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이 내년 1분기 중 또 인상된다. 올해 이미 세 차례 인상된 것으로도 모자라 해가 바뀌기 바쁘게 요금을 더 올리기로 했다. 인상폭도 kWh(킬로와트시)당 13.1원으로 역대급 규모에 해당한다. 올해의 세 차례 인상분 합계가 kWh당 19.3원이었던 것을 고려하더라도 이번에 수용가가 느낄 부담 강도는 이전과 다를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인상이 내년 초 한 차례로 끝난다는 보장도 없다. 한국전력의 상황만 놓고 보면 분기마다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길게는 향후 3~4년 정도 단계적으로 요금이 인상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전이 전기요금의 단계적 인상을 전제로 2027년에 경영 정상화를 이룬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는 점이 그런 전망의 배경이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 발표에 따르면 내년 1분기의 전기료 인상으로 평균적인 4인 가구(월 사용량 307kWh)가 추가 부담할 월 전기료는 4022원이다. 이 같은 증가폭은 1981년 2차 오일쇼크 이후 최대다. kWh당 인상폭이나 인상률(9.5%) 또한 최대이긴 마찬가지다.

[그래픽 = 연합뉴스TV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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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치로 평균적인 4인 가구에 청구되는 월 전기요금은 대략 5만7000원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용에도 동일하게 인상폭이 적용됨에 따라 기업들의 전기료 부담도 적지 않게 늘어나게 됐다.

하지만 이 정도 인상으로는 한전의 경영난을 해소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정부나 한전 측의 판단이다. 얼마 전 정부와 한전이 국회에 제출한 한전 경영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내년의 전기료 인상 요인은 kWh당 51.6원이다. 이번에 발표된 인상폭의 네 배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내년 인상 요인을 모두 충족하려면 분기마다 이번 인상폭만큼씩 전기요금 인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는 내년의 전기료 인상 요인(kWh당 51.6원)을 분기별로 나누어 반영한다 하더라도 한전이 1조3000억원의 연간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 추산했다. 이날 발표된 1분기 인상안으로 한전이 추가로 거둘 수익은 7조원대인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 한전의 연간 예상 적자액이 30조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감안하면 내년 1분기 한 차례의 전기요금 인상은 턱없이 미흡한 조치라 할 수 있다.

한전의 누적되는 적자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국가경제 전반이 흔들릴 위험성이 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전기요금을 억누르는 바람에 경영 적자가 커지자 한전은 채권 발행으로 버텨오고 있다. 올 들어 지금까지 한전이 발행한 채권만 해도 30조원이 넘어섰다.

한전채가 다량 쏟아져 나오면서 우리경제에는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에 채권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시장금리가 상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채권값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는데 따라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시장금리 상승은 금융기관들의 자금조달 비용을 높여 순차적으로 코픽스금리와 대출금리를 상승시키는 작용을 하기 마련이다.

[그래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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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또 있다.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한전채가 시장을 휩쓸면 기업들이 채권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가 외면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자금 조달 비용 증가를 우려하기에 앞서 회사채 발행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 올해의 경우 한전채 발행량이 워낙 많아지다 보니 시장에서는 비교적 선호도가 높은 금융채조차 외면받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전의 경영 정상화를 꾀할 최선이자 근본적인 방법은 전기요금 현실화다. 이런 현실을 직시할 때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당장의 여론 악화가 두려워 전기요금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은 문제를 키워 해결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하지만 무작정 전기요금 인상에만 의지하려는 것은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실상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만으로 정부나 한전이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라 여긴다면 그 또한 오산이다. 중요한 것은 정부와 한전의 고통 분담을 위한 솔선수범이다. 특히 한전은 공기업 하면 먼저 떠오르는 흥청망청 이미지를 해소할 특단의 조치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마른 수건을 짜듯 긴축경영을 하라는 것이다. 자산 매각, 복지 조정 등과 함께 논란 많은 한전공대 지원 문제도 이 참에 해결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전기요금 인상은 물가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최대한 신중히 이뤄져야 할 일이다.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이 커진 점을 고려해 정부도 면밀히 원가를 따져가며 요금 인상을 최소화하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주먹구구식으로 전기요금을 올린다는 인상을 조금이라도 주었다가는 소비자들의 저항에 부딪히기 십상이다. 정책 오류에 의해 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하는 일도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전기요금 인상 요인의 상당 부분이 이전 정부의 비현실적 에너지 정책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들에게 전기요금 인상은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사안이다. 전기요금 인상에 공감하는 국민들조차도 한전이 말하는 인상 요인을 100%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다. 올리되 인상폭과 시기는 조심 또 조심해가며 결정해야 할 것이다.

대표 필자 편집인 박해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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