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수출 부진이 장기화되면서 국제거래의 마지막 보루 격인 경상수지마저 불안정해졌다. 으레 흑자를 기록할 줄로만 알았던 경상수지가 올해 들어 들쭉날쭉하며 월 단위로 흑자와 적자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한덕수 총리가 무역수지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흑자 기조에 문제가 없다고 자랑했던 게 경상수지였다. 그런 경상수지마저 무역수지 적자 심화에 요즘 들어서는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경상수지의 견고한 흑자는 우리나라 같은 비(非)기축통화국이 대외신인도를 높게 유지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높게 매기면서 등급 전망 또한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도 경상수지 흑자 기조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도 근래 들어 국가채무 비율 악화와 가계부채 급증, 남북관계 냉각 등 국가신용 등급에 악영향을 줄 요소들을 마주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고 그런 흐름이 장기화된다면 대외결제 능력에 손상을 입게 된다. 1990년대 말 우리가 경제주권까지 포기하면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외화를 지원받은 것도 따지고 보면 누적된 경상적자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올해 우리나라는 3월까지만 해도 23개월 째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이어왔다. 그러나 지난 4월 수입 급증 탓에 무역수지가 악화된 데다 외국인에 대한 배당이 이뤄지면서 모처럼 80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5월의 38억6000만 달러 흑자를 시작으로 적자기조에서 벗어나는가 싶었는데 8월에 다시 적자(30억5000만 달러) 기록을 남겼다. 흑자는 9월(15억8000만 달러)과 10월(8억8000만 달러)에도 유지됐지만 그 폭이 미미해 적자 전환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불식시켜주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글로벌 교역 환경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경상수지 악화의 주범인 상품수지 적자가 이른 시일 안에 해소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는 의미다.

최근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이달 10일 현재까지 누적된 우리나라의 무역수지 적자액(통관기준 잠정치) 규모는 474억6400만 달러에 달했다. 이런 상태로 가면 올해 연간 무역적자 규모는 500억 달러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종전의 연간 최대 적자기록은 1996년의 206억2400만 달러였다. 우리가 연간 집계상 마지막으로 무역적자를 기록한 때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이던 2008년(32억6700만 달러)이었다.

이달 10일 현재까지의 무역적자 규모는 국내 기관들이 당초 전망했던 연간 적자폭에 근접했거나 이미 뛰어넘은 수준이다. 한국무역협회와 산업연구원은 당초 우리나라의 올해 연간 무역적자 규모를 각각 450억 달러, 480억 달러로 전망했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올해 무역수지를 악화시킨 주 요인은 에너지원 수입가격의 급격한 상승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글로벌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진 마당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국제적으로 에너지 가격은 한 번 더 뛰어올랐다. 올해 들어 우리나라가 이달 10일까지 3대 에너지원(원유·가스·석탄)을 수입하는데 투입한 돈은 1804억1000만 달러였다. 여기에 투입된 돈만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44억6000만 달러보다 800억 달러 가까이 늘어났다. 에너지 수입액 증가분만 해도 올해의 연간 무역수지 예상 적자액보다 많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주력 상품인 반도체의 수출이 부진해졌고, 대(對)중국 수출이 감소한 것도 무역수지 악화를 부채질했다. 그 결과 우리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마저도 지난 10월부터는 두 달 연속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감소폭은 10월 5.8%, 11월 14.0% 등이었다. 우리 수출은 이 달 들어서도 10일 현재까지 20.8%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무역수지는 내년에도 적자를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무역협회는 내년도 우리의 무역수지가 138억 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산업연구원이 예상하는 내년도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66억 달러다. 두 기관은 모두 내년도 우리의 수출과 수입 규모가 나란히 올해보다 줄어들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무역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올해 연간 경상수지는 흑자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행이 예상하는 올해 전망치는 250억 달러 흑자다. 이 수치는 지난달 24일 한은이 경제전망을 수정하면서 제시한 것이었다.

문제는 경상수지 흑자폭이 매달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의 연간 흑자액은 대부분 상반기 중 달성된 것이었다. 한국은행 집계에 따르면 올해 1~6월 중 달성된 경상수지 누적 흑자액은 247억9000만 달러에 달한다. 올해 전체 전망치(250억 달러)를 고려하면 하반기엔 거의 흑자를 내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정부 당국으로서는 특히 지난 8월의 30억5000만 달러 적자가 뼈아팠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흐름을 보면 경상수지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흑자액의 상고하저에 이어 이런 현상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많은 편이다. 그 중엔 경상수지의 하방리스크가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도 포함돼 있다.

기획재정부 방기선 1차관은 최근 비상경제차관회의에서 경상수지에 대해 언급하면서 “월별로 높은 변동성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유가하락에 의한 수입액 감소가 기대되지만 글로벌 경기둔화 등 불안요인도 산적해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런 가운데 한은은 일단 내년도에도 우리가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은이 전망하는 내년도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올해보다 30억 달러 많은 280억 달러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