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보건복지부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공동 개최한 ‘지속가능한 국민연금을 위한 전문가 포럼’에서 정부의 연금개혁 방안이 공개됐다. 국민연금연구원 위원 명의의 발제를 통한 것이었지만 그가 밝힌 ‘국민연금 재정안정화 방안’은 사실상 정부안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연구원이 국민연금공단 부설 연구기관이라는 점이 그 같은 판단의 배경이다.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 방안’ 발제를 맡은 유호선 연구위원이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 방안의 골자는 현행 9%인 보험료율을 15%까지 점진적으로 올리자는 것이었다. 그는 2025년부터 요율을 매년 0.5%포인트씩 12년에 걸쳐 올리면 기금 소진 시점이 최대 2073년까지 미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8년 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전망한 기금 소진 시점은 2057년이었다.

유 위원은 또 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는 나이(현행 62세, 2033년까지 65세로 올라감)를 점진적으로 높여 2048년엔 만 68세를 첫 수령연령으로 삼자는 안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 복지부는 “유럽연합(EU)의 평균 연금수급연령(68세) 등 해외 사례 검토를 통해 보험료율 인상 방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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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는 ‘지금보다 더 많이 내고 더 늦게 받는’ 방향으로 국민연금 제도를 손질하자는 안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정부의 부연 설명이 아니더라도 이 방안엔 정부의 정책의지가 담겼다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는 내년의 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통해 확정될 정부안의 골격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

재정계산은 국민연금법에 근거해 5년마다 실시되는 국민연금 재정수지 계산을 의미한다. 2018년의 4차 재정계산 때 복지부는 2057년이면 연금이 고갈될 우려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으며 나름의 연금개혁 방안을 제시했었다. 당시의 문재인 정부는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몇 가지 대안을 마련해놓고도 연금개혁 실행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 연금재정이 머지않아 바닥날 것이란 것을 예견했으면서도 정치적 이해에 얽혀 개혁에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 인기 없고 힘들기만 한, 그렇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국민연금 개혁 과제는 자연스레 윤석열 정부로 넘어오게 됐다. 윤석열 정부는 대선 승리 직후 연금개혁에 대해 적극성을 보였다. 대통령 선거 승리 후 작성한 120대 국정과제를 통해 ‘상생의 연금 개혁’에 나설 뜻을 밝혔다. 실천 방안의 하나로 공적연금 개혁위원회를 구성한 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초연금과 연계해 국민연금 제도를 개혁해 나가겠다는 의지도 함께 드러냈었다.

하지만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 개혁위원회 설립은 공약(空約)으로 끝나고, 대신 국회가 그 짐을 떠안게 됐다. 그렇게 해서 역할을 대행하게 된 기구가 지난 7월 출범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다.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밀어붙여도 될까 말까 한 사안이 표심에 흔들리기 쉬운 국회로 넘어갔으니 큰 기대를 갖기 어렵게 되어버린 것이 지금까지의 경과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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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직장가입자의 경우 기준소득월액의 9%를 매달 연금 보험료로 납입하고 있다. 보험료는 근로자와 사용자가 각각 ‘기여금’과 ‘부담금’이란 이름으로 기준소득월액의 4.5%씩을 납입하도록 돼 있다. 이번에 제시된 정부안은 현행 9%의 비율을 2025년부터 12년의 이행 기간을 두고 15%로 끌어올리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와 병행해 연금 수급 시작 연령을 보다 늦춰 재정 안정성을 높이지는 게 골자라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이번 개선 방안은 차선책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대로 실행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국민연금의 영속성을 담보하기엔 부족함이 많기 때문이다. 발제자도 밝혔듯이 이번 방안은 기금 소진 시점을 기존 전망보다 16년가량 더 늦추는 정도에 머물러 있다. 이는 개혁안조차 존속 기간을 늘렸을 뿐 점진적으로 기금 사정이 악화되는 것을 용인하는 선에서 타협하는 길을 선택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안이 온전히 국회 문턱을 넘어설지는 미지수다.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법률 개정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여야의 최종 합의안이 과연 정치적 이해를 떠나 연금복지의 백년대계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박근혜 정부 당시의 공무원연금 개혁 때보다 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혁 과정에서 세대 간 갈등이 극명히 노정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실제로 젊은 세대로서는 ‘덜 내고 더 받는’ 방식으로 설계된 국민연금 제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더 내고 덜 받는’ 제도의 희생양이 된다는 인식을 갖기 십상이다. 수령 시점이 다가온 마당에 바뀐 제도를 마주하게 될 장년 이상의 세대들로서도 불만을 갖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국민연금 제도 개혁 과정에서의 최대 난제는 수용 가능성 확보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수용 가능성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국민적 복지의 실현을 위한 최상의 선택지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당위로 보자면 진통이 따르더라도 국민연금 제도 개혁은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다. 과제 이행의 유일한 방법은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의 개편이다. 이 이상의 왕도는 없다고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옳은 길을 가겠다는 정부와 정치권의 의지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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