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이 이번엔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 카드를 선택했다. 두 차례 연속 빅스텝(0.50%포인트 인상)을 밟는 초강수는 자제했지만 긴축 기조는 당분간 더 이어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내년 상반기에도 기준금리를 한 두 차례 더 인상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 전문가들은 한은의 최종금리(Terminal Rate)가 이번에 새로 결정된 기준금리 3.25%보다 0.25~0.50%포인트 높은 수준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한다. 최종금리가 3.75%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미국 기준금리가 내년 상반기에 5%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함께 고려하면 두 나라 간 금리 격차는 1.25%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질 수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24일 올해 마지막으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3.00%)보다 0.25%포인트 올리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미국(3.75~4.00%)과의 기준금리 격차는 일단 0.75%포인트(상단 기준)로 좁혀졌다.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연합뉴스]

한은의 이번 결정은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를 감당해낼 만한 범위 이내로 조절하면서 가능한 한 물가 억제 효과를 키울 수 있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은 결과라 할 수 있다. 한은은 금통위 회의 이후 발표한 의결문을 통해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돼 물가 안정을 위한 정책대응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한은은 또 물가가 목표 수준을 크게 웃도는 상황을 거론하며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주목할 곳은 정책대응 지속을 말하면서도 빅스텝을 자제한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었다. 이와 관련, 의결문은 “경기둔화 정도가 8월 전망치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외환 부문의 리스크가 완화되고 단기 금융시장이 위축된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0.25%포인트 인상폭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경기둔화 우려와 금융시장 위축 등으로 대폭 인상을 단행하기는 어려웠지만 외환 부문 리스크 완화 덕분에 긴축 강도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표현이었다.

다시 말해 한은은 이날 원/달러 환율 안정, 경기침체 가능성 대두, 자금시장 및 신용경색 우려 등으로 인해 큰 폭의 기준금리 인상을 자제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긴축강화 속도 조절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점도 금리인상 압박을 다소나마 덜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고 해서 기준금리 인상 압박이 약화된 것은 아니라는 게 한은의 입장인 듯 보인다. 국내 물가가 여전히 정점 구간을 달리고 있고, 한·미 간 기준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 게 뻔한 만큼 한은으로서는 앞으로도 기준금리 인상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다. 추가 인상을 감당해낼 만큼 경제 여건이 갖춰진다면 언제든 금리를 추가로 인상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현재 금리 인상 압박을 높이는 핵심 요소는 물가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지난 7월 6.3%의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을 기록한 이후 긴 정점 구간을 형성해가고 있다. 상승률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가 정점을 찍고 내려가는 모양새가 아니라 평평한 그림을 그려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8~10월 5.6~5.7%의 월별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같은 기간의 기대인플레이션율 추이 또한 거의 수평 상태를 보여왔다. 8월부터 이달까지 집계된 월별 기대인플레율은 차례로 4.3%→4.2%→4.3%→4.2%였다. 지난 1년간의 물가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보여주는 지표인 ‘물가인식’ 또한 해당 기간 동안 5.1~5.2% 선을 맴돌고 있다.

물가 관리가 통화정책의 제1 목적이고 한은의 목표물가가 2%라는 점을 감안하면 통화 긴축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더 지속돼야 한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다만, 경기 둔화를 넘어 침체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고, 가계 및 기업의 이자부담이 한계수준에 다다르고 있으며, 한·미 간 금리 격차 확대로 외화자본의 국외유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등이 한은으로 하여금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도록 만들고 있을 뿐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연준과 한은이 내년 상반기까지는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나라의 최종금리에 대한 시장의 컨센서스를 종합하면 최대 금리차는 앞서 언급한 대로 1.25%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 정도의 금리차는 당장 다음 달 중에도 실현될 수도 있다. 연준이 다음달 13~14일(현지시간)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그 이유다. 그렇게 되면 연준 기준금리는 4.25~4.50%로 올라간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내년 상반기에 두 나라 기준금리가 어디까지 올라갈지에 모아져 있다.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한은의 최종금리는 3.50~3.75%선이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은 기준금리는 내년 1분기 3.75%에서 정점을 찍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그는 미국의 최종금리가 5.25%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양국 간 기준금리 격차는 1.50%포인트로 더 벌어진다.

다음번 한은 금통위 회의는 내년 1월 13일 소집된다. 이때도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한다면 연속 인상 신기록은 일곱 차례로 늘어나게 된다. 한은은 올 들어 열린 8차례의 통화정책 회의에서 지난 2월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준금리 인상 결정을 내렸다. 2월 이후엔 4월부터 6번 연속(4, 5, 7, 8, 10, 11월)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그 중 두 차례(7, 10월)는 빅스텝이었다.

한편 한은은 이날 국내경제의 성장률에 대해 새로운 전망치를 제시했다. 한은이 제시한 올해와 내년의 성장률 전망치는 각각 2.6%와 1.7%였다. 지난 8월 전망과 비교할 때 올해 전망치는 그대로였지만 내년 전망치는 기존 것보다 0.4%포인트 줄어들었다. 이는 국내 경제 상황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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