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스경제 = 최진우 기자] 우리 경제의 큰 골칫거리였던 금융권 가계대출이 모처럼 감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간 가계대출은 마냥 커져만 가는 바람에 언제 터질지 모를 ‘뇌관’으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지난해 은행권 가계대출은 18년 만에 처음 감소하며 총량이 줄었다. 연간 감소 규모는 2조6000억원이었다.

반면 지난 한 해 동안 은행의 예금은 100조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기예금 증가가 전체 예금액수를 늘리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가계대출이 줄고 예금이 늘었다는 것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현상들이다. 우선은 한국은행의 긴축 정책이 일정 정도 먹혀든 측면을 지적할 수 있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시중의 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점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이 점이 지난해의 가계대출 감소를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수 없게 하는 이유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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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밝힌 지난해 연간 물가상승률은 5.1%였다. 연 이율이 그에 못 미치는 현실 속에서 은행 예금에 돈이 몰린다는 것은 돈 가진 사람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은행 예금금리가 물가상승률보다 낮다는 것은 예금계좌에 돈을 그대로 둘 경우 실질가치가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는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기피 분위기가 강하게 형성됐다. 주식 가격 추이가 그런 분위기를 대변해준다. 지난해 마지막 거래일의 코스피지수 종가(2236.40)는 1년 전에 비해 24% 이상 낮았다.

부동산 시장도 경착륙 우려를 낳을 정도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최근의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 월간 시계열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전국의 아파트 값은 평균 3.12% 하락했다. 서울 평균 하락률도 3%나 됐다.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에 의하면 작년 12월 말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058조1000억원이었다. 1년 전에 비해 2조6000억 줄어든 규모다. 가계대출의 연간 흐름이 감소를 나타낸 것은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4년 이후 처음 생긴 일이다.

세부적으로는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이 20조 늘었지만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이 22조8000억원 감소했다. 한은 황영웅 시장총괄팀 차장은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지속이 가계대출 감소를 초래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올해에도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가계대출 안정세가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다만, 부동산 규제 완화에 따른 대출 증가 우려가 있는 만큼 그 점에 대해서는 면밀히 살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해엔 제2금융권을 포함하는 금융권 전체의 가계대출도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의 ‘가계대출 동향’에서도 지난해 가계대출 전체 규모는 1년 전보다 8조7000억원 줄어들었다. 이 또한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 나타난 현상이다.

[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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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전체의 주택담보대출은 27조원 늘었지만 기타대출은 35조6000억원 감소했다. 감소액 중 2조7000억원은 은행권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제2금융권에서의 감소액은 5조9000억원이었다.

가계대출이 감소하는 동안에도 기업대출은 지난 한 해 동안 104조6000억원이 더 늘었다. 이는 2021년 증가액(89조3000억원)보다 크고 코로나19 팬데믹 첫해인 2020년(107조4000억원)의 증가액에는 다소 못 미치는 규모다.

지난해에 은행 예금(12월 말 잔액 2243조5000억원)은 전년 대비 107조4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세부적으로는 정기예금이 200조1000억 늘고, 수시입출식 예금은 104조9000억원 줄어들었다. 수시입출식 예금이 줄고 정기예금 잔고가 늘어난 것은 예치된 돈이 높은 이자를 따라 이동한데 따라 나타난 결과인 듯 보인다. 지난해 정기예금 증가폭은 2002년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최대치였다.

한편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지난 9일 한은 공식 블로그에 올린 ‘금융안정 상황을 균형 있게 바라보기’를 통해 국내 가계의 채무 상환 능력에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차주의 평균적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60.6%”라고 소개한 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6~2018년의 62~63% 수준을 하회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배우자와 동거가족의 소득까지 고려해 계산할 경우 실질적인 DSR은 40% 수준임을 강조했다. 논거는 현실적으로 볼 때 가계부채 상환 부담은 차주는 물론 배우자와 동거가족도 나누어 짊어진다는 점이었다. 결국은 지표상 가계대출 관련 리스크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음을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 이 부총재보는 가계대출 연체율도 낮게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함께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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