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김기영 기자] 서울에서 올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납부하는 사람 중 비(非)강남권에 과세 대상 물건을 지닌 경우가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비강남권 과세 인원이 서울 전체 종부세 납세자의 절반을 넘어서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부유세란 별칭으로 도입된 종부세가 당초의 과세 명분을 잃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정도 상황이면 종부세는 이제 보통세나 중산층세, 수도권 거주세 등으로 변질됐다고 볼 수 있다.

올해 서울의 종부세 과세 대상 분포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류성걸 의원(국민의힘)이 국세청의 ‘2022년 주택분 종부세 고지현황’을 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23일 류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서울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의 올해 주택분 종부세 과세 인원은 28만5000여명이었다. 서울 전체 인원 58만여명의 48.8%에 해당하는 숫자다. 지난해 이들 지역의 과세 비중은 50.6%였다.

류 의원실 분석 결과는 서울에서 비강남권이 차지하는 종부세 납세 비중이 절반을 훌쩍 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서울 비강남권의 과세 인원은 29만여명, 이들이 서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1.2%였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서울의 25개 자치구 가운데 종부세 과세 대상으로 분류된 사람 수가 1만을 넘긴 곳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의 3곳에서 올해 16곳으로 급증했다. 올해 과세 대상 1만명 미만인 자치구들에서 집계된 지난해 대비 과세 인원 증가율은 26.7%나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5년 동안 과세 대상이 가장 많이 늘어난 지역은 강동구(5.2배)와 노원구(5.0배), 금천구(4.7배), 성동구(4.4배) 등의 순이었다. 고지세액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곳은 금천구(27.2배)였고, 구로구(17.9배) 노원구(16.9배) 중랑구(16.6배), 강북구(15.4배)가 차례로 그 뒤를 이었다.

비강남권 전체의 액수 증가폭은 평균 9.4배로 집계됐다. 강남4구(6.6배)보다 그 외 지역에서 액수 증가폭이 커 비강남권 납세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큰 고통을 느끼게 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종부세가 고가 주택에만 부과되는 특정 목적성 세목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음을 말해준다. 이를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자료는 전체 납세 대상자 수가 폭증했다는 사실이다.

하루 앞서 기획재정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올해 종부세 과세 대상자는 122만명으로 폭증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였던 2017년(33만여명)과 지난해(93만1000여명)에 비하면 각각 270%. 30%가량 늘어난 수치다. 전체 세액은 2017년 4000억여원에서 4조1000억여원으로 늘어났다.

올해 종부세 납세자는 국내 전체 유주택자(1508만9000명)의 8.1%에 해당한다. 가구당 평균 인원을 대략 3명으로 잡으면 전체 국민의 24% 이상이 종부세 납부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느끼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종부세 납세 대상자와 납세액이 급증하게 된 이유로는 이전 정권 때 집값과 과세표준(과표)이 동시에 상승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부동산 값이 급등하면 과표를 그 속도에 맞춰 상향조정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만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그 반대로 움직였다. 재정을 방만하게 운영하다 보니 세수를 최대한 증대시켜야 했고, 그 수단의 일부로 재산세와 함께 부유세 성격의 종부세를 늘려야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종부세의 성격 변질은 과세 기준선의 변화를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2005년 종부세가 처음 도입될 당시 과표 산정의 주요 기준인 공시가격은 9억원으로 설정돼 있었다. 이 기준 덕분에 당시 종부세 부과 대상이 되려면 집값이 서울 아파트값 평균의 세 배 정도에 이르러야 했다. 지금으로 치면 집값이 30억원 정도는 돼야 종부세 납세 대상자로 분류됐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당시만 해도 종부세는 1% 이내의 상위권 집부자들이나 내는 세금으로 인식돼 있었다.

그간 집값이 크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정부는 종부세 부과 기준엔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 결과 현행 종합부동산세법은 인별로 소유 주택의 공시가격 합계액이 6억원을 초과하면 종부세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1가구 1주택자에 한해 공시가 기준을 11억원(부부 공동명의는 12억원)으로 설정해두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는 종부세 과표 계산시 적용하는 공정시장가액비율까지 점진적으로 높이는 정책을 쓰는 바람에 종부세 과세액은 더 빠르게 증가했다. 그로 인해 ‘세금 폭탄’이란 불만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현 정부는 세금폭탄 불만을 잠재우고자 지난 7월 종부세제 개편 방안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1가구 1주택자에게 적용하는 기본공제액을 일단 올해에 한해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상향조정하고 다주택자 종부세 중과세율 적용을 폐지하는 것 등이 정부가 제시한 종부세법 개정안의 주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법 개정안은 민주당의 ‘부자 감세 반대’ 주장에 밀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정부는 일단 기존 법률에 따라 산정된 종부세액 고지서를 지난 21일부터 대상자들에게 발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의 집값 하락으로 공시가격이 집값을 능가하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종부세 부과로 인한 조세저항이 커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상황이 다급해지자 국회도 뒤늦게나마 종부세법 개정안을 다시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조만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를 열고 정부가 제출한 종부세법 개정안 심사를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당의 ‘부자 감세 반대’ 주장이 강해 진통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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