이 집계해 발표하는 물가 관련 지표들도 소비자물가와 비슷한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기대인플레이션율과 물가수준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 : Consumer Survey Index)가 그들 지표에 해당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이 중 기대인플레이션율은 한국은행이 매달 집계해 발표하는 대표적 물가전망 관련 지표다. 향후 1년간 전개될 물가변동에 대한 소비자들의 전망을 수치화한 것이 기대인플레율이다. 이 지표의 흐름 또한 소비자물가와 비슷한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율은 올해 4월부터 세 달 연속 3%대를 나타내다가 지난 7월 4.7%로 올라갔고, 이후엔 넉 달째 4%대 초반을 달리고 있다. 한은이 이날 발표한 11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전달보다 0.1%포인트 떨어진 4.2%였다. 이로써 최근 넉 달 동안의 월별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차례로 4.3%→4.2%→4.3%→4.2% 등의 흐름을 기록하게 됐다.

이 같은 기대인플레율 흐름은 7월 이후 물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심리에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소비자들이 물가의 대세적 흐름이 상·하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황희진 한은 통계조사팀장은 11월 기대인플레율이 소폭 하락한 이유와 관련, “공공요금과 외식 등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석유류와 농·축·수산물 물가가 안정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미국 소비자물가의 오름세가 꺾인 점도 국내 소비자들의 물가 심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 말은 공공요금과 개인서비스가 물가 수준을 높였지만 그나마 석유류와 1차산업 생산품 가격이 내려간 덕분에 물가에 대한 기대심리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안고 있다.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를 형성하는데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공업제품이었다. 향후 1년간 소비자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주요 품목이 무엇인지를 묻는 설문에 응답가구들은 공공요금(59.0%)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그 다음 순위는 석유류제품(39.1%)과 농축수산물(37.2%), 공업제품(25.3%), 개인서비스(16.5%), 집세(11.8%) 등이 차지했다. 전달 대비로는 공업제품(+3.6%포인트)의 응답 비중이 가장 크게 증가했다. 반면 농축수산물(-5.4%포인트)과 공공요금(-2.9%포인트)의 비중은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소비자동향조사’란 이름으로 뭉뚱그려 실시되는 관련 조사는 이달 8~15일 전국 2500가구(응답 2397가구)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물가상승 기대형성에 대한 위의 응답비중은 복수응답을 토대로 집계된 수치다.

물가에 대한 전망을 나타내는 또 다른 지표인 물가수준전망CSI도 기대인플레율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됐다. 한은이 22일 기대인플레율과 함께 발표한 11월 물가수준전망CSI는 전달보다 1포인트 하락한 156을 나타냈다. 물가수준전망CSI란 현재와 비교한 향후 1년 후의 물가에 대해 소비자들이 지닌 전망을 수치화한 개념이다.

이 수치가 100보다 크면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 응답한 가구 수가 그 반대 응답을 보인 가구 수보다 많음을 의미한다. 100보다 작으면 그 반대의 결과가 집계됐음을 의미한다.

향후 물가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소비자 인식을 말해주는 ‘물가인식’ 조사 결과는 더욱 비관적이다. ‘물가인식’은 지난 1년간의 물가 상승에 대해 소비자들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직접 물어 조사한 뒤 산출하는 지표다. 향후 1년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소비자 전망치인 기대인플레율과 비교되는 개념이다. 이 둘은 과거와 현재의 1년에 대한 소비자들의 물가 관련 인식을 대변해주는 대표적 지표들로 꼽힌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11월 물가인식은 5.1%였다. 주목할 점은 이 수치가 물가 정점으로 꼽히는 7월과 같은 수준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한은이 매달 집계하는 물가인식은 지난 7월엔 전달보다 1.1%포인트 오른 5.1%를 기록했지만 이후엔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7~11월 기간 중의 물가인식은 차례로 5.1%→5.1%→5.1%→5.2%→5.1%의 흐름을 나타냈다. 사실상 5개월 째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셈이다.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관심사는 이 같은 물가동향을 한국은행이 어떻게 해석하느냐라 할 수 있다. 물가 흐름만 놓고 보면 한은이 오는 24일 열릴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자국 내 물가 하향 흐름을 고려할 것이란 기대가 일면서 이번 한은의 결정은 0.25%포인트 인상일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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