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에너지 거대기업 엑손 모빌이 유럽연합(EU)을 상대로 횡재세 무효 소송을 냈다.

미 텍사스주에 본부를 둔 엑손이 EU 회원국인 네덜란드 및 독일 자회사를 통해 ‘자신도 감히 기대하지 않던 돈벼락’ 횡재(橫財)에 대한 세금부과가 부당하다고 대든 것이다. 록펠러 스탠다드 오일의 후신인 엑손은 돈벼락을 맞지 않았다는 일차원적인 반발이 아니라 법적 권한도 없는 기관이 과세를 결정했다는 고급 논리를 펴고 있다.

엑손이 물어야 할 횡재세는 2023년 한 해 동안 20억 달러(약 2조5000억원) 정도다. 한국 법인세 총액이 60조원이 약간 넘으니 정통 법인세 말고 덤으로 또 2조원이 넘는 돈을 내라고 하니 마뜩찮을 수도 있다. 엑손이 얼마를 횡재했기에 미국보다 규모나 힘이 강하다고 할 수 없는 준(準) 유럽합중국이 2조 여원을 추가로 내라는 걸까.

엑손의 횡재는 2022년 영업에서 나왔다. 그 이전에도 세계 모든 상장기업 중 총수입 규모가 1~10위 안에 언제나 들었던 세계 최대 석유사 엑손은 2021년 전세계서 360조원을 벌어 세금 등을 내고 순익으로 29조원을 챙겼다. 다국적 기업이라 엑손은 미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 세금을 냈을 것인데 지난해 미국연방 법인세 560조원 속에 엑손 것이 5조원 이상은 들어 있을 터이다.

[사진 = AFP/연합뉴스]
[사진 = AFP/연합뉴스]

엑손은 올해 3분기(7~10월)에만 순익이 24조원을 넘었다. 동시에 올해 전체로는 580억 달러(약 73조원)의 순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었다. 2021년 29조원이 1년 뒤 73조원으로 250% 급증했으니 돈벼락일시 분명하다.

지난해 37년래 가장 높은 5.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던 미국이 올해는 1% 후반 성장하면 다행이라는 것인데 엑손의 250% 순익 폭등은 특별해도 이만저만 특별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엑손이 특별히 사업을 잘해서 돈벼락이 쏟아진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운수가 좋아서 이 큰 돈을 벌었던 것으로 가히 횡재라고 할 수 있었다.

난데없는 한바탕 바람에 생각지도 않게 과일이 떨어지는 윈드폴(windfall), 횡재는 경제적 혁신 기운이 별로여서 윈윈이 아니라 제로섬 게임 냄새가 난다. 엑손의 통상적 기대치 수십 배의 순익 폭등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4000만 우크라인의 피눈물이 없었으면 피지 못했을 이상한 돈꽃인 것이다.

엑손의 돈벼락에는 우크라인뿐 아니라 러시아를 제외한 6억 유럽대륙인, 적어도 4억5000만 유럽연합(EU)인들의 한숨과 냉골방 소름이 서려있고 묻어있다. 엑손 모빌 등 세계 거대 석유 및 에너지 기업이 3배 가까운 순익을 챙기는 동안 유럽 일반가정과 중소기업은 2배 오른 전기 및 가스난방 고지서에 한숨짓고 전기와 가스 아끼느라 추위에도 냉골을 견디는 것이다. 세계 5대 석유사들인 엑손, 셸, BP, 셰브런, 토탈 등은 올 3분기에 엑손의 196억 달러(약 24조원)를 비롯해 6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순익을 올렸다. 올 한 해로는 엑손의 580억 달러(약 73조원)를 위시해 1800억 달러 순익이 거뜬해 보인다. 국제기준 원유 브렌트유 가격은 런던시장에서 러시아의 2월24일 우크라 침공 직전 배럴당 75달러가 직후 140달러까지 치솟았다. 천연가스 도매가는 유럽 최대 네덜란드 TTF시장서 직전 메가와트아워 당 76유로에서 직후 280유로, 8월 중순 340유로까지 올랐다. 석유, 천연가스는 물론 러시아의 가스공급 급감에 대체재로 부상한 석탄까지 포함해 화석연료 에너지사들은 돈벼락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 침공 응징으로 미국, EU, 영국 등이 경제제재를 쏟아내자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무기화했고 덕분에 에너지 거대기업은 생각지도 않던 덕을 보았으나 러시아와 한 대륙인 유럽과 EU 국민들은 에너지비 폭탄을 맞았다. 하루 1000만 배럴 생산량은 세계 선두 미국에 200만 배럴 뒤지나 하루 800만 배럴의 원유 및 정유 수출량은 세계 최대인 러시아는 예상보다 적은 하루 50만 배럴 수출 감축에 그치면서 유가급등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 이런 여유에 기대 러시아는 세계서 가장 많이 매장되어 있는 천연가스를 우크라 지원에 일심인 유럽과 EU를 혼내는 데 전적으로 사용하기로 작정했다. EU 27개국은 지난해 1년 동안 3300억㎥의 천연가스를 수입했는데 이 중 1600억㎥를 러시아 한 나라에서 공급받았다. 러시아는 하루 4억4000만㎥ 씩 공급하던 천연가스를 현재 하루 1억㎥ 정도만 EU에 주고 있다. 러시아가 발트해 노르트스트림1 파이프를 완전히 막아버리기로 하자 8월에 한달후 인도의 가스선물 도매가가 급등한 이유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본부.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본부. [사진 = 로이터/연합뉴스]

천연가스는 동절기 난방뿐 아니라 유럽서 전력생산 에너지로 많이 쓰여 일반가정은 갑자기 배로 뛴 전기료 청구서를 받아보게 되었다. 유럽연합 최강 경제국 독일과 그 다음이었다가 탈퇴한 영국 국민들의 에너지비 부담 폭증이 특히 심했다. 양국을 비롯, 많은 나라들이 국가빚을 내 국민 에너지비 보조에 나섰는데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이런 식으로 올 겨울을 보내는 데 적어도 7000억 유로(약 7500억 달러)가 가외로 들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여기서 횡재세가 태어났다. EU는 에너지 기업으로부터 1400억 유로를 과잉이익 회수의 횡재세로 거둬들여 7000억 유로가 필요한 회원국 정부의 에너지비 보조금에 보태기로 결정했다. 9월 말에 확정되었는데 수많은 대상 기업 중 유일하게 엑손 모빌이 3개월 지나 새해 되기 사흘 전에 횡재세 무효소를 EU 일반법원에 낸 것이다.

엑손은 현재 시가총액이 전세계 9위인 4500억 달러로 삼성의 1.5배이고 EU 횡재세 대상 기업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기업임이 틀림없지만 횡재세의 최대 타깃은 아니다. EU 횡재세 1400억 유로(약 1500억 달러) 중 석유 가스 석탄 등 화석연료 에너지 기업이 토해낼 과잉이익금은 그 16%인 230억 유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중 엑손은 18억5000만 유로, 즉 20억 달러가 예상되고 있다.

순익이 러시아 우크라 침공으로 250% 뛰어 580억 달러(약 73조원)에 이를 전망인 초대기업이 20억 달러(약 2조5000억원) 추가과세를 인정할 수 없어 총 1500억 달러인 EU 횡재세의 합법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EU 횡재세 타깃은 엑손과 같은 화석연료 초대기업과 달리 숨어서 은근하게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 덕을 본 다른 에너지 그룹이다. 풍력, 태양력 등 재생에너지 및 원자력발전 관련 기업으로 환경오염, 기후변화와 관련해 화석연료 그룹과 대비되어 선하게 비쳤던 회사들이다. EU는 회원국에게 소비자 전기값을 부과책정할 때 가장 비싼 에너지원 발전을 기준으로 매기도록 정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면서 유럽 가스 가격이 폭등했고 수출을 포기한 러시아는 이 혜택을 못 보았지만 가스보다 훨씬 발전비용이 싼 재생에너지 및 원자력발전 기업들이 원비용의 몇 배나 되는 천연가스 비용으로 전기값을 부과하면서 돈벼락을 맞았던 것이다.

이처럼 EU는 저비용 발전의 에너지사로부터 1170억 유로를 횡재세로 거둬들일 방침이다. 엑손이 대표하는 화석연료 기업들에 비해 부담이 5배나 된다. 그런데도 저비용 발전 에너지사들은 군말이 없었다. 그런데 돈벼락에 비해 횡재세 부담이 크다고 할 수 없는 천하의 석유 자이언트 엑손 모빌이 횡재세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최근의 유럽 유가 및 가스 가격 하락 추세와 맞물려 엑손이 뭔가 큰 수를 내다본 것 아닌가 싶다.

김재영 전문위원(전 서울신문 워싱턴 특파원)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