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도 예산안 때문에 난리다. 한국은 문제의 새 예산안이 내년 1월1일부터 적용되지만 미국은 예산안 없이 새 회계연도가 이미 두 달 반이나 지났다.

한국 같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이 안 가나 미국은 오히려 정식 예산안 없이 임시로 연방 살림을 꾸려가는 상황이 더 평상에 가깝다. 의회가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서명한 새 예산안과 함께 새 회계연도를 시작하는 해가 30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비정상의 희한한 일인 것이다.

예산은 돈이고 삼권분립의 민주 정체에서 의회는 법도 법이지만 예산 돈줄을 꽉 쥐고 있다. 한국도 그럴 터이나 미국은 연방이든 주든 의회가 법으로 돈주머니를 끌러주지 않으면 행정부는 땡전 한 닢도 마음대로 쓸 수 없다.

연방제 미국의 예산안이 회계연도 개시일 넘기기를 밥 먹듯이 하는 것은 의원들이 옛날 우리의 시어머니들처럼 강력한 ‘곳간열쇠’ ‘돈주머니’ 의식에 푹 절어있는 때문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어느 민주 국가나 법의 반 이상이 돈을 거두고 푸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

미국 의회 의사당.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의회 의사당.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회계연도는 캘린더보다 3개월 일찍 시작해 회계연도 2023(FY2023)은 2022년 10월1일 개시되었다. 즉 FY2022는 이미 지난 9월 30일 끝나고 오늘 12월 15일은 새 회계연도 75일째 쯤 되는 날이다. 그런데 12개로 이뤄진 FY2023 예산법안은 단 하나도 상·하원을 통과하지 못해 철지난 FY2022 예산법 12개가 그대로 적용되고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 2022 회계연도 예산법 12개가 어떻게 법안에서 법으로 승격되었는지를 살펴보면 2023 예산법안 12개의 장래를 짐작해볼 수 있다. 2021년 1월 20일 취임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은 두 달도 안 된 3월 10일 7개월 뒤에 시작될 2022 회계연도의 예산요청서를 의회에 보냈다. 이에 상원과 하원의 세출위원회는 모든 의원들이 분산 배치되는 12개 소위를 가동해 양원 별로 12개 예산법안을 짰다.

이후 하원에서는 그래도 7월 중순에 7개 법안이 한날에 전원회의서 통과되었지만 상원은 소위서 법안 4개만 승인한 채 10월 1일 새 회계연도를 맞았다. 하원이 12개 예산법안을 'FY2022 통합세출법‘ 단 하나로 묶고 이를 통과시키자 상원이 옴니버스로 부르는 이 법안을 2022년 1월 13일 수정안과 함께 통과시켰다. 하원이 이 수정안을 3월 9일 통과시켰는데 또 수정안 형식이었다. 이에 상원이 다시 3월 10일 통과시켜 백악관에 보냈고 바이든 대통령은 예산요청서를 보낸 지 1년 뒤인 3월 15일 서명했다. 2022 회계연도가 시작된 지 다섯 달 반이 지난 후였다. 늦게 태어난 이 옴니버스 예산법 하나가 2023 회계연도 들어서도 계속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연방이 움직이려면 하루에 돈이 얼마가 나가는데 가만히 있어도 이 힘이 연장될 수는 없다. 양당이 합의해서 일시 효력연장을 위한 ‘계속세출 결의안’을 상·하원 별로 통과시키고 대통령의 수용 서명이 있어야 한다. 이 결의안이 없이 단 1분이라도 예산안 공백 상태가 되면 연방정부는 휴업할 수밖에 없다. 셧다운되는 것이다.

미국 연방정부는 한국시간으로 17일 오후 2시인 금요일 자정까지 2차 계속세출결의안(CR)이 의회 통과와 대통령 서명까지 이뤄지지 않으면 4년 만에 셧다운을 면할 수 없다. 15일 낮 기준으로 만 50시간이 남았다.

미국 연방 셧다운은 여러 번 세계 뉴스가 돼 우리도 그것이 말만큼 심각하지 않고 상당히 요식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장기화하면 한국인이 많이 거치는 동부의 공항이 폐쇄된다. 공항 관제사가 국립공원 경찰과 같이 연방정부 소속이어서 셧다운되면 주급을 줄 돈이 법적으로 없어 무급휴가로 집에 보내야하는 것이다.

이 셧다운을 면하기 위해 양당의 협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재 정식 예산안 없이도 미 연방정부가 아무 삐꺽거림 없이 잘만 움직이고 있는 것은 1차 계속세출 결의안 덕분이다. 지난 9월 29일 상원이 이 CR을 통과시키자 올 2022년 예산회계일 마지막 날인 30일 하원이 뒤따랐고 바이든 대통령이 자정 전에 서명해 연방정부는 일단 12월 16일 자정까지 11주 간 예산 ‘연명’이 가능해졌다. 1차 연명 기한이 다해 미국이 연방 셧다운을 면하려면 마흔 몇 시간 안에 2차 CR, 계속세출 결의안을 완료시켜야 한다.

어차피 연방예산 확정의 관건인 12개 예산법안의 옴니버스화, 즉 단 하나의 ‘통합세출법’안으로 뭉뚱그리고 이것을 양원이 통과시키는 것은 1년 전 FY22에서 보듯 이틀 시간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서 두 번째 CR이 문젠데 집권 민주당은 23일까지 1주일만 더 연명하는 짧은 CR을 16일 자정 안에 만들고 주어진 말미에 1조6500억 달러(약 2140조원)의 2023년 옴니버스 예산을 대통령 서명까지 마치고자 한다. 반면 연방 하원을 4년 만에 탈환한 공화당은 연말이면 사라지는 레임덕의 현 연방의회가 아니라 1월 3일 개원하는 118대 새 의회가 옴니버스 예산안을 확정하도록 2차 CR을 2월이나 3월까지 길게 잡으려고 하는 중이다.

이는 양당이 12개 예산법안의 총액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는 계수 25억 달러보다 중요한 협상요인이다.

25억 달러는 양당이 합의에 육박하고 있는 1조6500억 달러 옴니버스 예산의 1.5%에 해당된다. 그런데 한국 1년 국내총생산(GDP)과 비슷한 규모라고 할 수 있는 미 연방 FY23의 옴니버스 예산 2140조원은 통합세출예산을 말하는 것이지 2023 연방총예산 FY23의 총액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 제일 미국연방의 FY23은 5조80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7500조원이다. 우리 내년 총예산안 680조원의 11배이며 미국 GDP 25조 달러의 23%다. 며느리 시절 고생해 곳간열쇠를 죽을 때까지 꽉 쥐고 있으려는 옛 시어머니 같은 미 의회이지만 정작12개 예산법안으로 만지작거리며 고칠 수 있는 연방예산은 통합세출예산, 옴니버스 예산으로 불리는 재량성 예산뿐이다.

이것이 FY23에서는 1조6500억 달러로 보다시피 FY23 전체의 29%도 안 된다. 남은 71%, 4조1500억 달러는 사회보장기금, 의료보조기금, 정부채무 이자 및 코로나19 관련 추가경정예산으로 이미 법으로 확정된 것이라 여야가 피 튀겨가며 새 개혁법을 만들려 할 때에만 의원들이 손댈 수 있다.

지난 3월 28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두 번째인 5조8000억 달러 규모의 연방예산 요청서를 가는 글씨 80페이지에 담아 연방 의회에 제출했다. 이 중 의회가 손댈 수 있는 재량성 예산 1조6000억 달러가 1조6500억 달러로 불어난 가운데 25억 달러 견해차 속에 통합세출예산안, 옴니버스 예산안 직전 단계까지 와 있다.

16일 자정까지인 1차 계속세출결의안에 이어 2차 결의안이 합의되고 옴니버스 예산안이 통과되면 2100조원 상당의 2023년 통합세출예산은 굵은글씨 4000페이지짜리 법으로 확정돼 연방정부의 10여 부처와 수백 개 프로그램이 마음 놓고 돈을 쓸 수 있게 된다.

만약 옴니버스 예산은 물론 2차 계속세출 결의안마저 민주당과 공화당이 합의 통과시키지 못하면 미 연방정부는 17일이 막 되자마자부터 셧다운에 들어간다.

FY22는 4번, FY21는 5번 씩 CR을 제때 만들어 셧다운 없이 늦게나마 옴니버스 예산을 마련했다. FY23도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아니면 FY19 때처럼 35일 간 셧다운할지, FY18 때처럼 CR을 8번 연속할지 아직 알 수 없다.

김재영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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