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이 문재인 정부 당시 이뤄진 국가통계 전반의 ‘마사지’ 의혹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여당 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한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실이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 의장은 지난 15일 열린 당 비상대책회의에서 조사 진행 상황의 일단을 간략히 설명했다. 감사원이 지난 9월부터 직전 정부 당시의 통계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표본 왜곡 및 숫자 임의 기입 등의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를 과장하기 위해 가계 및 고용동향 관련 지표의 표본을 왜곡했다는 의혹이 드러났다는 주장도 함께 내놓았다.

감사원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아직 의혹 내용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된다. 다만, 통계조작 의혹에 대한 감사는 필연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지난 정권 내내 통계조사 발표 내용 전반에 대한 의혹이 줄기차게 제기된 점이 필연을 담보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난(欄)을 통해서도 몇 차례 언급했듯이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기관은 통계청이다. 특히 논란의 발원이 된 인물은 강신욱 청장이었다. 강 전 청장은 취임을 전후해 숱한 구설을 자초했던 인물이다. 그는 진작부터 소득주도성장 정책 옹호의 논리적 기반을 제공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그가 제시한 논리를 최저임금 급속 인상의 명분으로 앞세웠다.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 이상”이라는 말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강 전 청장은 전임 황수경 청장 재임시 생산된 통계청의 통계자료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관심을 끌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황 청장은 ‘차관급 인사 대상 중 한 명’으로 지목돼 정권 초인 2018년 8월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취임 13개월여 만에 이임하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의미심장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요인 즉, 자신이 고분고분하지 않아 물러나게 됐다는 취지였다.

그가 괘씸죄에 걸려 물러났다는 의심을 키운 결정적 사안은 그 직전에 발표된 소득분배 관련 통계자료였다. 발표 자료의 핵심 내용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추진 이후 소득분배 지표가 더 나빠졌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실제로 현실 상황의 변화 탓인지, 아니면 바뀐 청장의 ‘의지’가 작용한 탓인지 알 수 없지만 통계청이 생산하는 자료들에서는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 사례가 2020년 단행된 가계동향조사와 관련한 시계열(時系列) 단절이었다. 통계에서 시계열을 단절한다는 것은 같은 성격의 통계치가 시간 흐름에 따라 나타내는 추이를 직접 파악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강 청장 휘하의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1분기 가계동향자료는 조사 방식과 표본에 가해진 변화로 인해 시계열이 단절됨에 따라 이전 것과 직접 비교하기 어려워졌다. 2020년 1분기의 가계 살림살이 형편을 전년 또는 그 이전 연도 1분기 당시와 직접 비교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시계열 단절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그 결과 생산된 분배지표는 한결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방식의 통계자료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긍정적 효과를 낳았다는 것으로 해석될 구실을 제공해준 셈이다.

대체적 내막은 이렇다. 바뀐 방식으로 집계한 2020년 1분기의 균등화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41배였다. 전년도 동기의 배율은 5.80배였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1년 사이에 소득불평등이 완화됐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5분위 배율은 낮을수록 소득불균형 정도가 완화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전년도 1분기 배율 5.80은 이전 방식으로 집계된 결과물이고 2020년 1분기의 배율은 새로운 집계방식으로 생산된 것이었으니 직접 비교가 불가능한 자료들이었다. 직접 비교가 가능해지도록 새로운 방식으로 2019년 1분기의 균등화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을 계산하면 그 값은 5.18배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를 2020년 5분위 배율(5.41)과 비교하면 1년 사이 우리사회의 소득불균형 정도가 오히려 악화됐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상에서 보듯 시계열이 단절되면 이후 생산되는 통계 자료는 이전 것과 직접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돼버린다. 동시에 시계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일반 통계 수요자들에게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위험성을 지니게 된다.

시계열 단절이 무조건 금물이라는 것은 아니다. 조사방식이나 표본 추출 등은 시대상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다만, 거기엔 최소한의 명분과 전문가 그룹의 공감대 형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통계 마사지’를 위한 작업이란 의심을 사기 십상이다.

국가통계는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도록 지원하는 기본적인 자료에 해당한다. 정책 의지 혹은 이념적 코드에 맞춰 이를 의도적으로 왜곡한다면 국가 전체의 운명에 치명적 해를 입힐 수 있다. 선진국들이 통계기관의 독립성을 사법부 독립 못지않게 중시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에서의 통계 마사지 논란은 고용동향 발표를 둘러싸고도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그 결과 통계청 생산 자료에 대한 신뢰성이 크게 훼손됐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돼버렸다. 예를 들면 ‘조사 주간에’, ‘1시간 이상만’, ‘수입을 위해’ 일을 하면 취업자로 분류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을 악용해 재정을 쏟아부어가며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단기 알바성 일자리를 양산한 것 등이 문제였다.

물론 이 부분에 관한 한 보다 근본적인 잘못은 집권세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통계청 또한 통계 수요자들이나 정책 입안자들이 보다 정확한 판단을 하도록 냉정한 통계분석 자료를 제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논란이 많았던 만큼 감사원이 ‘통계 마사지’ 관련 의혹을 들여다보는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가 십년지대계가 됐든 백년지대계가 됐든 그 출발점은 정확한 통계일 수밖에 없다. 지금처럼 새 정부 출범에 맞춰 각종 개혁 작업이 본격화되는 시점이라면 그 필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감사원 감사와 별개로 국가통계를 생산하는 기관들의 새로운 각성 노력이 자발적으로 이뤄지길 기대한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