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가상자산 업체의 파산 소식이 또 들려왔다. 기업 파산은 다른 나라 일이라 해도 심상치 않고 안 되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암호 화폐가 대종인 가상자산 업체라면 오히려 잘됐네 하는 반응이 많을 수 있다.

암호 화폐는 투자에 무심하기 어려운 대중에게 이제라도 들어갈 것인가, 쭉 모른 체할 것인가의 선택을 집요하게 강요한다. 많은 사람들이 끙끙대다 선택하지 못하고 질문 자체가 얼른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미국서 가상자산 업체 파산이 많다고 하니 답은 나온 것 아닌가 하면서 파산 뉴스를 반갑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디지털 머니’ ‘전자 머니’ ‘상상의 돈’으로 불리는 암호 화폐에 세계인구의 2%가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 상당수가 FOMO(다른 사람들이 나 빼고 좋은 것 다 차지할까 싶은 불안)에서 잘 알아보지도 않고 이 크립토(crypto)에 투자한다는 지적이 있다. 12월까지 흘러온 올해 크립토 투자는 호조보다는 그 정반대가 확연하다.

[사진 = AFP/연합뉴스]
[사진 = AFP/연합뉴스]

2009년에 30센트로 나왔던 비트코인 한 개 값이 2021년 11월에 6만4000달러가 넘어 말 그대로 인터넷 금덩이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에 수많은 사람들이 '방콕' 유폐에 처해졌고 미국에서만 연방 1년예산과 맞먹는 5조 달러가 넘는 코로나 구제자금이 풀어졌다. 주식투자 열기에 주가가 급등하고 1000여 종의 암호화폐에도 불이 붙었던 것이다.

비트코인을 위시한 이 크립토 화폐들의 시가총액이 2조6000억 달러(약 3100조원)가 넘었다. 그러나 돈이 너무 풀려 인플레가 하늘 모르고 치솟자 위험자산 던지기가 첫 번째 해법이었고 위험성이 큰 암호화폐가 찍혀 내던져졌다. 올 5월 권도형의 스테이블코인 테라USD와 루나 코인 폭락까지 이어져 암호화폐의 거래소 시가총액 60% 가까이가 먼지처럼 흩날려버렸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미국과 한국 주가가 조금씩 살아나던 11월에 암호 화폐는 다시 추락했다. 시총이 20% 또 빠진 것으로 ‘크립토는 크립토’라는 탄식이 자연스레 나왔다. 11월 말 현재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의 거래소 시총은 8500억 달러(약 1100조원) 수준으로 한국 코스피 시총의 3분의 2 정도이며 미국 뉴욕 주식시장에 비하면 40분의 1에 불과하다.

5월의 반값 폭락은 투자자들이 가격이 괜찮을 때 위험 자산을 대거 처분하면서 나온 것으로 외부적 요인이 컸다. 이후 시세가 장기간 슬럼프에 빠지면서 셀시어스, 보이어저 및 쓰리애로우즈 등 크립토 플랫폼 3곳이 파산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도 업체만의 탓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11월 20% 추가 급락은 샘 뱅크먼-프리드라는 젊은 크립토 사업가와 그의 가상화폐 거래소 FTX의 내부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상자산, 크립토 분야는 정부의 규제와 감시가 은행이나 증권 등 기존 금융권보다 아주 약하다는 점이 내부 잘못을 촉발시켰다. 규제가 약해서 눈치만 빠르면 돈 벌기가 쉬웠고 그러다보니 선을 넘기가 쉬웠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부모가 모두 스탠포드대 법학교수인 뱅크먼-프리드는 MIT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수재로 25살 때인 2017년부터 암호화폐 사업에 뛰어들었다. 2년 뒤에 FTX 거래소를 차렸고 FTT라는 암호화폐 코인도 만들었다.

그런데 뱅크먼은 무조건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것, 많은 사람들에게 줘버리기 위해서 돈을 엄청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효과적 애타주의(EA)’ 신봉자였다. 뱅크먼과 그의 젊은 팀이 개발한 프로그램 덕분에 FTX는 하루 거래 규모가 150억 달러에 세계 거래량의 10%를 담당하는 세계3위 암호화폐 거래소로 올라섰다.

올 1월 뱅크먼의 FTX 시장가치는 320억 달러, 담보물관련 가치로는 510억 달러에 이르렀다. 320억 달러는 45조원 정도로 우리 국방예산의 80%에 해당된다. ‘남한테 줘버리기 위해 왕창 돈을 벌어야한다’는 믿음의 뱅크먼 돈 버는 솜씨가 기가 찰 정도로 뛰어난 것이고 암호화폐, 크립토 분야가 참말 일확‘억’금이 가능한 희한한 곳인 것이다. 뱅크먼은 지난 여름 암호화폐 폭락기에 파산으로 기우는 여러 업체들에 10억 달러의 도움을 줘 크립토 ‘백기사’로서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대체 어떤 신통방통한 재주가 있기에 30세의 뱅크먼-프리드는 한 2년 사이에 돈을 쓸어담아 암호화폐 업계에서 최초로 세계 100대 부자 안에 랭크되고 있었던 것일까.

11월 2일부터 일주일 동안 뱅크먼의 영업비밀과 비리가 밝혀지면서 뱅크먼 그리고 암호화폐 사업이 동반 추락하기에 이른다. 뱅크먼이 거래소 FTX보다 2년 앞서 세운 코인거래 업체이자 코인투자 벤처캐피탈인 알라메다 리서치가 자산의 반 이상을 FTX 코인 FTT로 채우고 있다고 코인전문 매체가 폭로했다. 한마디로 뱅크먼이 대주주로 있는 FTX와 알라메다가 코인 FTT를 통해 서로 짜고 치는 돈벌이를 했다는 의심스런 정황인 것이다,

이 뉴스에 FTT 매각 강풍이 몰아쳐 뱅크먼의 코인 값은 90% 넘게 폭락했으며 뱅크먼의 거래소 FTX는 금융기관이 가장 무서워하는 뱅크런, 고객들의 예치금 인출사태와 마주해야 했다. 사흘 동안 60억 달러가 빠져나가고도 FTX는 80억 달러(약 10조8000억원)의 인출요구를 들어주지 못했다. 돈이 없었던 것인데 고객 예치금 160억 달러 중 100억 달러(약 13조5000억원)를 사업을 하라고 자매사 알라메다에게 대출해주어 당장회수가 어렵다고 뱅크먼이 밝혔다.

고객예치금은 금융기관이 투자에 전용할 수 없는 것으로 이는 아무리 규제가 약한 가상자산 사업이라도 미 증권법 위반이었다. 돈을 쉽게 벌기로 작정한 암호화폐 투자자들 눈에도 타기할 불법 행위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뱅크런을 해결하지 못한 빚쟁이 신세의 FTX는 다른 회사 합병을 통한 빚 문제 해결이 막혔다. FTX와 알라메다는 이제 파산밖에 갈 길이 없다는 투자자 판단에 뱅크먼이 대주주인 두 업체의 시장 가치가 똥값이 되었다.

떨어진 것은 이들뿐만 아니라 암호화폐, 가상자산 전체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와 투자 의사여서 비트코인이 이틀 새 110조원의 시총이 날아가 425조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결국 암호화폐 전체 시총이 20% 추가 추락해 1140조원으로 나가떨어진 것이다.

여름 크립토계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샘 뱅크먼-프리드가 업계의 빌런(악당)으로 손가락질 받는 이유다.

뱅크먼은 업계의 손가락질이 문제가 아니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벌었던 재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이 매일 발표하는 세계 500대 부자리스트에서 156억 달러(21조원)로 97위에 랭크되었던 뱅크먼은 11월 7일을 끝으로 이 리스트에서 사라졌다. 나흘 뒤에 뱅크먼은 FTX 파산을 선언했는데 시장은 한때 300억 달러가 넘게 보던 이 거래소의 가치를 단 1달러로 매겼다.

샘 뱅크먼-프리드(SBF)는 아직 재산이 10억 달러가 남아있다고 한다. 크립토 업계 아닌 다른 분야라고 하는데 이 액수만으로도 ‘효과적인 이타주의’를 실행하기에 족해 보인다. 그러나 머리 비상한 SBF 생각은 다를 수도 있겠다.

김재영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워싱턴 특파원)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