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에게 국한된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세계적으로 호재는 별반 눈에 띄지 않는 가운데 고질적 악재들이 누적된 채 장기화하고 있는 게 원인이다.

고질적 악재만 해도 여럿을 헤아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공급망 차질, 소멸되지 않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중국의 봉쇄정책 지속, 미국 주도의 지루한 긴축강화 기조, 고강도 긴축에도 불구하고 완화 기미를 보이지 않는 고물가 등이 세계 각국의 경제를 조이는 공통의 악재들이다. 미국 외 국가들은 ‘킹달러’ 현상의 반작용으로 고환율이란 추가 악재까지 떠안은 채 고전하고 있다. 신흥국들은 환율 불안이 자본 유출을 빚을까 두려워 어쩔 수 없이 기준금리를 끌어올림으로써 경기침체 가능성을 키우는 자충수까지 두고 있다.

우리의 경우 이전 같으면 고환율로 수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경쟁국들의 화폐 가치가 동반 하락하는 바람에 그런 메리트조차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우리는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수입물가까지 상승한 탓에 지난달까지 7개월째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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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부진을 메워줄 대안인 내수도 내년부터 꺾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의 펜트업 수요로 소비가 잠시 되살아났으나 지속성은 강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우려는 경기침체 가능성에 모아져 있다. 11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회의 의사록엔 위원들이 내년 경기침체 가능성을 50% 정도로 보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경기침체는 경기가 둔화 단계를 넘어 경기순환 과정상 하강 국면에 진입한 상태를 의미한다. 대표적 전조는 고용과 투자 감소, 채권시장에서의 장단기 채권 금리 역전 등이다.

미국에서는 굴지의 대기업들이 이미 직원 수 감축 계획을 내놓고 있어서 고용 감축이 어느 정도 예고돼 있다. 그로 인해 시장은 새달 2일 발표되는 미 노동부 노동통계국의 고용보고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미 모두에서 장단기 채권 금리 역전 현상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장단기 채권금리 역전이란 단기채 금리가 장기채 금리보다 높아지는 이상 현상을 지칭한다. 일반적 상황이라면 채권 금리는 장기채일 경우 더 높은 게 상식적이다. 기간이 길어질수록 리스크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커지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장기간 돈을 묶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단기 채권 금리가 더 높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단기채 금리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영향을 크게 받는데 반해 장기채 금리는 경기동향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을 지니고 있어서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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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의 채권 금리 역전은 최근 들어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월 중순 3년물 국고채 금리가 10년물 금리를 앞서는 일이 나타난 이래 비슷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금리 역전은 2008년 7월 금융위기 당시에도 나타났었다. 최근의 역전 현상은 그때 이후 처음이다.

최근의 금리 역전 시작점은 지난 9월 22일이었다. 당일 3년물 금리는 연 4.104%를 기록하며 10년물 금리(연 3.997%)를 넘어섰다. 금리 역전은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나타났고, 지난주부터는 29일까지 6거래일 연속 이어졌다. 29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날의 국고채 3년물과 10년물의 금리는 각각 3.669%, 3.606%였다.

최근의 금리 역전 현상은 미국 연준의 초긴축 행보에 크게 기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준이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취한 것이 단기채 금리를 빠르게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여기에 긴축 강화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바람에 장기채 금리가 하락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자연스레 금리 역전이 실현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 현상을 근거로 경기침체를 말하기엔 무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전문가들이 기술적 침체의 기준으로 언급하는 두 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현실화된 것도 아니다. 미국의 경우 올해 1분기(-1.6%)와 2분기(-0.6%, 이상 전기 대비 연율)에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지만 공식 기구에 의해 경기침체가 선언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미국은 3분기 들어서는 2.6%의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한국도 올해 1~3분기의 분기 성장률(전기 대비)이 일제히 플러스를 기록해 당장은 경기침체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성장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고 내년엔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약 2%로 추정됨)에도 못 미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주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마친 뒤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보다 0.4%포인트 낮춘 1.7%로 새로 제시했다.

아직은 2.5%의 전망치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도 다음 달 하순쯤엔 보다 현실화된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하기로 했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의 3고 시대를 맞아 우리 경제의 기둥인 수출마저 부진해지자 실현 가능한 목표치를 다시 제시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 전망치가 어디까지 내려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지난한 현실을 고려할 때 1%대 전망치가 제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정책의지를 실어 전망치를 제시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추가 가능한 범위는 0.1% 안팎에 그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정부가 정책을 통해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범위가 그 정도로 제한돼 있다는 점이 그런 전망의 배경이다.

다수 기관의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는 이미 1%대로 내려가 있다. 그들 기관의 전망은 대체로 한은 전망치와 비슷한 수준에 수렴해가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와 한국경제연구원이 나란히 제시한 1.9%가 그중 높은 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개발연구원(KDI),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한결같이 1.8%를 전망치로 제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경제의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는 낮아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그런 와중에 1% 미만을 점치는 곳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계 ING은행의 0.6%, 일본계 노무라증권의 -0.7%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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