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정부가 입장을 180도 바꾸어 반도체 산업에 대해 화끈한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불과 10여일 전까지만 해도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산업을 대폭 지원하는데 대해 난색을 표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배경엔 윤석열 대통령의 질타성 지적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세수 감소 등을 우려해 야당보다도 반도체 시설투자 지원에 인색한 모습을 드러냈었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지난달 국회 논의과정에서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20%(대기업 기준)로 대폭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기재부는 당시 8%안을 고집했었다. 기존의 6%에서 불과 2%포인트 늘린 방안이었다. 정부안은 제1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수정 제시한 10%안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적극 지지했던 반도체 산업 세제 지원이 정부 당국에 의해 거부되는 모양새가 만들어진 셈이었다.

결국 국회는 지난 23일 정부안대로 세액공제율을 6%에서 8%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국민의힘이 민주당 출신인 양향자 의원을 영입해 반도체특위를 꾸린 뒤 마련한 지원 계획이 유야무야되는 듯 보였다. 양 의원은 국회가 8%안을 의결하려 하자 “차라리 부결시켜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오른쪽)가 국가전략기술 산업에 대한 세제지원 방안을 밝히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추경호 경제부총리(오른쪽)가 국가전략기술 산업에 대한 세제지원 방안을 밝히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이후 반전이 이뤄졌다. 지난달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반도체 세제 지원을 확대하라고 지시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기재부는 부랴부랴 지원방침을 다시 손질하기 시작했고 3일 그 결과물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날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발표한 반도체 산업 등에 대한 세제 지원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앞으로 반도체 산업 시설투자가 이뤄질 경우 투자액의 15%(대기업 기준)를 세액공제해주기로 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 올해 1조원을 반도체 관련 시설에 투자한다면 1500억원의 세금을 감면받게 된다. 정부안이 국회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경우 그렇게 된다는 뜻이다.

정부안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반도체·배터리·백신 등 국가전략기술 산업의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대기업은 기존 8%에서 15%로 증대된다. 추가투자 증가분(직전 3년 평균치 대비)에 대해서는 10%의 추가공제 혜택이 주어진다.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이 최대 25%까지 올라간다는 의미다.

중소기업일 경우 당기 공제율은 16%에서 25%로 올라간다. 여기서도 추가투자 증가분에 대해서는 10%의 공제가 덤으로 이뤄진다. 중소기업이 시설투자에 나설 경우 최대 35%까지 세액공제를 받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방안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위축된 기업투자 심리를 반전시키고 국가전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업계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강석구 조사본부장 명의의 논평을 통해 “적극 환영한다”며 “글로벌 경기침체로 기업들의 투자 의지가 꺾일 수 있는 상황에서 나온 적절한 조치”라는 반응을 보였다. 관련 기업들도 비로소 경쟁국 수준의 세제 지원이 이뤄지게 된 것을 환영하면서 조속히 입법 절차가 끝나기를 기대했다.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반도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국은 이미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해 25%의 세액공제율을 적용하고 있다. 파운드리 강자로서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만에서도 자국 반도체기업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기존 15%에 25%로 높이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대만 의회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산업혁신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이번 조치가 관철된다면 정부는 당장 내년에만 3조6500억원의 세수 감소를 감내해야 한다. 또 2025~2026년에는 매년 1조3700억원씩의 세수 감소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문제는 더불어민주당이 ‘부자 감세’를 비판 포인트로 내세우며 관련법 개정에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번 정부안은 민주당이 지난달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제시했던 10%안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 격론을 수반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하지만 정부가 거액의 세수를 포기해가며 마련한 세제지원 방안을 무작정 반대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경제가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이때 주력산업 육성을 통해 수출 증대를 꾀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그 같은 정부 논리에 여론이 얼마나 호응해 주느냐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저작권자 © 나이스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