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한국은행이 국내 소비자물가가 당분간 5% 내외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을 제시했다. 동시에 물가 오름세가 점차 둔화되겠지만 그 속도와 관련해서는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물가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한은은 또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의 예상 경로에 대해 설명하면서 당분간 큰 폭으로 둔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을 나타냈다.

이상은 20일 한은이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및 BOK이슈노트의 ‘향후 근원물가 흐름 점검’ 보고서에 담긴 핵심 내용들이다.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는 한은이 매년 6월과 12월에 발표하는 문건이다.

이날 공개된 12월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11월 국내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에 비해 5.1% 상승했다. 이를 토대로 추정하면 올해 연간 물가 상승률은 5% 내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환란 와중에 있었던 1998년의 7.5%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금융위기로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었던 2008년의 상승률(4.7%)보다도 다소 높은 수준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올해 하반기(7~1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7%로 집계됐다. 이 또한 1998년 하반기(6.5%)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향후의 물가 흐름에 대해 보고서는 공급과 수요 측면 모두에서 불안 요인들이 상존한다고 설명했다.

우선 공급 측면에서 보자면, 유가의 경우 세계적 경기 둔화로 하방 압력이 커졌지만 대(對)러시아 제재와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의 감산 등 불안 요인이 동시에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곡물 등의 경우에도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곡물수출협정 연장 등의 하방 요인과 이상기후, 경작비용 상승 등의 상방 요인이 혼재해 있다고 밝혔다.

수요 측면에서도 하방 및 상방 요인이 혼재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물가 하방 요인으로는 세계적 긴축 기조에 따른 성장 둔화가, 상방 요인으로는 유류세 인하폭의 단계적 축소, 전기·가스 요금의 인상 등이 지목됐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수요 측 요인에 의해 점차 둔화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보고서는 그러나 개인서비스 물가의 하방 경직성(한번 올라가면 쉽게 내려가지 않는 성질)과 일부 품목의 수급차질 지속 등이 근원물가 하락폭을 제한할 것으로 전망했다.

BOK 이슈노트는 특히 국내·외 경기 하방 압력 증대로 근원물가 오름세가 점차 둔화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국내 근원물가는 소비자물가가 지난 7월 6.3%로 정점을 찍고 상승폭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과 달리 지난달(4.3%)까지 상승폭을 꾸준히 키워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지수(식료품 및 에너지제외지수)의 월별 상승률은 소비자물가지수(총지수) 상승률이 정점을 찍었던 7월엔 3.9%를 기록했었다. 근원물가지수는 이후 4.0%(8월)→4.1%(9월)→4.2%(10월)→4.3%(11월) 등의 상승률을 차례로 기록했다. 이는 곧 국내 물가의 기조적 흐름은 아직도 정점에 다다르지 못했다는 해석을 낳게 해준다.

[사진 = 연합뉴스]
[사진 = 연합뉴스]

국내 근원물가 상승폭 확대 흐름은 외식을 포함하는 개인서비스 물가의 급격한 상승에서 비롯됐다. 특히 개인서비스 물가는 하방경직성이 강해 ‘끈적끈적한 물가’(Sticky Price)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한다. 이들 물가의 하방경직성은 물가 전반을 끈적끈적하게 만드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개인서비스물가는 지난달에도 외식물가의 급상승 탓에 총지수 상승률 5.0%를 크게 웃도는 수준의 상승률(6.2%)을 나타냈다. 특히 외식물가는 지난 9월 9.0% 상승함으로써 1992년 7월(9.0%)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바 있다. 11월 외식물가의 1년 전 대비 상승률은 8.6%였다

한국은행은 그러나 최근 들어 외식물가 상승세가 다소 완화되고 있는데다 국내·외 경기가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을 들어 근원물가의 오름폭도 점차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구체적 이유는 고물가와 기준금리 인상 등에 따른 가계의 실질구매력 저하였다. 그밖에 전세 가격 하락폭이 커지면서 집세 부담이 줄어드는 점, 임금 상승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는 점 또한 근원물가 상승폭을 줄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내년엔 물가가 상고하저 흐름을 보일 것이라 전망하면서 “물가 상승률이 점차 낮아지더라도 물가목표 2%를 웃도는 높은 수준이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물가에 중점을 둔 통화정책 운영을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원론적 이야기이지만 한은 물가목표가 2%라는 점과 함께 물가안정에 통화정책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차기 정례회의가 3주 남짓 남았다는 점에서 보자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예고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새해 첫 정례 금통위 회의는 다음달 13일 열린다.

이 총재는 다만 “앞으로의 통화정책 방향은 다음 달 금통위 회의에서 자세히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물가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 만큼 향후 나오는 데이터와 미국 등 주요국의 정책금리 변화 등을 함께 고려하면서 정교하게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밝힌 고려 사안에는 부동산 가격 조정, 그에 따른 금융안정성 저하 가능성, 기타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도 포함돼 있었다.

이 총재는 이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는 바람에 우리 국민들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히면서도 “정책 대응이 없었더라면 향후 국민경제에 더 큰 비용을 초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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