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전기·가스료의 단계적 인상이 예고된 와중에 서민의 발인 지하철과 버스의 승차요금이 줄줄이 인상된다. 정부는 이미 올해가 넘어가기 전에 전기·가스료 인상 계획을 밝히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라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누적 적자 및 미수금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전기·가스 요금은 올해에만 서너 차례씩 인상됐지만, 에너지 공기업들의 경영 정상화를 기대하기엔 인상폭이 턱없이 작았다는 게 중론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엔 지하철·버스 요금 인상이 예고됐다. 공공요금의 연쇄 인상은 고물가 시국에 가해졌던 인위적 통제로 운영 및 관리 주체들의 재정적 리스크가 임계점에 도달한 것과 연관돼 있다.

시에 따르면 최근 5년(2018~2022년) 동안 지하철과 버스의 연평균 적자 규모는 각각 9200억원, 5400억원이었다. 지하철의 경우 적자폭은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2020년 들어 전년의 두 배 수준인 1조1448억원으로 뛰었고, 이듬해 9957억원으로 다소 줄었다가 2022년엔 다시 1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올해 적자폭이 1조2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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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사업의 연도별 적자폭 또한 2020년에 전년의 두 배가량인 6784억원으로 크게 늘어났고, 이후 7350억원, 6582억원(올해 전망치)의 추이를 보이고 있다.

적자가 누적되자 지하철 운영기관인 서울교통공사는 올해에만 9000억원의 공사채를 발행하는 한편 서울시로부터 1조2000억원의 재정지원을 받아야 했다. 근본 원인은 시내버스와 마찬가지로 운영을 하면 할수록 적자폭이 커지도록 만들어진 요금체계였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내년 4월 말 쯤 지하철과 시내버스, 마을버스 등 대중교통 요금을 300원씩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29일 밝혔다. 계획대로 간다면 서울의 대중교통 요금(카드 결제 기준)은 지하철 1550원, 시내버스는 1500원으로 오른다. 현금을 내고 승차할 경우 요금은 이보다 100원씩 더 비싸진다.

서울시가 대중교통 요금을 마지막으로 인상한 때는 2015년 4월이었다. 따라서 내년 4월의 요금 인상은 8년 만에 단행되는 것이다. 8년 전의 요금 인상폭은 지하철이 200원, 버스는 150원이었다.

이번에 인상폭이 더 커지더라도 지하철과 시내버스의 요금현실화율(비용 대비 요금의 비율)은 2015년 당시보다 낮아진다는 게 서울시의 분석이다. 시에 따르면 8년 전 요금 인상 이후엔 요금현실화율이 80~85%로 상승했지만 이번의 경우 70~75% 수준에 머물게 된다. 시는 8년 전 정도로 현실화율을 맞추려면 지하철과 버스 요금 인상폭이 각각 700원, 500원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서울시 대중교통 운영 적자가 커지는 것은 사회 구조의 변화와도 연관돼 있다는 게 서울시의 분석이다. 절대 인구 감소와 함께 이용객이 전보다 줄어들었고 지하철의 경우 노인인구의 빠른 증가로 이용객 실질 감소 효과를 더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게 됐다. 수도권 광역철도(GTX)와 민자철도 개통 등도 이용객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그 결과 현재 서울 지하철과 시내버스의 요금현실화율은 60~6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승객을 태울 때마다 지불한 요금의 35~40%를 적자로 떠안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뜻이다.

시의 요금 인상 결정에는 중앙정부와 국회의 지하철 요금 지원 거부도 각각 한몫씩을 했다. 먼저 지원 거부를 결정한 곳은 정부였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지방자치단체 도시철도 POS(공익서비스 손실보전 지원) 예산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았다. POS 예산은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의 무임승차를 지원할 목적으로 운용되는 항목이다.

정부는 이전에도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의거해 코레일에만 POS 예산을 지원해왔다. 작년과 올해의 편성 규모는 각각 3796억원, 3845억원이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도 코레일 지원용 POS 예산만 3979억원을 반영한 뒤 그대로 국회에 제출했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시철도 손실분 지원이 반영되지 않은 채 정부 예산이 편성됐던 것이다.

앞서 지자체들은 정부가 코레일의 운영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에 준해 도시철도 POS 예산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해왔다. 구체적으로는 코레일에 60%의 손실 보전을 해주고 있으니 그 정도 만큼 지자체 도시철도 운영도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다.

지자체의 요구는 한때 국회 논의 과정에서 반영되는 듯 보였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코레일 지원용으로 한정된 정부의 POS 예산 3979억원에 지자체 도시철도 손실보전분 3585억원을 추가해 총 7564억원으로 만든 수정안을 심의·의결했던 것이다. 그러나 국회 본회의는 국토위의 POS 예산 추가분을 모두 삭감한 뒤 정부 원안을 의결했다.

국회 본회의가 이 같은 내용의 예산안을 의결하자 서울시는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불가피해졌다”고 밝혔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정부가 도와주지 않으면 요금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었다. 매년 조 단위의 적자를 더 이상은 시가 독자적으로 감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곧 경기도·인천시 등 통합환승할인제로 엮여 있는 지자체들과 협의를 시작한 뒤 내년에 시민공청회와 시의회 의견 청취 등을 거쳐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결정하기로 했다. 서울시가 대중교통 요금을 올리기로 하면 대구 등 기타 광역 단위 지자체들도 같은 이유로 요금 인상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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