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우리의 경상수지가 다시 한 번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 11월 경상수지가 3개월 만에 다시 적자를 기록한 것이 불안감을 키웠다. 우리나라 월별 경상수지는 지난 한 해 동안에만 세 차례의 적자를 기록했다. 적자를 낸 달은 4월과 8월, 그리고 11월이었다.

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국제수지 잠정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경상수지는 6억2000만 달러(약 7698억원) 적자로 집계됐다. 전년 11월 68억2000만 달러 흑자를 냈던 것에 비하면 수지가 74억4000만 달러나 악화된 셈이다.

이로써 지난해 1~11월 경상수지 누계치는 243억7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게 됐다. 문제는 12월인데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다만 한은은 12월에 소폭의 흑자를 기록해 연간 흑자폭이 250억 달러 수준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수정 경제전망을 내놓으면서 2022년 연간 경상수지가 250억 달러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한은은 당시 전망치가 지금도 유효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영환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방향성을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12월 무역적자가 전달보다 축소된 점을 고려하면 기존 전망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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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경상수지의 세부 내역을 보면, 본원소득수지를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적자가 기록됐다. 당월 본원소득수지는 14억3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상품수지와 서비스수지, 이전소득수지는 차례로 15억7000만 달러, 3억4000만 달러, 1억4000만 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11월 경상수지 실적 부진의 결정적 원인은 상품수지의 부진이었다. 상품수지 악화의 직접적 원인은 수출 감소였다. 수입이 늘어난 것도 한 원인이 됐지만 그 증가폭은 미미했다. 작년 11월 우리 수출은 523억2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73억1000만 달러(12.3%)나 감소했다. 감소율 크기로 치면 2020년 5월(-28.7%)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우리 수출은 작년 11월에 또 한 번 마이너스를 기록함으로써 3개월 연속 뒷걸음질치는 모습을 드러내보였다.

수출 감소를 주도한 것은 우리의 주력 상품인 반도체였다. 우리 수출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반도체는 작년 11월 수출액 측면에서 28.6%(통관 기준) 감소를 기록했다. 반도체에 버금가는 주력 상품들인 화학공업제품(-16.0%), 철강제품(-11.3%) 등도 수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지역별로는 중국(-25.5%), 동남아(-20.7%), 일본(-17.8%) 등으로의 수출 감소가 눈에 띄었다.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의 급상승기에 큰 폭으로 증가했던 수입은 증가세가 꺾이는 모습을 보였다. 작년 11월 수입은 538억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1년 전 대비 증가율은 0.6%(3억2000만 달러)였다. 에너지 가격이 다소 안정화된데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세를 보인 점이 수입물가를 떨어뜨렸고, 그 결과 수입액 증가율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래픽 = 연합뉴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유와 가스, 석탄 등 에너지 수입액은 여전히 전년 동기에 비해 높은 증가율을 유지했다. 일례로 원유와 가스, 석탄의 수입액 증가율은 각각 21.8%, 44.8%, 9.1% 등이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수급난이 심화된 곡물의 수입액도 25.2%나 늘어났다.

상품수지 악화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경상수지의 불안한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반도체 경기가 이른 시일 내에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반도체가 한동안 더 가격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올해 1분기 글로벌 D램 가격이 직전 분기보다 13~18%, 낸드플래시 가격은 10~15%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마저 반도체 공급업체들의 감산에 따라 하락폭이 줄어들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반도체 중에서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메모리 분야는 특히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3분의 1로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삼성전자가 공시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은 어닝 쇼크 수준인 4조3000억원(연결 기준)이었다. 삼성전자의 전년 동기 영업이익은 13조8000억원이었다. 아직 공시를 하지 않은 SK하이닉스의 경우엔 작년 4분기에 적자를 기록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세계적으로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점도 우리의 상품수지 개선에 대한 기대를 약화시키고 있다. 국내적으로 물류난 재연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다만 국제유가 하락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수입물가 하락에 의한 상품수지 흑자가 다시 견고해질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종합하면 향후 상품수지 추이에 대한 변동성이 크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상품수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경상수지도 마찬가지다.

경상수지는 정부가 불과 수개월 전까지만 해도 안정적이라 큰소리쳤던 요소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흑자와 적자를 오가며 불안정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의 연간 흑자 전망치(250억 달러)는 2021년의 883억원(한은 집계)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이 상태가 조금 더 진행된다면 적자 전환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인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밖으로 나가는 달러화가 들어오는 달러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가계의 통장 잔고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기 마련이다. 국가 단위로 보면 국제결제 수단의 감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경상수지 적자의 고착화는 대외결제 능력의 약화로 이해될 수밖에 없고, 종국엔 국가 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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